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는 고기를 즐겨 먹는다. 하지만, 그녀와의 처음을 잊을 수 없다. 그녀의 이름은 유린. 나의 소꿉친구였다. 중학교 때 학교가 갈리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 다시 만나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유린이는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이른바 만능이었다. 왜 내 친구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일단, 얼굴이 예뻤고, 몸도 좋았다. 일주일에 두번 꼴로 고백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고 푸념을 할 정도였다. 공부도 잘했다.. 반에서 3등은 가볍게 들곤 하였고, 2학년 때는 전교 1등도 해 보았다. 게다가 정말 착하기까지 했다. 유린이는 어떤 때는 나에게 여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린이에게서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었다. 유린이는 사실 고기를 매우 자주 먹으며, 중3 겨울방학 때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다이어트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유린이는 그렇지 않았다. 고기는 한 번도 먹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을 약하게나마 갖고 있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그렇다 할 만한 정황이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열흘 즈음 지났나, 유린이가 갑자기 자기네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사실 집도 아파트 바로 옆 동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는 심심하면 쳐들어가고 하곤 하였다. 그래도, 몇 년동안 안 가던, 여자의 집을 가려 하니 갑자기 가슴이 떨렸다.
유린이는 샤워를 하고 난 모습이었다. 정말 여신, 이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 둘은 둘이 알고 지내게 된 이후로 그렇게 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별의별 이야기 다 했었다.
그러다 유린이는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며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꺼내온 것은, 고기, 야채, 그리고 소세지였다. 나는 TV로만 보던 고기를 실제로 처음 보게 되어 당황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 이거 먹을까?" 하는 유린이의 말에, 나는 이성의 끈을 놓게 되었다.
유린이가 고기 팩을 뜯는 동안, 나는 소세지 팩을 뜯었다. 나는 TV에서 보던 고기팩 뜯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소세지를 뜯었다.
유린이가 연 고기팩에는 불고기가 들어 있었다. 선홍빛의 꽃등심을 내심 기대했던 나는 실망했었다. 다른 고기는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는 다 질리고 불고기가 먹고 싶었다는 유린이의 말에 한 번도 고기를 먹어본 적 없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나는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나눠 불판 위에 올려 놓았고, 유린이는 그 동안 채소를 준비하고 소세지를 불판 위에 올렸다. 고기가 뜨거워지며 우리의 분위기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고기가 다 익었을까. 나는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세지와 고기를 상추에 같이 넣어 먹으려 하자 유린이가 갑자기 막았다. 고기와 소세지 사이에 깻잎을 무조건 끼우라는 것이었다. 맛은 떨어져도, 훨씬 건강에 좋다는 말에 나는 유린이의 말을 따르게 되었다. 혹시 잘못하다가 유린이가 또 다이어트를 하는 상황이 오면 안 되니깐. 이제는 유린이가 고기를 많이 먹는 것도, 다이어트를 했단 것도 전부 믿게 되었다.
씹다 보니, 소세지에서 치즈가 흘러 나왔다. 치즈 소세지는 나도 즐겨 먹긴 하지만, 고기랑 같이 먹으니 색다른 맛이 났다. 유림이가 준비한 고기는 비록 불고기였지만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고기파티는 끝났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정확한 말인 것 같다. 처음에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나는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기를 즐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처음 먹었던 고기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