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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명작]모텔탈출기
게시물ID : panic_107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나가던Ω
추천 : 5
조회수 : 388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1/01/17 01:51:06
이건 정말 큰일이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아끼던 200만 원 짜리 도자기를 깼을 때보다 
더 혼이 날 것 같다. 

물론, 그 도자기보다 비싼 건 아니지만, 욕실에 나뒹굴고 있는 
이 육체는 자칫하면 내 인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어쩐지 너무 쉽게 모텔까지 데리고 오나 했는데, 사람 일이란 새옹지마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 터져 버린 것이다. 

엄마의 화난 얼굴과 이제 한 달 후면 결혼하게 될 나의 피앙세(fiance), 
정화의 실망한 얼굴이 오버랩 되기 시작한다. 

두 시간 전, 채팅에서 만난 가출소녀와 20만원으로 밤을 같이 보내기로 하고, 
약속장소로 갔다. 

자동차의 히터를 틀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내 키 정도 되 보이는 훤칠한 여자애가 나타났다. 

여자애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더욱 그 애를 섹시하게 보이게 했다. 

차에 여자애가 타자마자, 요즘 성업중인 신도시 주변의 모텔들을 찾았지만, 
룸이 없어 한참이나 헤맨 후, 허름한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의 모텔 203호로 
들어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먼저 샤워한다며 욕실로 들어간 애가 한 시간이 
넘어도 나오지 않아 들어가 봤더니,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게 아닌가. 

인공호흡도 10분이나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의학도인 내가 보았을 때, 완전한 사망이었다. 

전혀 가망이 없는... 사인은 후두골(後頭骨) 함몰로 인한 뇌진탕으로 보였다. 
바닥에 미끄러져 세면대에 부딪친 것 같았다. 

뭔가 소리가 났겠지만, 난 그 때 방에서 한창 에로비디오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이 이름도 모르는 여자애의 시체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처음엔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애는 미성년자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원조교제에 대해 말이 많은데, 큰 종합병원 원장의 아들인 
의대생이 그랬다는 게 언론에라도 나오게 된다면, 내 앞날은 끝장이다. 

그리고, 엄마는 얼마나 화를 낼 것인가, 금이야, 옥이야 키워놓은 아들이 
이런 쓰레기와 밤을 보내려고 했다는 걸 아신다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진다. 그리고, 정화.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결혼 준비가 착착 진행중인데, 신랑 될 사람인 내가 다른 여자랑 모텔에 
들어 왔다는 걸 안다면 우리의 혼사는 그걸로 끝장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자, 생각을... 
명석한 두뇌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내가 아닌가.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욕실 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30분쯤 고민하니,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해 보자. 

우선, 이 파라다이스란 모텔의 위치는 신도시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초저녁이었지만, 인적도 드물었고,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물론, 나와 이 여자애가 모텔로 들어서는 걸 본 사람이 있다. 

모텔 프런트에 혼자 앉아있던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빨간 머리의 
20대 초반의 청년. 

그 녀석도 잠시동안 나를 본 걸로 내 얼굴을 완전히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 달아나자. 

이대로 시체를 두고 달아나 버리면 되는 일이다. 
시체를 발견한다고 해도 같이 투숙했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잠시 동안 생각한 후 나온 대답은 '찾을 수 있다'였다. 
난 빨간 머리에게 주차를 맡겼었다. 

자동차 키를 건네주는 나에게 녀석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와우, 저 빨간색 재규어가 정말 손님 차예요? 한 번 꼭 몰아보고 싶었는데.' 

'조심해서 다뤄 줘요.' 

'마음 푹 놓으세요.' 

빨간 머리는 내 차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왜 나의 귀중한 애마를 녀석에게 
맡겼을까? 정말 땅을 치며 후회할 일이었다. 

빨간 색의 재규어를 가지고 있는 20대 후반의 청년은 국내에 몇 명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시체를 두고 달아난다면 분명 잡히고 말겠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래, 업고 나가면 된다. 



