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꺼려했다.
설령 있다하더라도 연락을 끊고 잠깐 정리하는 것을 반복.
나의 모습이 아닌 가짜의 모습을 쓰고 사람들을 대한다.
이게 나의 모습이니까, 당신들에게 기억되는 나는 참 좋은 사람이야.
스스로 위안한다. 그리고 안심한다. 그리고 관리한다.
혹시나 나의 더러운 모습이 들킬까봐.
거짓말도 일삼는다. 완벽한 내가 되기 위해서, 색칠을 더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들통나고 위기가 닥쳐왔을 때, 있는 힘껏 나를 변호하며,
그동안 공들여왔던 아름다운 가면을 붙잡는다.
"넌 거짓말쟁이야." 돌아오는 것은 악담 뿐.
하지만 주눅드는 것도 잠시 뿐,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또 다시 가면을 만들어낸다.
항상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주었다며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하며 잊는다.
이번엔 더 주의를 하자. 사람들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돼.
더 완벽한 나로 거듭나기 위해서 나는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작전을 세운다.
나는 또 다른 가면을 뒤집어 쓴 채, 다시 하나하나 색칠해나가기 시작한다.
전에쓰던 흉측했던 가면을 보며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게 진짜 나의 모습이니까, 내가 이루어낸, 구축해낸 나의 진짜 모습이니까.
하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위기는 또 다시 나를 끌어내리게 만든다.
"너같은 놈을 믿었던 내가 잘못이지." 다시 바닥으로 추락한다.
두어 번의 실패는 추진력을 상실한 로켓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칠치게 만든다.
다시 시간이 지나서 생각한다.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가장 큰 난제는, 그러한 가면을 쓰지 않는 나의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
옷장 속에 진열된 옷들처럼, 금방이라도 꺼내서 입으면 될 것 같지만,
그 중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의 모형을 딴 기계 하나에 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구축시킨다고,
그 시스템이 진짜가 아니듯, 나의 모습은 그런 고철덩어리와 다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 수록 진짜 나의 모습에 대해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사랑하면 할 수록 처음 느꼈던 설레는 벅찬 감정이 무뎌지듯,
계속해서 살아갈 수록 처음에 진실된 나의 모습이 무뎌지게 된다.
언젠가 그러한 물음들에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또 다시 진열된 가면들 중 하나를 뒤집어 쓰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이것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소개할 것이다.
항상 드는 후회 중 하나가, 진짜, 원래의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인데하는,
알면서도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자책이다.
사실 진짜 나라는 것은 잘 빗은 도자기를 떠나보낸 자리에 남겨진 튀어버린 진흙과도 같다.
툭툭 던져놓고는 사실 그것이 나였다고 착각하는 망각의 존재.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사랑하면 할 수록 불편하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면 할 수록 편해진다.
애초에 진짜 나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나에게 특출난 시스템을 입힌 것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