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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NY타임스-"日군대, 용맹한 광복군 두려워해"
게시물ID : history_225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ckk
추천 : 5
조회수 : 73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15 07: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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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선생님이 한국이 해방되더라도 신탁통치를 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에 대해 강력 성토하시면서 "특정한 외국인들이 전후 한국에 대해 일정기간 통치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한국인에 대한 모독이며 제국주의의 침략과 불의에 항거하는 신성한 싸움을 불명예로 만드는 것이다"
라고 하시는것을 봐선 이후 미국,소련의 신탁통치관련해서
내용이 어쨌든 당시동아일보가 왜곡했든 안했든 

무조건 반대할수밖에없었겠다..라는 생각은 드네요,,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0812175208978

[광복70주년]① "日군대, 용맹한 광복군 두려워해" 1942년 NY타임스


광복의 달 8월에는 해방(8·15)과 경술국치(8·29), 두 차례의 원폭 투하(8·6, 8·9) 등 한민족의 명운과 관련한 중대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또한 수많은 항일 민족 지도자 중에서도 첫줄에 놓아야 할 백범 김구 선생의 탄신일(1876년 8월29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해방 전후 미국 매체와 각종 희귀 문서에 나타난 비화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뉴욕타임스는 1932년 5월9일 속보로 훙커우공원 폭탄투척의거로 세계를 놀라게 한 윤봉길의사가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이를 지휘한 것은 김구라고 그 존재를 알렸다. 1942년 1월8일엔 1만명에 가까운 광복군이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직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고 2월28일엔 광복군의 창설 배경과 운용형태, 용맹함을 소개하며 "일본은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한국군이 러시아군에 합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1945년 8월19일 3만명의 한국인 적군(Red Army) 부대가 한반도에 진입한 사실을 지도와 함께 보도한 뉴욕타임스. 2015.08.12. <사진=NY타임스 DB> [email protected]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뉴욕타임스는 1932년 5월9일 훙커우공원 폭탄투척의거로 세계를 놀라게 한 윤봉길의사가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이를 지휘한 것은 김구라고 처음 그 존재를 알렸다. 1942년 1월8일엔 1만명에 가까운 광복군이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직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고 2월28일엔 광복군의 창설 배경과 운용형태, 용맹함을 소개하며 "일본은 한국군이 러시아군에 합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44년 삼일절엔 해방후 신탁통치 거론과 관련, "김구 주석은 신탁통치는 한국인에 대한 모독이자 제국주의의 침략과 불의에 항거하는 신성한 싸움을 불명예로 만들 것이라고 맹비난했다"고 전했다. 사진은 1942년 1월8일 뉴욕타임스 기사. 2015.08.12. <사진=NY타임스 DB> [email protected]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뉴욕타임스는 1932년 5월9일 훙커우공원 폭탄투척의거로 세계를 놀라게 한 윤봉길의사가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이를 지휘한 것은 김구라고 처음 그 존재를 알렸다. 1942년 1월8일엔 1만명에 가까운 광복군이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직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고 2월28일엔 광복군의 창설 배경과 운용형태, 용맹함을 소개하며 "일본은 한국군이 러시아군에 합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44년 삼일절엔 해방후 신탁통치 거론과 관련, "김구 주석은 신탁통치는 한국인에 대한 모독이자 제국주의의 침략과 불의에 항거하는 신성한 싸움을 불명예로 만들 것이라고 맹비난했다"고 전했다. 사진은 1942년 2월28일 뉴욕타임스 기사. 2015.08.12. <사진=NY타임스 DB> [email protected]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뉴욕타임스는 1932년 5월9일 훙커우공원 폭탄투척의거로 세계를 놀라게 한 윤봉길의사가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이를 지휘한 것은 김구라고 처음 그 존재를 알렸다. 1942년 1월8일엔 1만명에 가까운 광복군이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직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고 2월28일엔 광복군의 창설 배경과 운용형태, 용맹함을 소개하며 "일본은 한국군이 러시아군에 합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44년 삼일절엔 해방후 신탁통치 거론과 관련, "김구 주석은 신탁통치는 한국인에 대한 모독이자 제국주의의 침략과 불의에 항거하는 신성한 싸움을 불명예로 만들 것이라고 맹비난했다"고 전했다. 사진은 1944년 3월1일 뉴욕타임스 기사. 2015.08.12. <사진=NY타임스 DB> [email protected]


서구 언론은 김구 선생을 '한국의 호랑이'로 불렀다. 그의 아호 백범(白凡)과 이봉창 의거, 윤봉길 의거 등을 잇따라 지휘해 일본을 공포에 떨게 한 호랑이의 면모를 읽었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이름이 처음 미 언론에 소개된 것은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폭탄 투척 의거 직후였다. 이 의거로 일본의 상하이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 義則) 등 일본 제국 요인들이 죽거나 크게 다쳐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총사령관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못할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하다니, 윤봉길 길이 빛나리라'고 칭송하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의거 열흘 뒤인 1932년 5월9일 AP 통신의 기사를 받아 윤봉길 의사 폭탄 투척 배후에 김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

당시 삼일절 25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서에서 김구 주석은 한국이 해방되더라도 신탁통치를 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에 대해 강력 성토하고 있어 시선을 끈다. 김구 주석은 "특정한 외국인들이 전후 한국에 대해 일정기간 통치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한국인에 대한 모독이며 제국주의의 침략과 불의에 항거하는 신성한 싸움을 불명예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김구 주석은 "한국인은 항상 일본에 맞서 싸우는 최일선에 있었다. 1909년 첫 번째 총독으로 한국에 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것도 한국인 애국자였고 1932년 1월 도쿄에서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목숨을 뺏으려 한 것도 한국인이었다"고 상기시켰다.

일본 제국주의와 선봉에서 싸운 한국인은 당당한 독립국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음을 세계 만방에 선포한 것이다.



출처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0812175208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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