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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때문에 휴일 날아간 Ssul.txt...
게시물ID : humorbest_10719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얼짱몬스터
추천 : 54
조회수 : 7093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6/02 23:57:19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5/31 19:39:27
편의상 존대없는 문어체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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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힘겨운 출장이었다. 두바이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내 담당도 아닌데 과장님의 일방적인 지시로 두바이 팀에 들어가게 되었고, 전무님까지 동석하게 되는 최고 난이도의 출장이었다. 게다가 9시간 가까이 되는 비행시간을 이코노미에서 버텨야 하는 건 차치하고, 제품을 준비해서 보내고, 서류를 준비하고, 통관에 걸릴까 조마조마하고...

하지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여권과 돈, 핸드폰만 들고 가는 출장이란, 그 자체로 짜릿했다. 내 준비를 봐! 완벽하다고!! 너희가 불편할 건 아무것도 없다!! 와하하하하핫!!!

그러나 나는, 자만했다. 

전시회는 성황이었다. 뷰티 업계에 종사중인 우리는, 속눈썹, 눈썹 연장 시연을 펼쳐보였고, 그럴 때마다 수십명이 달려들어 얼마냐, 제품 사갈 수 있느냐, 연락처가 어디냐, 결혼했냐 등을 묻곤 했다. (뭔가 엉뚱한 게 끼어 있는 것 같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렇게, 두바이에서도 다음에 출장차 오면 호텔방보다 나은 침실을 내어 줄테니 언제고 놀러 오라는 고객들이 한 트럭쯤 생겼다. 물론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언제나 듣는 호의의 제스쳐고, 나야 호텔이 편하니까 호텔로 가겠지만. (미얀마의 문체부 장관이 가지고 있는 호텔에 초청받았던 적은 있었다. 안 갔지만)

힘든 출장도 그렇게 끝이 나고, 전시회가 끝남과 동시에(............) 공항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꽤 빠듯한 일정이긴 했지만, 대신 한국에 도착하는 시간이 금요일 오전 11시였다. 문제는 출장은 5월 24일 시작이었으므로, 25일 석가탄신일에도 우리는 일을 했어야 했다는 것. 다른 직원을 대표해 내가 물어보았다. 

'저희 석가탄신일에 못 쉬었으니까 금요일에 공항에서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과장님께 문의하자 과장님은 드물게 상큼한 웃음을 지으며

'이미 전무님하고 얘기 끝냈지! 한국 도착하면 우리는 자유다!!'

드물게 흥겨웠다. 이코노미석은, 아무래도 나처럼 뚱뚱하고 상체가 긴(하체는 짧음) 사람에게는 무척 힘든 비행을 보장한다. 8시간 가량, 제대로 잠을 청하질 못하고 허덕대다가 이윽고 한국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이 되어서 윈도우 커튼을 올렸을 때 들이치는 햇살이 한국을 실감하게 했다. 

옆자리에 앉은 여직원은 비행 내내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원래 두바이에서부터 좀 열이 있다고 했었는데, 일반 가정의학에 정통한(왜냐하면, 몸이 무척 약골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미열이었다. 38도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잠도 잘 못자고 해서 조금 염려스러웠지만, 집에 들어가서 주말 내내 자겠다고 하길래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리부터 고생했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패스포트 콘트롤을 지나고, 

검역소를 옆자리 여직원보다 먼저 통과해

짐을 찾아서 그녀를 기다리는데, 한시간 가까이 나오지 않았을 때, 나는 비로소 마지막 들어서 방심한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대리님. 먼저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저 열이 좀 있다고(나중에 듣자 하니 38.2도였다고 했다) 해서 문진 했는데,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야된다고...

휴대전화를 켜고 상황을 살폈다. 메르스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중이며 이제 검역을 강화한다는 기사가 1면에 떠 있었다. 직원을 문제없이 돌려보내는 것이 이번 출장의 주요 업무인 나는. 업무를 끝마치지 못한 채 퇴근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잠시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마저 내가 너무 오만했던 것이다.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 XXX 대리님? 일행 분들과 함께 공항 2층 질병 관리본부 민원실로 와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밀접 접촉자셔서....

어리둥절했으나, 나는 질병 관리 본부로 향했고(나는 어리석게도 아무런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관리본부 타이틀이 나오게 셀카를 찍어서 페북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길로 공항에서 나오지 못하고 '국립 인천공항 검역소' 에 이송 및 격리되었다. (...........)

호텔방처럼 생긴 시설은, 문 앞에 나와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테이블 위에 식사를 놓고 내게 전화를 해 가져가시라고 하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내가 건드리고 남은 쓰레기는 위험물질 표시가 되어 있는 쓰레기 봉투에 넣어서(......) 그 테이블 위에 얹어놔야 했다. 

밥은, 유감스럽게도 정말 맛이 없었고, 나는 이런 밥을 매일 먹을 바에는 아침 식사로 나오는 빵과 바나나로 연명하면서 살이나 빼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수 없으면 2주 이상(메르스에 걸렸으면 완치될 때까지) 격리되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여러 번의 검사 끝에 직원은 메르스가 아님이 판명되었고, 이것은 하루만의 헤프닝으로 마무리 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집에 돌아온 것은, 한국에 도착한 지 정확히 24시간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상세한 사정을 들은 사장님께서는 카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다행이다. 잘 쉬고.


월요일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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