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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수학시간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학교 수학 선생님의 화려한 언변과 구박에 ‘아, 내가 이 수업만 듣고서는 이 수학교과서의 32%밖에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학원 따위 돈만 들고 쓸모없다.’라는 나의 좌우명은 망치와 철판 사이에 넣고 찧어버린 듯이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겠어! 라며 당당하게 다른 구역을 선택했다 통학시간이 1시간 30분이 된 내 친구가 마침 주변에 수학학원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에게 가서 “지금 내 뇌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수적 세포를 살리려면 아무래도 학원에서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아와야 할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부모님은 학구열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집에서는 공부는커녕 심부름도 누워서하던 놈이 공부를 하겠다니 놀라워하며 허락을 해주셨다.
그렇게 남중-남고 최적의 테크트리를 타는 나의 여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학원을 다니고 여자애와 말해본 횟수는 지금까지 손가락에 꼽는다.)
첫 달은 꽤나 정상적으로 다녔던 것 같다. 그냥 학원에 가서 조용하게 수업을 듣고 조용하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습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역시 익숙해지는 것이 문제였을까.
내 17년 경험으로 우러나온 남성 또라이 염색체가 핏줄을 새로 개통이라도 한 듯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개드립을 치기 시작했고 학원 선생님에게 쉬도 때도 없이 거친 애정을 받기 시작했다.
덕후의 기질도 숨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수업 전 친구에게 내가 예약해놓은 애인의 가치가 상승했다는 것에 대한 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황색 머리카락의 위대함에 대해 열띤 강연을 하던 중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 이후 선생님은 나를 덕후새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던 중 오늘이 찾아왔다. 다음주에 대부분의 학교가 개학을 하기에 선생님이 개학 기념으로 치킨을 사주셨다.
신성한 신의 은총 역시 나의 미친놈 DNA를 막지 못했다. 아마 신이 있었다면 신조차 예상 못했던 심각한 돌연변이가 바로 나일 것이다.
치킨과 같이 온 양념용 소금이 너무 신경 쓰였다.
하나는 치즈가루가 뿌려진 치킨이었고 하나는 양념치킨이었다. 후라이드도 있었지만 고작 소금따위에 치킨을 더럽힐 수 없는지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거로 양치나 해볼까?”
학원에서 만난 친구는 나에게 제안을 했다.
“아냐. 이거로 양치하면 이빨이 내 얼굴처럼 썩어들어갈걸?”
꽤나 괜찮은 제안이었지만 나는 20살을 찍기도 전에 임플란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야. 가위바위보, 콜라, 소금, 콜?”
그 후 치킨을 얌전히 치킨을 몸으로 들이던 친구가 던진 말이었다.
“소금받고 원샷.”
소금이 적절한 사용방법을 만난걸까. 아니면 내 DNA가 엄청난 시너지를 맞은걸까. 나는 녀석이 몇일 전 분수에서 뛰어놀기 내기에서 2판 연속으로 진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얘라면 내가 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 라는 확신에 찬 채로 친구가 콜라를 능숙하게 세팅하는 것을 구경했다.
아마 원샷을 제안하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콜라 세팅이 끝난 친구에게 잠시의 머리 굴릴 시간을 주지도 않은 채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가위vs가위
첫판은 비겼다. 남자는 주먹인데.. 이놈이 Y염색체 아래쪽을 가르려고 작정했나 보다.
나는 남성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두 번째 판은 주먹을 내는 전략을 냈다.
녀석은 자존심 따위에 실리를 팔지 않았다. 과거 금나라의 침입에 군신관계를 맺은 고려인의 피를 물려받은 탓일까.
소금 콜라의 주인은 내가 되었다.
그것을 처음 들고 중학교 과학 시간에 용액의 냄새를 맡을 때처럼 손을 휘적거리며 향취를 감상해보았다.
이것은 사람에게 절대로 들여서는 안 되는 독약이었다. 과거 사약을 받들던 충신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분명 실험 용액은 탄 쥐꼬리를 애기 오줌을 탄 듯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적당히 버리고 정리하려 했으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혹시 모를 대참사를 대비하여 문 바로 옆으로 가서 심호흡을 두 번 했다. 천원을 준다고 해도 마시고 싶지 않을 그 용액을 내 위장속에 한번에 들이부었다.
