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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돌핀 번디 - 돌고래와 호모 사피엔스, 그 10년
게시물ID : readers_212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갈색낙엽
추천 : 4
조회수 : 75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11 09: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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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이 즐겨찾는 도서관과 카페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책 게시판

원악에 조용해서 누가 내 글을 쳐다보지도 않고, 일해라절해라 댓글도 남기지 않는 책 게시판

.....한 번만 와주세용 뉴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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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핀 번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앨런 스미스라고 합니다. 바다 낚시를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끼에엑, 삐이이익, 끼이이 앨런 스민스.”


   앨런이 손에 들고 있는 통역기에서 초음파와 가청음역을 넘나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앨런의 앞에는 바다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돌고래 한 명이 있었다. 돌고래는 통역기의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왼쪽 지느러미를 흔들어 인사했다. 앨런이 상체를 숙여 통역기를 그 돌고래에게 가져다 댔다.


   -삐에엑, 끼이이익, 삐이이 끽. “

   저도 반갑습니다. 저는 삐이이라고 합니다.”


   통역기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앨런이 그 말에 따라 돌고래에게 삐이이라고 최대한 그들의 언어를 흉내 내어 이름을 불렀다. 자신을 삐이이라고 소개한 그 돌고래는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점프해보였다. 앨런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앨런의 호응에 신이 났는지 삐이이는 순식간에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입에 물고 앨런에게 내밀었다. 앨런은 감사를 표하며 널찍한 바위 위에 휴대용 버너로 물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앨런은 요즘 돌고래와 호모 사피엔스 간에 참 살벌해졌다고 한탄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돌고래와의 소통 방법을 발견하여, 돌고래에게도 인간의 지위를 인정한지 벌써 10년째인데 아직도 사피엔스 중에는 꼴통들이 많은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삐이이는 오히려 사피엔스와 교류를 시작하면서 더 관계가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요즘 호의를 가진 척 돌고래에게 접근해서 해코지를 하는 일파들도 생겼는데, 사피엔스 사회에서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돌고래를 희생양 삼는 무리들이 있는 것 같다고 중년다운 깊은 식견을 피력해보였다.


   살짝 태운 물고기를 뜯으며 앨런은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자신은 돌고래와 사피엔스를 구별조차 하지 않는 주의이며, 이 근방에서 자주 돌고래들과 마주치면 어울려 논다고 말했다. 삐이이는 장난스럽게 앨런의 말을 믿지 않는 척을 해보였다. 앨런은 짐짓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자신이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겠다고 말했다. 돌고래에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들은 육지에서 돌고래가 무력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앨런은 반대로 바다에 입수해 보였다.


   -, 보세요. 바다에서라면 삐이이가 저보다 훨씬 강하지요?

   에에에익, 삐이끼익.”


   앨런은 통역기를 쓰며 두 팔을 벌려보았다. 그 때, 갑자기 삐이이가 앨런의 소맷자락을 물었다. 그리고는 앨런이 반응하기도 전에 바다 속으로 끌고 가려했다. 더 몸집이 큰 고래 정도가 아니면 바다에서 당해낼 생물이 없는 돌고래에게 있어서 앨런은 식후 운동감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앨런이 바다 속 깊이 끌려들어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멈춰! 움직이지 마! 앨런을 놓아줘! 조금이라도 헤엄을 친다면 발포하겠다.

   끼삐, 삐이끼이이엑. 이이이이엑끼.”


   바위 이곳저곳과 바다 속에서 사피엔스들이 잔뜩 튀어나와 삐이이을 둘러쌌다. 스쿠버 장비와 작살 총으로 무장한 그들의 말에 삐이이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앨런이 빠져나오고 사피엔스들 중 한 명이 삐이이에게 다가가 돌고래용 수갑을 채웠다.


   -돌핀 번디, 너를 티나 제임스, 올레비아 하이넬, 피어슨 모리슨, 루미나 루스차일드 등등 총 14건의 연쇄살인 용의자로 체포한다.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 네가 하는 모든 진술은 법정에서 너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


   형사로 보이는 그가 일일이 삐이이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해주는 동안 수족관을 실은 호송용 트럭이 도착했다. 사피엔스들은 삐이이를 들쳐 매고 수족관으로 향했다. 앨런이 따라 걸으며 씁쓸한 표정으로 삐이이에게 물었다. 우리가 유일하게 풀지못한 것이 있다. 왜 돌고래에 호의를 가진 사람, 적의를 가진 사람 가리지 않고 죽인 것인지.


   그딴 건 상관없어. 멋대로 '인간'을 시켜주던 말던, 나는 10년 전에도 그 이후에도 내가 죽여서 즐거울 것 같은 것을 죽여왔다. 난 달라진 게 없어. 오히려 전에는 내가 다가가면 환장하던 것들이 말이 통한다구 줄어들어서 사냥하는게 힘들어졌을뿐 크크크."


   삐이이가 통역기를 통해 대답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형사가 말했다.


   "10년 전의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판례가 없어. 사피엔스였다면 사형감이지만, 인간의 지위가 없었던 시절에 이 물고기 새끼가 한 짓을 그냥 넘어간다면, 감방에서 몇 십년 안 살 수도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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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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