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유감'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살펴보면, 유감은 외교적으로 자주 활용되는 단어입니다. 이유는 충분히 모호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이제껏 비슷한 짓을 여러차례 저지르고도 '사과'란 단어를 표현한 적은 없습니다. 정말로 외교전에서 '사과'란 단어는 패전국이 패전성명 발표때에나 보는 희귀한 단어가 맞습니다. 일례로 심지어 패전국인 일본 조차 수십년동안의 '사과' 요구에 '유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오고 있습니다.
기분이 나쁘지만, 우리가 더 집중해서 봐야하는것은 따로 있습니다.
외교전이란 원래 단어 하나로 싸우는 것이고, 거기에 쓰이는 토씨 하나 가지고도 밤새 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토씨 하나도 유심히 봐야하는 게 외교문서인 겁니다.
첫째는 유감이라는 단어 사용의 문맥입니다. 즉, 누가 무슨 사건으로 유감이다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 경우 누가 라는 주어는 외교적으로 양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이는 문장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발표자(화자)가 누구인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과거 서해 교전 시에는 북한 대표 누구의 명의로 북한에서 통지문을 통해 전달하고, 북한 tv에서 이를 방송함으로써 이를 확인하는 형식입니다. 즉, '이러 이러한 사건에 유감이다'라고 주체인 북한이 전달하고 방송함으로써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발표는 이게 좀 희한합니다. 일단 발표된 게 '공동보도문'입니다? (듣도보도못한 개념입니다.) 보도문? 여기 화자는 누구일까요? 것두 우리 대표가 발표하고 끝입니다. 이 '보도문'에 북한이 어떤 책임이 있는 걸까요?
게다가, 공동보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http://m.media.daum.net/m/media/issue/1199/newsview/20150825021853976
1.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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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보도문의 1항과 3항~6항은 하나같이 '~하기로 하였다' 인 반면 정작 중요한 '유감' 표명인 2항은 '유감을 표명하였다' 는 과거완료형입니다. 즉, 회담에 참석한 남측 2인 한테 유감이라고 말한 게 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이건 사과가 아닌게 문제가 아니라, 유감 표명 조차도 제대로 한 게 아닙니다. 그냥, 남측 대표자의 발표에 의해, 내(남측 대표)가 들었단 이야기를 보도한 것입니다.
전형적인 '내 귀의 사과' 입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이 듣고, 북한의 입에서 나온 말이 명확히 해야할 무려 합의항을 말하는 것도 명확치 않은데 무려 들은 셈 치는 상황이 발생하는것입니다.
둘째로 첫째의 이유로 '공동합의문'이 아닌, '공동보도문'이 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새벽 이례적으로 우리 언론들이 초기 공동 합의문 발표라고 보도했다가 금방 공동 보도문이라고 정정 멘트를 하더군요
이게 그만큼 외교적으로 중요한 단어라는 뜻입니다. 국민들한테는 마치 회담 결과인 합의문 처럼 들리게 하지만, 사실은 보도문일 뿐입니다. (아무런 정부 나아가 북측의 책임이 있는 발표가 아닙니다.) 북한은 올라가서 '유감 표명? 안했는데?'라고 해도 항의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냥 보도문일 뿐입니다. 보도문의 주체는 언론이지 정부가 아닙니다. 그것도 우리 나라 언론일 뿐인 겁니다.
그럼 이번 회담의 성과인 '합의문'은 대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담고 있다는 걸까요? 착각하면 안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보도문은 보도문일 뿐 회담의 결과인 합의문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유감 표명은 최종적으로 북측에서도 발표되어야 합니다. 실컷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남측의 조작이다. 남한을 때려잡자 지들 방송에서 떠들어대었는데, 정작 공동보도문이 북한에 보도가 안된다면, 우리만 일방적으로 대북방송을 중단한 굴욕적인 협상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일 례로 동해 잠수함 사건과 서해교전의 유감 표명문은 북한의 tv방송 뉴스를 통해 북한 내에도 공표되었습니다. 이는 조금만 찾아보시면 북한 tv에 보도되는 유감 표명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번은 어떨까요? 애초의 공동보도문인데..이게 모호합니다.
'공동보도'를 남북한 방송이 동시에 한다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서 그냥 '공동보도문'이라서 남한만 보도해도 무방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지켜봐야겠지만, 제 예상은 90프로 이상 북한의 방송은 이번 '공동보도문' 원문을 발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냥 '공동보도문'을 합의했다거나 만들었다로 끝나거나(이거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예 언급을 안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실 이렇든저렇든 전쟁은 안하는 게 상책입니다. 따라서 긴장완화의 국면 자체는 환영할 일입니다.
다만, 말한 사람도 없고 들은 사람도 없는 굴욕적인 '내 귀의 사과' 라는 성과를 두고 추켜 올리는 한심한 정부나 언론이 구역질 날 뿐이며.
더우기..이번 회담에서 밝히지 않은 '합의문'은 대체 어디에 어떻게 있을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