마시니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내 미각 세포들이 하얀 집으로 관광을 떠났고 염라대왕이 앞에서 내 죄를 읊었다.
다섯 살에 개미를 밟아 죽인 죄를 읊었을 때 나는 정신을 되찾았고 다행히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만 당했다는 사실에 격양되었다. 누군가 업그레이드 용액을 마시고 나에게 속죄를 해야 했다.
2차전을 개최했다. 통학시간 3시간짜리 친구도 게임에 참여했고 가위바위보를 준비하는 셋 사이에 세계 대전급의 긴장기류가 돌기 시작했다.
가위.... 바위.... 보!
1차전을 펼쳤던 나와 다른 친구는 보를 냈고 3시간짜리는 주먹을 냈다.
승리의 아찔함에 취해있다 정신을 차렸다. 이놈은 염라대왕에게 왜 혀를 직접 고문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 까지는 정신을 잃어야 한다.
우선 종이컵에 소금부터 들이 부었다. 소금 반 봉지를 붓고 다음 재료를 찾았다. 위에서 빠트렸는데 치킨무 국물도 재료에 포함되었다.
레벨 2는 레벨 1보다 강력해야 한다. 당연한 사실이자 이 게임에 들어선 나에게 신조와 같은 말이었다.
치킨을 뒤덮고 있었던 치즈가루를 첨가했다. 아직은 모자라다. 뭔가 자극적인 맛이 필요하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미각은 무엇인가? 바로 매운 맛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식 중 하나인 양념치킨의 소스를 친히 부어넣기 시작했고 이쯔음 종이컵의 1/3이 가득 찼다.
콜라를 1/3정도 넣고 섞자 일주일 전 내가 과식을 하고 토한 듯한 흔적이 나타났다. 도저히 인간이 마실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직접 손을 휘두르지 않아도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약제사가 이런 것을 보았다면 아마 인간의 무서움을 깨닫고 더 이상 약제를 할 수 없을 정도의 모양새였다.
친구는 이걸 먹으면 돌아가신 4대 조상님이 손짓할 것이라며 거부했다. 완강한 거부로 인해 도저히 그냥은 먹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타협하기 시작했다.
같이 참여한 친구는 자기가 한모금을 마실테니 그 후 남은 것들을 니 위장속에 처리하라고 협상을 보았다. 그러나 3시간은 완강하게 거부했고 이제는 내가 빌어야 할 상황이다.
“내가 2모금을 마실테니 세입만 마셔라.”
역시 거부했다. 이 역시 아마 고려인의 피를 물려받았으리라. 서희는 적의 본질적 요구를 깨닫고 우리나라의 이익 역시 가져왔다. 더 이상 시끄러워지면 선생님이 제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놈은 계속 거부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의자에 묶어놓고 코로 한 모금씩 떨어트리고 싶었으나 또라이에 미친놈이라는 칭호까지 플러스 알파로 붙은 채로 생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포기했다.
악마의 체액보다 진해보이는 마치 마왕이 아침에 건강음료로 마실 듯한 음료를 버리러 가던 중 나의 지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었다. 입에 들어오자 소금이 내게 마음을 열 것을 요구했다. 뱉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고 일단은 머금은 채로 마실지 아닐지 고민했다. 0.5초 정도 지났을까. 물론 나는 그 사이에 5개월의 고민을 했다.
이번엔 쓴맛이 나를 자극했다. 도대체 쓴 것을 넣지도 않았는데 왜 쓴맛이 났던걸까?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치킨무의 신맛이 입속을 자극했고 버틸 수가 없어 입이 목으로 바톤을 넘겼다.
위장속에 들어가서 격렬한 금요일 밤의 파티를 지낸 후 조용해졌고 나는 교실로 들어가서 영문모를 입냄새를 풍기며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출처 | 오늘 9시 격렬했던 나의 위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