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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식 페북 (전해철이 듣보인 이유. 종합) 당대표는 이분 어떻세요?
게시물ID : sisa_10774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눈팅성애자
추천 : 189
조회수 : 6040회
댓글수 : 58개
등록시간 : 2018/06/15 02:35:58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590266671324691&id=100010240900963

8월에 있을 당대표 선출...
추미애는 생각같아선 탈당시키고 싶을 정도고,
최재성 생각중이었으나.. 역시나 뒷통수가 서늘하여..
이젠 정말 뚜렷한 친문 친노가 진두지휘하는 민주당이 보고 싶어 영업합니다.


전해철이 경기도지사에 출마 한다고 하자 상당수의 사람들이 전해철이 누규? 라고 말한다.

노대통령과 문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지와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전해철이란 이름은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선 대단히 억울한 일인데 이건 노대통령과 문대통령을 거치며 맡아온 전해철의 생색 안 나는 역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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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은 수습 전담이였다.

노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문대통령을 필두로 한 변호인단이 구성됐는데 전해철은 문대통령의 지시로 실제 변론을 만드는 작업을 담당했다.

당시 열받은 문대통령의 변론에 대한 준비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걸 믿고 맡길 사람은 노대통령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전해철이 최적격이라 전해철은 당시 하루에 한 두시간 자면서 탄핵 기간 내내 변론 준비를 하였고 그 당시 살이 7키로가 빠졌다는 설이 있다.

그렇게 만든 변론 자료를 가지고 변호인단들이 헌재에서 피 터지는 법리 공방이 벌어지고 나온 결과는 노대통령 탄핵 기각.
전해철은 공식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실제적인 변론 준비의 상당 부분을 문대통령의 지시로 전해철이 작성 했다.

이름 올린 변호사들은 얼굴마담 성격이고 실무 담당은 전해철을 필두로 한 노대통령과 문대통령의 측근 변호사들..

탄핵이 기각 된 후 전해철은 당연히 할 것 한거고 대통령 탄핵이 기각 됐으니 그거면 됐다. 라고 말 했지만 실제적 변론 준비의 상당 부분을 전해철이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사건이 수습 전담 전해철의 출발점 이였고 그 이후 전해철의 생색 안 나는 막 후 수습 개고생이 시작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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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기각 후 청와대에 복귀한 노대통령은 전해철을 청와대로 호출한다.

"당신이 나 대통령 만들어 놨으니 어디 갈 생각 말고 청와대에서 나를 AS해라. 다 자업자득이다"

노대통령이 있었던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로 이번에 정권도 잡았으니 수임 좀 들어오겠구나 하며 부푼 꿈을 꾸던 전해철은 노대통령의 호출에 내 인생이 돈 벌 팔자는 아니구나 생각하고 보따리를 싸 청와대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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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들어온 전해철의 첫 번째 보직은 민정비서관이였다.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민정비서관은 청와대의 국정원과 같아서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보직이라 언론에 얼굴 드러낼 일 없이 일만 죽어라고 하는 생색 안나는 업무였다.

게다가 직속상관이 문재인 대통령으로 바뀌자 전해철의 인생은 더 꼬였다.

철두철미하고 꼼꼼한 원칙주의자이자 워크홀릭이였던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진중하고 과묵하지만 업무처리 능력이 탁월했던 전해철에게 같이 죽자는 식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민정 업무를 분담했고 내가 왜 사냐 싶은 정도의 살인적인 업무를 감당해야 했다.

이렇듯 전해철은 청와대 구석 음지에서 거의 죽을듯이 일을 하며 민정비서관을 보내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이러다 제명에 못 죽을 것 같아 생존을 위해 청와대 탈출할 구실을 호시탐탐 찾았는데 문재인 민정수석이 먼저 선빵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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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을 것 같다. 젊은 니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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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수석 자리를 전해철에게 양보하고 청와대를 잠시 나간다.