어디가 갑자기 아픈 것같이 해서 급하게 업고 나가면... 
갑자기 우리 클럽 멤버중의 한 명인 재찬이의 말이 떠올랐다. 

작년 겨울인가, 재찬이가 여자를 꼬셔서, 러브호텔에 갔었는데, 그 때, 
그 여자애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서 급하게 응급실로 데리고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와, 말도 마. 진땀 뺐다니까. 옷을 벗기고, 침대에 눕히는데, 갑자기 배를 잡고 
뒹구는데, 환장하는 줄 알았어.' 

'하하, 재미보러 갔다가 그게 웬 봉변이냐.' 

'급하게 들쳐업고 모텔을 빠져 나오는데, 프런트에서 나를 막 붙잡는 거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말이야. 나더러 주민등록증을 내 놓으라고.' 

'아니, 왜?' 

'생각해봐라. 그 여자애가 죽기라도 하면, 내가 죽였는지, 아니면 진짜 아파서 
죽었는지 모르잖아. 


모텔 같은 숙박업소에선 살인사건도 많이 일어나고, 도피중인 수배자들도 많아서 
그런지 그런 경우엔 되게 민감하더라.' 

재찬이를 곤경에 빠뜨렸던 여자는 분명, 재찬이의 등에서 신음도 하고, 
꿈틀거렸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프런트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꼼짝도 하지 않는 여자를 업고 
나가면 빨간 머리는 어떻게 할까?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남자의 등에 업혀 나가는 여자... 
이것만큼 이상한 광경도 없을 것이다. 

희미하게 보이던 빛이 사라져 버렸다. 이대로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난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니까, 마법사들이나 주술사들이 시체를 소생시키는 마법을 
쓰던데, 내게 지금 그런 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이 시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 되는데... 

가만, 가만... 이거 흥미로운걸... 



데리고는 못 나가지만, 가지고 나갈 순 있다. 




그래, 어차피 이 여자는 지금 시체가 되어 있고, 시체란 건 결국 고깃덩어리하고 
마찬가지다. 

그럼, 가지고 나가면 된다. 난 시체의 허벅지, 팔을 만져 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근육과 같은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목욕을 한다고 욕탕 안에 온수를 받아 놓아서 욕실의 온도가 따뜻해 
아직 체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워 있는 시체를 돌려 등을 살펴보았다. 혈액응고가 시작되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반(屍班)도 보이지 않았다. 

사후경직도, 혈액응고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나에겐 정말 큰 행운이다. 
그리고, 나의 해부학 성적이 A+ 이라는 것도. 열심히 공부하길 잘 했다니까. 

이 시체를 분해한 다음, 큰 가방에 담아 가지고 천연덕스럽게 나가면 된다. 



혹시 프런트에서 빨간 머리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여자 분은요?' 



이렇게 되면 곤란해진다. 이 모텔의 프런트는 현관의 정면에 위치해 있고, 
프런트의 눈을 피해 현관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가지고 나간다는 것도 방법이 안 되었다. 결국, 이 큰 키의 시체가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 나가주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는 것이다. 

큰 키... 큰 키... 

난 거울을 한 번 보았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룸으로 들어가 모텔의 뒤쪽으로 나 있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상가들만 좀 있을 뿐, 주택은 거의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 예상대로다. 


모텔이란 곳은 건물의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 '파라다이스' 모텔도 마치 궁전같이 보이게 짓느라 벽돌을 돌출 시키게 하는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 

내 머리 속은 퍼즐을 끼워 맞추듯 작전에 필요한 여러 조건을 검토하고 있었고, 
결론은 이 시체를 걸어나가게 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 그러자면 일단 수술도구들이 필요한데... 어떤 것들이 필요하지? 

