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좋은 표현이 예쁜 시들이 많이 공유 되길래 말이 예쁘지만은 않은 시 하나 공유 해 봅니다. 쓰신 분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하시는 성기완님이십니다.
당신의 텍스트 3
성기완
웬일이죠
오히려 당신이 생각날 때
당신에게 연락을 안 한다는
당신은 그렇게 먼
그러나 때로는 가까운
당신의 나신이 기억나지 않아요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 벗었죠
불이 켜져 있을 때는
눈을 감았죠
그렇게 우리는 척척한 몰입의 순간에도
비밀을 유지했다는
이건 뭐죠
나는 몇 번이나 참았어요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에
이를테면 사정의 순간 직전에
나는 다른 말을 내뱉었죠
안에다 싸도 되냐는 식의
대답은 늘 하나였어요
안 된다는 것
나는 늘 그 대답에 안도했죠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무거워지지 않을 거라는 거
도대체 왜일까요
당신에게 연락을 안 하기로 마음먹을 때
자꾸 당신에 관한 나의 비밀은
검은 흙 위에 돋아나는 봉숭아 새싹처럼
마음의 텃밭에서 연두색으로 자라나요
싹을 똑 똑 꺾어요
수신된 문자를 지우듯
그러나 자꾸 묻지만
웬일이죠
당신의 문을 똑 똑
두드리며 비를 맞는
내 그림자를 박 박
지우고 싶지는 않은 것은
그래요
그대로 있겠죠
당신도
나도
절대로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 속에서
오늘도 혀를 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