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은 글루미한 오늘.. 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버스 뒷문쪽에 앉아 있던 나는 이어폰을 꼽고 약간은 센치한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혹시 볼륨이 너무큰가? 내 흥얼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나? 하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다 내릴려고 서있던 낯선여자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뽀얀피주에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가진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할만한 외모를 소유한 우월한 유전자의 여성이었다.
낯선이성과의 눈맞춤이 부끄러운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전화기를 만지작 거렸다. 물론 나의 모든 신경은 그녀에게 집중되어있었다. 혹시? 하는 기대감이었다. 이런 황망한 생각을 하고 있을때... 그녀의 손이 내 어깨로 다가오는것 이었다. 오오 내게도 이런일이!!!!
나는 한껏 부푸러오른 가슴을 부여잡고 그녀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마치 슈렉의 그 고양이가 빙의한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와 나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고 수줍어 하였다.
그녀는 몹시 긴장한듯 보였다. 그녀는 얼굴과 귀 목덜미까지 빨게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입을 떼기로 하였다. 최대한 목소리는 가다듬은 나는 마치 성시경 같이감미로운 목소리를 내기위해 목에 힘을 살짝 빼고 "네? 무슨일이시죠?" 하였다. 하지만 이때 들은 내 목소리는 6시간 공연을 막 끝낸 장훈이형의 그것이었다.
그녀는 내 목소리에 개의치않고 "저 ..... 저기요.."를 세번쯤 반복했다. 이쯤에 나는 의심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오직 이 기쁨을 어떻게 표출 할지 34년 홀로지내온 세월이 오히려 고마워질 정도 였다. 드디어 노땅흑마법사에서 평범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로 보여졌다.
주위를 슬쩍 살펴보니 모두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모두들 나와 그녀를 응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순간 버스에 다음 정차지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녀를 찬찬히 살피니 그녀가 내려야 하는 것 같았다. 이미 마음을 굳힌 나는 살며시 가방을 움켜 쥐었다.
마침내 버스 문이 열리고 그녀의 앵두같은 입술이 천상의 옥음을 내뿜을 준비를 하였다. 나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를 향해 편안한 아빠미소를 발사 했다. 그러면서도 내 가슴은 바이킹 최고점에서 떨어질때 느끼는 찌릿찌릿함과 같은 것이 지속되었다. 마침내 들린 그녀의 목소리는...
" 거기 열렸어요.. 안이 다 보여요"
이 말을 남기고 그녀는 버스를 황급히 내렸다. 나에게서 떠나간 것이다. 주위에서 주목하던 사람들은.. 역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초등학생의 피식거림이 뇌리에서 떠나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