톱과 여러 크기의 칼들, 남자용 가방과 여자용 쌕 몇 개, 그리고, 쓰레기 봉지와 
청테이프와 모자. 자, 그럼 모텔 탈출 작전을 시작하자. 







준비는 끝났다. 상점들이 서서히 문이 닫기 시작하는 시내를 정신없이 돌아다녀, 
겨우 장만할 수 있었다. 

난 정말 천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기쁨보다도 더 나를 휘감고 있는 건 
이대로 달아나고 싶다는 욕망이다. 

저 모텔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약해지는 의지를 붙잡았던건, 
해부학 첫 시간, 교수님이 해 주셨던 이야기였다. 



'의사는 인간이 아니다. 의사는 강철이다.' 



그래, 나에게는 강철과 같은 의지가 있다. 
이대로 달아난다면 난 평생 파렴치한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할 것이다. 

고작 이런 일로 핑크빛 미래를 어둡게 할 수는 없다. 
난 당당하게 파라다이스 안으로 들어섰다. 

프런트 안에 있는 빨간 머리가 나를 보았다. 난 내 한 쪽 어깨에 들려져 있는 
좀 크다 싶은 쌕에 대해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뭇 궁금했다. 

이 쌕 안에는 여자용 쌕이 들어가 있고, 그 안에는 다른 도구들이 들어가 있다. 

키를 건네준 녀석은 도로 프런트에 있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하느냐 하면, 모텔 같은 데서는 손님이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으면 들어 주려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빨간 머리는 이 정도 크기의 짐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룸으로 돌아온 나는 바삐 욕실로 들어갔다. 

사람이란 참 간사한 생물이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난 시체가 없었으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상상을 했다. 

하지만, 시체는 그 모습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래, 현실은 받아들여야지. 난 작업에 착수했다. 

욕실 안에서 작업에 필요 없는 모든 것들을 룸으로 옮겼다. 
뭐, 비누나 휴지, 샴푸, 타월, 어느 욕실에나 있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옷을 모두 벗은 채, 여자애가 하고 있던 브래지어로 시체의 
양 발목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시체를 물구나무 세운 뒤, 발목에 묶여있는 매듭을 욕실 벽의 
옷걸이에 걸었다. 옷걸이의 높이가 낮아서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지만, 
그런 대로 만족할 만했다. 

서서히 경직되기 시작한 무거운 시체를 거꾸로 세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어차피, 좀 기다려야 하니까, 여유 있게 앉아서 담배나 태우자. 

담배 두 대를 태운 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온수를 틀었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우선, 온도의 문제. 어쨌든 시체가 경직이 되면 작업이 힘들어질 것이다. 

두 번째는, 소리의 문제. 방음시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건너야 할 때니까. 

세 번째는, 뒤처리의 문제다. 욕실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으면 습도가 높아 
피나 오물이 튀어도 쉽게 응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밑준비는 모두 끝났다. 

나는 톱을 들었다. 

이런 젠장,... 이제 와서 손이 떨리다니... 

해부학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지금은 해부학 시간이다. 

하지만, 떨림은 좀처럼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래, 엄마와 정화를 생각하자. 

엄마의 화난 얼굴과 정화의 실망한 얼굴을... 

나는 시체의 몸에서 목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지금이 몇 시지? 

새벽 세 시. 피비린내와 배설물의 냄새를 맡으며, 이 곳에서 다섯 시간이나 
있었구나. 

내 온몸은 피와 오물로 가득했다. 어서 빨리 끝내고 목욕이나 했으면 좋겠다. 
우선은 좀 쉬자. 

내가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지? 시체의 머리는 미장원에 있는 가발 마네킹처럼 
세면대 위에 잘 모셔 놓았고, 그 뒤에 어깨와 대퇴부에 있는 경동맥에서 피를 
대충 뽑아냈다. 

부피를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 그리고, 지금 욕실 바닥엔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고깃덩이와 뼈들이 늘어져 있다. 

