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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과축제 준비했던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99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모르는척
추천 : 2
조회수 : 3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8/19 14:59:12
작년 가을, 우리는 과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매년 하는 축제이지만 과에서 가장 큰 행사이다 보니 허투루 준비를 할 순 없었다.
 
우리 과의 축제는 시 전시, 연극, 동영상을 비롯한 학생들의 학과내 동아리 활동들과 장기자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실상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것은 이 15분간 진행되는 무대였고, 그 탓에 매년 학생회에서는 이 장기자랑을 어떻게 소화를 할지 골머리를 앓았다. 학생회는 고심끝에 1학년 과대와 부과대에게 시간을 반씩 줘서 파릇파릇한 신입생들로 15분을 채워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 판단은 과대가 여자였고, 부과대가 남자였기 때문에 성비가 기울지 않으면서도 과대와 부과대가 책임감을 가지고 인도해서 공연이 무사히 끝나지 않을까 하는 가정하에 내려진 판단이었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면 그 부과대가 나였다는 것이다.
 
정말 자신은 없었으나 기왕하는거 열심히해보자는 마음으로 7분 30초간 쪽팔림을 같이 견딜 구성원을 모았다. 처참했다. 내 인망은 바닥을 기었기에 영혼까지 끌어모은 우리의 인원은 총 네명이었다. 아이돌 가수의 댄스곡을 하나 준비하더라도 4명으로 하기는 애매했다. 우리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봐도 생각나는 4인조 아이돌은 2am과 씨엔블루정도밖에 없었다. 비록 네명중 하관이 창민과 비슷한 친구는 있었으나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부를 자신은 없었고, 우리는 벗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진듯 했다.
 
15분이라는 시간에서 인터뷰, 중간중간 상품을 건 게임과 무대 준비등을 제외하면 우리가 실제 소화해야 하는 곡은 세 곡 정도였다. 세 곡중 한 곡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추기로 했고, 노래 한곡씩 준비를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단 한곡. 그 한곡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고민을 했고 현실적인 대안은 세 가지로 줄었다. 
 
1. 여자가 두 곡을 맡기
2. 남자 한 명을 더 구해오기
3. A가 혼자 독무대를 하기
 
1번은 간단했다. 여자가 두 곡을 맡고 혼성을 포함해서 총 세곡을 소화. 그러나 단순히 남자들의 부족으로 인해(내 부족함으로 인해) 책임감을 짊어지게 한다는 사실이 싫었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2번이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한 대안이었다. 5명 남자 아이돌이면 꽤 많으니까. 그러나 거짓말처럼 나와 함께 준비를 할 사람을 더 구할 순 없었다. 단 한명도. 순간적으로 학기초에 사먹인 바나나우유 라이트 대신 50원 더 비싼 일반 바나나 우유를 사먹였어야 했나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1번 2번 모두 실패했기에 우리는 골머리를 앓았고, 눈치를 보던 A가 그때 제안했다.
 
"내가 독무대를 할까?"
 
A는 내가 모은 친구중 한명이었는데, 평소 춤을 좋아하고 튀는 것을 사랑하는 친구였다. 인원이 없으니 제안을 한 거라고 본인은 말했으나, 내가 보기엔 그저 본인이 독무대를 열렬히 갈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주장은 내 열렬한 반대를 필두로 한 모두의 반대로 인해 이뤄지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만 갔고 이젠 정말 춤을 추며 연습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기에 결국 1번 플랜으로 굳어가게 되었고, A는 자연스레 장기자랑 준비에서 빠지게 되었다.
 
춤을 추는 여성인원은 총 네명, 남자도 네명. 우리가 혼성으로 준비한 춤은 빅스의 저주인형이었는데, 빅스는 6인조였고 2명의 인원은 빠져야 했다. A는 이 춤을 추는 것을 기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여자 곡의 준비가 급했기 때문에 여성인원이 먼저 안무연습을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책임감을 짊어지게 한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 때, 하나의 생각이 내 뇌리를 관통했다. 당시엔 정말 최고의 대안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회상을 해보자면 작년 내가 던진 최악의 제안이었던 것 같다.
 
랩.
 
랩이라면 할 수 있지않을까?
 
한창 쇼미더머니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었고, MR을 크게 깔아놓고 적당히 지껄이면 3분정도 때우는 것은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두 곡을 준비해야하는 여자들에게 부담을 덜 주고 싶은 상황에서 소규모의 인원으로도 소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빠르게 제안을 했다.
 