노대통령은 문재인 민정수석이 격무로 인한 과로 누적으로 도저히 업무를 수행하지 못 할 상황이 되어 민정 수석 비서관을 물러나자 전해철을 최연소 민정수석으로 임명한다..

민정수석이란 자리는 기본적으로 언론에 노출되는 자리가 아니라 최대한 언론으로부터 숨어야 일을 잘 하는 자리인 관계로 전해철은 민정수석 시절 내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올 일 이 거의 없었다.

얼짱 조국 수석의 얼굴이 방송에 안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일처리를 잘 한다는 의미다.

민정수석이 텔레비전에 등장 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권에 문제가 많다는 것. 하지만 전해철은 민정수석 재직 시절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그만큼 일을 철두철미하게 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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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이 근엄하고 날까로운 이미지가 된 것은 민정수석 때의 영향이 컸다.

항상 부정부폐를 감시 해야하는 역할에 얄짤없이 각종 비리에 대한 엄중한 조사를 하다 보니 어쩌다 가끔씩 방송 화면에 나올 때 마다 과묵하고 날까로운 얼굴만 노출되는 상황이였고 사람들에게 전해철은 독사 같이 날카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보직이 보직이다보니 양정철 처럼 기자단 출입문 못질도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하는 일이 매일 골방에서 사고 터진거 뒷수습 하고 사고날거 미연에 방지하다보니 말이 삼철 중 한 명이지 전해철이 뭐 하고 있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일반인들은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참여정부가 끝나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이명박의 인간 됨됨이와 사악함을 민정수석 시절 누구보다 잘 알고있던 전해철은 국회의원이 되서 노대통령을 지켜주자는 생각으로 안산에서 출마를 했으나 안산시민들의 첫 반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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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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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민정비서관을 오래 하다보니 인상은 날카롭고 쉽게 접근이 불가능한 이미지였던 전해철은 심지어 정치 초보로 정치인스러운 뻥카도 잘 못쳤고 결정적으로 언론에 거의 노출 안된 전해철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잘 몰랐던 안산 시민들은 전해철을 선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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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후 아니나 다를까 전해철이 예상했던대로 이명박의 노대통령 탄압이 시작되고 노대통령 욕보이기가 시작되자 전해철은 사태를 직감하고 잠시간의 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한다.

늘 하던대로 노무현 대통령은 수습 전문 전해철을 호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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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내 변호를 해 주시게"

노대통령은 다른 변호사들을 모두 제끼고 전해철을 지목하여 변호를 맡긴다.

이미 노대통령의 호출을 예감했던 전해철은 노대통령의 변론 요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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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안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대통령님 죄 없는거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 압니다"

민정비서관과 민정수석의 업무 중 하나는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친인척의 비리파악 이였고 전해철은 노대통령의 요청 전 이미 민정수석 시절 당시를 하나 하나 떠올리며 노대통령 변호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검찰의 피의사실 흘리기로 나왔던 대통령의 금품 수수건 논뚜렁 시계건 등 각종 노대통령 관련 혐의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던 전해철은 몇 날 몇칠 밤을 새워가며 변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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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 입장에선 변론 준비를 하면 할 수록 열이 받는다.

이명박의 노대통령 탄압을 위한 수사 지시로 검찰이 박연차를 타켓으로 삼아 어떻게든 노대통령을 엮으려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전해철은 노대통령에 대한 이명박의 탄압을 어떻게 하면 바로잡고 노대통령의 무죄를 입증해 낼까 라는 생각에 몰두하면서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참여정부시절 민정수석인 전해철만큼 이명박과 검찰의 노대통령 공격이 허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고 그런 측면에서 노대통령도 전해철을 변호인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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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은 노대통령에 대한 변호를 하기로 한 이후 일주일에 하루 이틀 봉하로 내려가기를 수 개월 동안 반복했다.

변론 준비도 준비지만 적적해 하고 힘들어하는 노대통령 곁을 지켜주기 위한전해철의 자발적 행동이였다.