자꾸 바닥이 미끌거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자칫하면 여자애가 그랬듯, 
내가 뇌진탕으로 죽었을 지도 모른다. 

자, 다시 시작하자. 난 피로 물들어 있는 커터를 들었다. 
그리고, 얌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머리를 집었고, 두피를 벗기기 시작했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하긴, 10kg이 넘는 쓰레기 봉지를 수백 바퀴는 돌렸으니... 

뼈는 의외로 차지하는 부피가 적다. 
문제는 피와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내장들. 

구멍을 뚫은 쓰레기 봉지에 그것들을 넣고 쥐불놀이를 하듯이 돌린 탓에 
욕실의 천장이고, 바닥이고 할 것 없이 온통 피가 튀었다. 

원심력의 원리를 이용한 인간탈수기가 된 것이다. 
진짜 탈수기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기야, 탈수기가 있었다고 해도 
이런 것들을 넣고 돌릴 순 없는 일이지.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두 개의 쌕에 들어가기에는 부피가 
커 보인다. 

피나 오물들은 배수구나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리면 그만이지만, 
내장은 그럴 수도 없다. 

결국, 그 방법까지 써야 한단 말인가. 피하고 싶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천국으로 비상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쌕. 사람의 위는 상당히 많은 양을 담을 
수가 있다. 난 두 눈을 감고, 한 손으로 코를 막았다. 

그리고, 쓰레기봉지에 손을 넣었다. 물컹한 것을 한 웅큼 집어냈다. 
느낌으로는 간(肝) 같은데... 얼마큼 내 위에 담을 수 있을까. 








새벽 다섯시. 욕실 청소를 끝냈다. 

선반과 세면대, 욕조, 구석구석 단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닦고 또 닦았다. 

이 곳에서 인체 분해가 일어난 것은 나와 시체만이 알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청소를 멈추었다. 

그리고, 피바다에서 헤엄이라도 치고 나온 듯한 내 몸을 씻었다. 
피비린내와 구역질나는 냄새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번이고 비누칠을 했다. 

그리고, 양치질도... 상쾌하게 샤워를 끝낸 나는 룸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품같이 
한없이 편해 보이는 침대가 나를 유혹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여자애가 하고 있던 커다란 링 귀걸이를 이용해 귀를 뚫어야 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귀를 뚫어보고 싶었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하게 되다 
니... 날카롭게 갈긴 했지만, 귀를 뚫는 순간,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다니. 
거울에 비치는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한 내 모습은 처량 맞기 짝이 없었다. 

이 다음에 할 일은... 화장대 위에 곱게 올려진 천연 가발. 시체의 머리에서 
벗겨낸 두피를 머리에 써 보았더니, 약간 작긴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이것이 바로 시체를 걸어나가게 하는 방법이다. 

내 천재적인 머리가 어떻게 이런 작전을 생각해 냈는가 하면, 그녀의 
키가 나만큼이나 크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사람의 눈과 기억은 참 편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눈은 피사체의 
특징적인 부분만 잡아내고, 기억은 그 특징적인 부분만 자신의 뇌에 각인시켜 
둔다. 

데자뷰(dejavu)라는 현상 역시 이런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 접하는 것을 보고,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그것과 비슷한 것을 보고 인간의 뇌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모텔에 들어올 때, 빨간 머리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내 뒤에 멀찍이 
서 있던 여자의 무엇을 보았을까, 첫째는 큰 키다. 

둘 째는 긴 머리칼, 세 번째는 눈에 띄는 귀걸이. 이 세 가지라고 난 
확신한다. 그리고, 난 이 세 가지로 빨간 머리의 눈을 속일 것이다. 

여자의 키가 커서, 분해하는데는 힘이 들었지만, 그것은 나에게 유리한 
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노력이 크다. 

