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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혁명 당시
아래는 아내분이 쓰신 글 입니다.
82년 결혼하여 15평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습니다.
방이 두개인데 한방에는 늘 후배(운동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그 때 박사과정을 공부할때고 대학 시간강사라 늘 쪼들렸지만 후배들과 끊임없이 민주화투쟁에 앞장 서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친정모친이 겨울방학 때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연탄불을 빼버려 냉방에서 떨고 있는 후배들을 보고 마음아팠던 지난 일이 생각납니다.
물론 그 날 저녁 바로 연탄불을 넣었지만.....
지금도 지날 날을 이야기하면서 후배들이 형수님께 염치도 없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합니다.
박근혜가 장악한 재단퇴진 운동에 앞장섰던 장세용은 늘 교수임용에 탈락했습니다.
사회운동가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투쟁했고 원 없이 공부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20년전부터 도시이론에 관심을 가져 온 것이 결실을 맺어 부산대학에 임용되었습니다.
그 때 부터 서구의 공업도시가 살아남는 것은 문화와 결합해야만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이
공업도시 구미를 위한 것 처럼
딱 맞습니다.
다시 구미는 일어서야합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구미가 될 수 있도록 일 하고 싶답니다.
권력을 탐 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손해를 감수하며 옳은 일에 앞장 서 왔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 분위기 좋다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원여러분들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출처: 락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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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력을 봐도 호락호락하지 않으신 분이시네요.
학생 운동, 사회 운동가, 도시 이론 전문가
박정희 제사 지내는 도시 구미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MB와 맞짱 뜬 한옥식당 주인, 왜 선거에 나섰나 (이항진 여주시장 당선자)
잊어서는 안되는 인물
- 800평이 넘는 한옥식당을 운영
- 여주에 대운하가 들어선다는 말을 듣고 반대운동 시작
- 4대강 반대투쟁이후 식당주차장에 못이 박힌 자동차가 생기며, 손님이 끊김
- 폐업 후, 마을회관 월세 20만원짜리 집에 살게됨
- 환경운동가가 되어 정치판에 뛰어들고
-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 깃발을 여주에 꽂음
- 4대강을 정치로 복원시키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가지신 분
이항진 기억합시다.
출처: 락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