"자네가 내 옆에 있으니 든든하네"

전해철은 대통령의 이 말에 눈물을 흘린다. 무뚝뚝한 경상도 양반이 얼마나 힘드셨으면 저런 말씀을 다 하실까.

전해철은 이명박의 악날함에 새삼 분노하며 내가 대통령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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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는 날 전해철은 준비한 변론 뭉치를 한꾸러미 들고 문대통령 김경수와 버스에 동승한다.

"대통령님은 죄가 없습니다. 제가 그 누구보다 잘 알잖습니까.제가 최선을 다 해 변론을 하겠습니다"

노대통령은 전해철의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고 전해철은 검찰청으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열심히 변론 준비를 한다.

노대통령과 문대통령 전해철 등이 탄 버스는 검찰 청사에 도착했고 세 사람은 검찰청 안으로 들어간다.

노대통령의 범죄 사실을 입증하려는 우병우 이인규와 전해철의 피 튀기는 법리 대결이 열 시간 동안 벌어지고 전해철은 준비된 변론 뭉치와 민정수석 시절의 친인척 관리를 떠올리며 두 쓰레기의 공세를 하나 하나 막아냈고 그렇게 노대통령의 검찰 출두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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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출두 후 노대통령은 칩거에 들어갔고 외부인과의 모든 만남을 중단한다.

전해철은 혹시 모를 추가 변론과 노대통령의 적적함을 달래주기 위해 지난 몇 달 처럼 수시로 전화를 드리며 일주일에 일 이회 봉하를 방문한다.

당시 노대통령의 주위엔 문대통령 김경수 전해철등 핵심 측근들만 남아있는 상황이였다.

노대통령이 서거하기 이틀 전 전해철은 왠지 느낌이 좋지않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다.

"대통령님 잘 버티셔야 합니다"

그게 노대통령과 전해철의 마지막 대화였고 2009년 5월 23일 노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여 생애를 마감하신다.

노대통령의 변론을 맡아 누구보다도 노대통령의 죄 없음을 잘 알고있던 전해철은 노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반미치광이가 돼서 대성통곡을 하며 봉하를 내려갔고 장의위원회의 실무를 맡아 묵묵히 장례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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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은 2011년 겨울 문대통령이 살고 있던 양산 자택으로 양정철과 함께 찾아간다.

이대로 가다간 박근혜의 집권이 훤히 보이는데 이에 대항할만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 밖에는 없다는 판단에서 문대통령을 어떻게든 정치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

전해철과 양정철은 다짜고짜 문대통령에게 말한다.

“문실장님 대통령에 출마하세요.
이대로 가다간 다음 정권도 저쪽에서 차지 할 상황입니다.
이건 하기 싫다고 안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진영 전체의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일단 총선 출마부터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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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먹구 가”

문대통령의 첫 번째 답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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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당시 문대통령의 발언은 완전 사기인데 문대통령은 자신은 정치를 잘 할 자신이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문대통령이 거부를 표시할땐 특유의 방식이 있는데 눈만 껌뻑껌뻑 하면서 아무 말도 안한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문대통령이 아무 말도 안하고 입 다물고 있으니 이거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전해철과 양정철등은 문대통령을 몇 날 몇 칠을 깨 볶듯이 달달 볶으며 출마를 강권하고 강한 압박이 성공하여 결국 문재인대통령은 부산에 출마를 해 당선되고 그 해 대통령 후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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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통령 선대위가 구성 되자마자 선대위 내에서 삼철 물러나라는 소리가 튀어 나온다.

기껏 문재인 대통령을 국회의원 만들고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놨더니 전해철에게 돌아온 말은 물러나라였다.

전해철과 양정철은 선대위의 요구대로 대선 캠프에서 즉시 물러났고 대선 과정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명목상 대통합 지도 체제로 이뤄진 선대위는 비노 반노 인사들을 중심으로 꾸려나갔지만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사사건건 충돌과 반목이 일어나자 결국 정세균 단일체제가 됐다.