워낙 곱게 자란 탓인지, 내 피부는 여자 못지 않다. 철없던 대학 1학년 때, 
잠깐 머리를 기른 적이 있었다. 그 때, 참 이런 경우를 많이 당했다. 



'영숙아, 어디 가니?' 



'예?' 



'어머,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어요.' 



그 때는 여성스런 내 외모가 불만스러웠지만, 지금 나는 그것 덕분에 
탈출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두 개의 쌕에는 시체가 나뉘어져 담겨 있고, 귀걸이와 가발도 준비되었다. 
난 핸드백에서 루즈를 꺼내 처음으로 화장을 하는 여대생의 기분으로 그것을 
입술에 발랐다. 

전체적으로 화장을 하는 게 변신에 더욱 유리하겠지만, 일단은 내가 
화장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어설프게 되기가 십상이다. 그리고, 
나중일도 생각해야 한다. 

화장을 지울 일을... 그래서, 입술만 바르기로 했다. 강렬한 빨간 색을 
바르면, 시선은 그 곳으로 모아지기 마련이니까. 

천연 가발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청테이프로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였다. 나중에 떼어낼 때, 얼마나 아플까. 모자를 썼다. 

완벽하다. 자세히 보면 이런 어설픈 변장은 눈에 띄겠지만, 지금은 새벽녘이고, 
대개의 모텔과 마찬가지로 이 모텔의 조명도 그리 밝지는 않다. 

그리고, 여자들이 이런 곳에 드나들면서 수줍어하는 건 당연한 일. 모자를 눌러 
쓰고, 고개를 숙이고 정문을 나간다 해도, 빨간 머리는 눈치를 못 챌 것이다. 

자, 이제 출동 준비 완료다. 







복도를 걷는데, 자꾸 다리가 휘청거린다. 누가 하이힐이란 걸 만든 거야! 
그러고 보면, 여자들은 참 대단하다. 이런 걸 신고 잘도 걸어다니니... 

하이힐 뿐 만이 아니다. 키는 비슷했지만, 이 여자의 코트와 치마가 
나에게는 맞지가 않았다. 하기야, 남자와 여자는 어깨, 골반의 뼈의 
모습이 현저히 다르다. 

하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이 그걸 막아줄 것이다. 코트로 감싼 몸을 보고, 
남자니 여자니 관찰해 내기는 쉽지 않다. 1층으로 내려 왔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쌕 안에 있는 것들은 터지지 않을까. 혹시, 넘어지기라도 해서 가발이 
떨어지면 어쩌지, 갑자기 옷이 투두둑 하며 뜯어지면 ... 





아니야. 불길한 생각은 하면 안 돼. 


프런트 앞을 지날 때, 빨간 머리가 고개를 내민다. 



'저, 몇 호 손님이시죠?' 



심장이 금새 폭발할 듯 뛴다. 대답을 하면 눈치를 채버릴 것이다. 
내가 여자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한 번 해 봐?... 



'아, 203호 손님이시죠?' 



녀석은 다행히 기억을 하고 있었다. 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룸키는요?' 



난 조심스레 오른손으로 계단 위를 가리켰다. 
이 가리킴의 의미를 알아야 할텐데... 



'남자 분이 가지고 나오실 거지요? 예,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녀석은 다행히 손짓의 의미를 알아채 주었다. 허둥대지 않고 천천히 
프런트를 지나, 현관을 향해 걸었다. 차가운 공기가 너무나 상쾌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내 애마가 있는 곳을 향해 갔다. 그리고, 차안에다 쌕과 코트, 
그리고, 하이힐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프런트에서 보이지 않는 쪽으로 
여관의 뒤로 돌아갔다. 

울퉁불퉁한 벽돌을 잡고, 등반을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시간이. 

하지만, 겨울의 한기에 얼어붙은 벽돌들은 너무나 차가웠고, 난 한번도 
등반 따위를 해 본적이 없었다. 

