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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이병도-우리 친일 사학자들이 독립유공자를 심사하겠습니다
게시물ID : history_224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ckk
추천 : 3/12
조회수 : 1453회
댓글수 : 29개
등록시간 : 2015/08/13 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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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에는 부귀영화를 누렸겠지만
죽어서라도 그 이름 욕되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40610120004531

"우리 친일 사학자들이 독립유공자를 심사하겠습니다"

[임기상의 역사산책 41]친일파 신석호,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영화 누리다 .........

◈ 친일파 신석호, 이병도와 함께 독립유공자 심사에 나서다



↑ 친일사학자 신석호. 일제 때는 일본에, 해방 후에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붙어 천수를 누린다.

< 장면 1 >

1948년 정부가 수립된 후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물은 단 2명이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시영뿐이었다.

이승만이 �겨나고 5.16 쿠데타가 발생한 직후인 1962년, 
군사정권은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독립유공자 선정과 표창에 나섰다.


공적조사위원회에 참석한 김승학, 김학규, 김홍일, 오광선 등 평생을 조국 해방에 바친 독립운동가들은 깜짝 놀랐다.

천하가 다 아는 대표적인 친일 사학자 이병도와 신석호가 떡하니 심사위원실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분노한 어느 독립운동가가 일갈했다.

"임자들이 독립운동에 대해 뭐 암마?"

두 사람은 얼굴만 붉히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웃기는 것은 그 망신을 당하고도 두 사람은 계속 공적심사위원회에 기웃거렸다는 사실이다.

다음 해에는 신석호가, 1968년에는 두 사람 다 참석하고, 1980년에는 신석호가 끈질기게 끼어들었다.

1982년부터는 이름이 사라졌다.

그 전해에 신석호는 사망하고, 이병도는 나이가 들어 기력이 떨어져서 불참했다고 한다.


...............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친일인사 10명의 명단을 발표하는 동안 학생들이 이름과 경력이 표기된 피켓을 들고 있다


...
2005년 3월 28일 고려대 총학생회 산하 일제청산위원회는 '민족 고대'를 더럽힌 학내 친일잔재 명단을 발표했다.

학생들은 기자회견에서 "일제에 편승해 매국 매족했던 이들이 해방 후에도 호의호식하며 기득권을 누려온 역사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보성전문학교 교장, 고려대 총장, 교우회장에 이르기까지 민족을 배신한 자들의 면면을 찾았다. 앞으로 연구 조사를 통해 대학 내 (친일) 인적 잔재와 학문적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강조했다.

제자들이 민족의 혼을 좀먹은 스승들을 내치는 장면이다.

선정된 친일파에는 신석호와 이병도를 비롯해 고원훈, 김성수, 선우순, 유진오, 이각종, 장덕수, 조용만, 최재서가 선정됐다.

제자들이 발표한 스승 신석호의 죄상은 다음과 같다.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 수사관 등으로 활약하며 일제의 역사왜곡, 식민사관 구축에 동참, 협력했음.

(특징) 해방 후에도 국사편찬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




↑ 식민사관 확산에 광분했던 조선총독부 건물. 한민족의 맥을 끊기 위해 정문인 광화문을 앞으로 밀어내고 많은 궁궐의 건물을 허문 자리에 세웠다.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3.1운동 직후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 선생이 중국에서 저술한 < 한국통사 > 와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가 국내에 유입되자 일본총독부는 당황했다.

이에 따라 부랴부랴 준비작업을 거쳐 1925년 조선사편수회를 발족했다.
처음에는 일본인 학자들로만 출발한 조선사편수회에 경성제국대학을 갓 졸업한 식민사학자들이 한명씩 두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5명, 최남선. 이능화. 이병도. 신석호. 홍희 등이 그들이다.



↑ 식민사학의 요람 경성제국대학의 전경. 조선사편수회의 손과 발 역할을 할 친일사학자를 꾸준히 공급했다.

↑ . 해방과 함께 고물상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우리 교과서로 스며든다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친일 사학자들이 뿌린 식민사학의 망령은 아직도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그들이 반민특위 해체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한국사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신석호와 이병도를 사랑하는 제자로 여겼던 황국사학자 쓰다 소키치나 이케우치 히로시가 해방 후 그들의 활약상을 봤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역시 "한민족의 민족성은 강자에는 굴종하고 약자에 대해서는 그 반대이며, 거기서 노예적 근성이 보인다"고 흐뭇하게 웃지 않을까?
출처 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4061012000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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