그러나 정세균 의원이 총지휘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선 캠프는 엉망진창이였고 보다보다 못한 정세균 선대위원장은 전해철과 양정철 등을 을 불러 은밀하게 대선 캠프를 이끌고 나갈 것을 주문했고 결국 아무도 모르게 스파이처럼 대선 캠프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나가야만 했고 결국 대선은 문대통령의 패배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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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전해철은 문재인대통령에게 당대표로 출마할 것을 요청했다.

대부분 측근들은 이 상황에서 무슨 당대표 출마냐고 말렸지만 전해철이 사력을 다해 추진하여 결국 문재인대통령은 당대표가 됐다.

하지만 전해철은 비문과 반문진영의 강력한 견제로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아무런 당직도 맞지 못했다.

2015년 민주당은 안철수 이하 비문 반문 의원들을 중심으로 새정치를 요구하며 문재인 사퇴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흔들다 결국 대규모 탈당사태가 발생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김종인 카드를 꺼내들고 김종인을 전면에 배치했다.

당의 전권을 잡은 김종인은 친문 숙청에 나섰고 이해찬, 강기정, 김현 등의 친소 세력들이 줄줄히 공천 탈락을 했으며 친문의 핵심인 전해철도 제거하려 했지만 전해철은 3번의 공심위 반려와 대결하며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서 드디어 문재인대통령이 선출된 후에도 여전히 삼철 물러나라는 야당 수구 언론의 고정 레파토리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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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서의 전해철은 상당히 기구한 인생이였다.

참여정부시절 민정비서관과 민정 수석을 지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세였지만 자신의 홍보를 위해 업무적 특성상 자신이 했던 일을 대외에 알리는 것 자체가 대통령과 정권에 누가 되는 것이기에 지금 이 시간까지도 자신이 참여정부시절 했던 수많은 일들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친문 핵심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식 선거캠프에서 매번 제외되고 항상 음지에서 문대통령을 도와야했고 정권과 당의 사고가 터질 때 마다 아무도 모르게 온갖 사고를 수습하는 일을 십 수 년간 해 왔으니 해왔던 일은 어마어마한데 그것을 자랑삼아 말 할 상황도 아닌 아주 애매하고 억울한 위치에 전해철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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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은 듣보다. 
전해철은 뭐하는 사람이냐
전해철이 한게 뭐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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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위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정치인에게 이전 보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방송에 자주 얼굴 알리고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보직과 최대한 얼굴과 이름이 노출되지 않아야 하는 보직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노무현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근 20년을 두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생사고락을 같이해 온 사실상 친노 친문의 레전드와 같은 사람이 지금도 듣보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에게 안 알려진 것에 대해 한편으론 서운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전해철이 근 이십년 동안 수습 전문으로 노대통령과 문대통령을 잘 보필해왔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진국은 진국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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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은 노무현과가 아닌 문재인과라 무뚝뚝해서 다른 정치인들처럼 깔대기 대는 것도 약하고 공치사도 약하고 주위에서 조금만 칭찬해도 민망한 웃음 지으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듣보 전해철은 알고 보면 듣보였기 때문에 더 훌륭한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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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습전문 듣보 전해철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경기도지사로 출사표를 던지는 마당에 전해철의 살아온 행적을 잘 알고 있는 내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내 스스로의 직무유기라는 판단이 들어 나라도 지지를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해 왔고 그런 연유로 듣보 시리즈도 쓰게 된 것이다. .

20년을 노대통령과 문대통령 그리고 국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전해철을 내가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인 것이고 여러분들도 전해철은 듣보라 경기도지사 힘들어 라는 편견을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과연 누가 경기도지사를 해야 문대통령 국정 운영과 경기도에 도움이 되는 지 현명한 판단을 해 주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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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안 해서 듣보가 아니라 너무 일을 잘하고 많이 해서 듣보인 전해철경기도지사 후보의 지지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출처 김찬식님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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