겨우, 창틀을 잡았고, 있는 힘을 다 내보았지만, 아까 쓰레기 봉투를 
돌리느라 힘이 너무 빠져버렸다. 시간을 길게 끌면 안 된다. 

아직은 새벽녘이라서 어둠에 쌓여있지만, 혹시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본다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엄마, 힘을 줘요. 정화야, 힘을 줘. 



쿵하고 머리를 찧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우선, 청테이프를 뜯어내며, 
가발을 벗었다. 투두둑. 이런, 젠장. 너무 따갑다. 

다음은 귀걸이. 귀가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어쨌든 귀걸이 두 개도 
무사히 빼냈다. 그리고, 난 입고 있는 옷 위로 내 옷을 겹쳐 입었다. 
겨울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여름의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절대 이런 
트릭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화장도 지우고, 가발이랑 귀걸이, 이 따위 것들은 무스탕 안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완벽하게 다시 남자로 변신한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가방을 
집어 들고 룸을 나왔다. 

프런트가 보였다. 여기만 빠져나가면 완전한 탈출이다. 

룸키를 프런트에 놓았다. 



'수고하세요.'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빨간 머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룸키를 받았다. 



'다음에 또 오세요.' 



다음엔 절대 안 올 거야. 이제 저 현관을 빠져나가면 다음엔 절대 안 올 거야.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현관을 응시하고 있는 나의 눈에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우리는 격렬히 부딪쳤고, 난 가방을 놓쳤다. 가방이 공중에 뜬 그 1초도 안 되는 
순간이 나에게는 10년처럼 느껴졌다. 

저 가방이 땅바닥에 떨어져서 쓰레기 봉지가 터진다면... 
그러면, 나의 눈물겨운 노력도 모두 허사가 된다. 



탁! 



나와 부딪친 남자가 공중에서 가방을 낚아채 주었다. 
그리고, 징그러운 웃음을 띄며 그것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어이구, 이거 죄송합니다.' 



그 남자는 나를 순식간에 지옥으로 끌고 내려갔다가 다시 천국으로 
올려주었다. 가방을 든 나는 종종걸음으로 현관을 빠져나왔다. 

내 애마에 올라타자마자, 시동을 걸고 모텔을 빠져나왔다. 성공이다! 
나의 완벽한 계획과 엄마와 정화의 정신적인 도움으로 자칫 망가질 뻔한 
내 인생을 지켜냈다. 

눈물이 났다. 오늘 밤 나는 시체를 분해했고, 인육을 먹어야 했고, 
귀를 뚫어야 했고, 두피를 써야했다. 
저 모텔 안에서 일어난 일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쓰레기 봉투에 담겨져 있는 시체는 어디 야산에라도 버려버리면 그만이다. 
워낙 산산이 분해를 해 놔서, 신원확인조차 어려울 것이다. 

나의 모텔 탈출작전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저 사람, 왜 저렇게 허둥지둥 나가냐?' 



'이런데 오는 사람들이 다 그렇죠, 뭐.' 



'그건, 그렇고 오늘은 돈 될만한 상품이 좀 있었어?' 



'말도 마요, 나이 많은 아저씨, 아줌마들만 버글거렸다니까요.' 



'에이, 오늘도 공쳤네.' 



'아, 방금 나간 저 남자 손님이랑 같이 온 여자가 끝내 주더라구요. 
키도 훤칠한 게, 재미있게 찍혔을 거예요.' 



'너도 아직 못 봤어?' 



'예. 좀 바빠서요. 근데, 저 사람들 룸이 없어서 203호에 묵게 했거든요. 
203호에는 카메라가 모자라서 욕실에만 설치를 했잖아요. 그게 좀 아쉽네요.' 



'괜찮아, 괜찮아.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어서 한번 확인해 보자. 
이 모텔에서 몰래카메라로 돈을 버는 너와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걸 알면 여기 
묵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해 할까?' .. 



                                                                박동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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