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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에 태어난 아이
게시물ID : freeboard_10760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로배웠어요
추천 : 10
조회수 : 720회
댓글수 : 80개
등록시간 : 2015/09/27 10: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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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상구 아부지! 애가 나올 것 같아요

 

추석날 아침, 차례상을 차리다 진통을 느낀 만삭의 여자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조상 모시는 데는 끔찍한 제주도 출신인데다 벌써 20년 가까이 군인으로 살며 월남전을 두 번이나 다녀 온 이 답답한 인사에겐 통하지 않을 걸 알지만 그래도 자기 새끼가 나오려는데 뭔가 조치를 해주겠지 하는 아주 단순하지만 절박하기도 한 마음을 담아 슬쩍 떠본 것이다.

 

조상님들 모시는데 부정 타게! 참아!”

 

역시나 투철한 군인정신을 강조하는 것 같은 남자의 대답이 돌아왔다. 한두 해 당하는 일도 아니지만 만삭에 진통까지 느끼다보니 그동안의 서러움에다 강원도 양양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까지 더해져 서러움이 올라왔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차리던 차례상을 마저 차리는 여자였다.

 

! 조상님 앞에서 눈물을 흘려? 안 그쳐?!”

 

여자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차례상을 차리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나오려는 아이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으랴. 한계를 느낀 여자는 지갑을 들고 병원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거기 안 서?!”

전 병원에 가서라도 낳을래요!”

너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마!”

 

화가 솟구친 남자는 말대꾸를 하며 뛰어가는 여자를 향해 촛대를 집어던졌다. 촛대는 정확히 여자의 뒤통수에 떨어졌고 이내 시뻘건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여자는 자신의 뒤통수에서 피가 흐르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아픈 뒤통수를 부여잡고 병원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이미 머리가 삐져나오기 시작한 아이는 여자에게 조금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병원을 향해 내달리던 여자의 눈에 길가의 굴뚝이 보였다. 여자는 앞뒤 잴 것 없이 굴뚝을 부여잡고 힘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온몸의 힘이 탁 풀리며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어서 아이를 수습해야 하지만 온몸의 힘이 빠진 여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넋을 놓고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맹일(명절)날 아침부터 이게 뭔 일이고?”

 

여자와 아이를 발견한 건 차례를 지내러 이웃의 친척집에 가던 동네 아주머니였다.

 

야야~ 이기 무신일이고? 와 여서 얼라를 낳았노?”

 

당황한 아주머니는 되는대로 이말 저말을 내뱉으며 구경만 할 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니 여 쪼매 있어봐라. 내 가서 느그 남편 데불고 올게

 

아주머니는 그렇게 자리를 벗어났고, 잠시 후 맨발로 달려온 남자의 손에는 가위와 실이 들려 있었다. 1973년 추석날 아침, 나는 해운대의 어느 골목 굴뚝 아래서 그렇게 태어났다.

* 상구는 가명임


20150927_101220[2].jpg


저는 옛날 사람이라 음력생일을 주민등록에 올렸어요.
남들은 명절날이 생일이라 따로 생일상 차릴 필요 없어 좋겠다고 하지만
저희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하필 명절날에 태어나서 미역국 한 번 못 얻어 먹은 저를 안타까워 하셨더랬죠.
미역국 같은 거 안 먹어도 상관 없는데...

명절날 아침에 티켓 한 번 써 보려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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