물론 일에는 순서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A에게 먼저 가서 제안을 했다. 나와 같이 랩을 하지 않겠냐고. 물론 칼같이 거절당했다. 그래서 나머지 남자 세명으로 우리는 랩을 준비하게 되었다.
 
남자는 랩, 여자는 아이돌 댄스곡, 그리고 마지막은 혼성곡. 이제야 구체적인 계획이 설립이 되었다.  그러나 희망차게 준비를 시작한 우리는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을 받았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랩을 더럽게 못했다. 노래방에 처음 갔을 때 우리는 절망 그 자체였다. 라임정도나 이해하고 플로우 펀치라인이 뭔지도 몰랐던 그 때. 빠르게 대충 때려박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건 정말 크나큰 작각이었다. 기본적인 발성부터 똥덩어리였고 빠르게 때려박았다고 생각한 가사들은 죄다 씹혀서 무슨 가사인지도 알아 듣기도 힘든 수준이었다.
 
그리고 작년 가을 처음으로 나는 내가 굉장한 몸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팔을 뻗고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정도로 밖에 안무를 기억할 수 없었고
나는 춤연습을 할 때마다 눈총을 받기 십상이었다.
 
(여기선 출처에 올려놓은 빅스의 저주인형 안무영상을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나는 정말 춤을 더럽게 못췄다. 내가 맡은 아이돌은 라비라는 아이돌이었는데, 자세히보면 동작이 복잡하고 어려운 안무도 없고 처음에 앞으로 나가는 것과 나중에 가슴에 봉을 꽂는 간지나고 어렵지 않은 안무를 소화했기 때문에 가장 쉬운 역할을 내가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음악이 깔림과 내가 앞으로 나가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꼬박 하루의 시간이 걸렸다.
 
 
 
왜이렇게 춤을 못추냐고, 팔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 만큼 움직이고 멈출 때 멈추고 빠를 땐 빠르게 느릴 땐 느리게 움직이라는 말은 나에겐 딴 세상의 이야기로 들렸다. 내가 보기엔 똑같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축제 전날이 되었다.
 
학과내 동아리에서 준비한 작품들은 정말 수준이 괜찮았고 사전 반응도 좋았기 때문에 하이라이트 격인 장기자랑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여성 춤은 괜찮았다. 귀엽고 발랄한 매력이 있었다. 혼성 춤은 한 명이 춤을 참 더럽게 못추긴 했지만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비중이 적었던 탓에
시선이 집중되는 부분만 죽어라 연습했고 그럭저럭 볼만은 하게 되었다. 제일 망한 건 아무리 봐도 랩이었다.
 
가사를 다 외웠지만 세 명중 한명은 꼭 가사를 절었으며, 참 못했다.
 
그러나 랩이 단기간에 많이 한다고 많이 늘지도 않았고, 단순하고 훅이 반복되는 노래를 선택해서 훅에서 관중들의 호응을 유도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전날이었지만 아직 장기자랑이 불안했던 탓에 우리는 모여서 밤샘 연습을 강행했다. 난 참 욕을 더럽게 많이 먹었는데, 그래도 한 번 추면 다섯번은 먹던 욕이 다섯번 추면 두 세 번만 먹을 정도로 줄었기 때문에 나름 배워가는 재미도 있었다. 내가 너무 못했고 보는 친구들도 답답하고.
 
그 탓에 정말 많이 싸웠기도 했고 욕도 많이 오고갔고(주로 내쪽으로 많이 왔다.) 다시 하라면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젠 정말 내일로 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에 분위기는 꽤나 훈훈해져 있었다. 내가 많이 미안하기도 했고, 기필코 끝나면 50원 더 비싼 바나나 우유라도 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이런게 대학시절의 추억이 아닐까? 걱정반 설렘반 후련함 살짝인 마음으로 잠깐만 눈을 붙이기로 하고 나는 잠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거짓말처럼 열이 39.8도까지 올랐다. 애누리 없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혼성곡은 평소 춤에 관심이 많던 A가 내 자리를 채우게 되었고,
 
랩은 두 명이서 나눠서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랩은 지금까지 연습했던 모든 때보다 가사를 많이 절었다고 한다.
 
열은 정말 더 거짓말처럼 한숨 자고나자 푹 내려서 컨디션이 최상을 달렸고, 나는 나와 같이 준비를 해준 고마운 두 친구에게 잊을 수 없는 흑역사를
'본의아니게' 선물해주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E4NcBm4CU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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