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지사 이재명, ‘황소’의 벼룩 같은 애티튜드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인터뷰 태도 논란에 대해
6월13일 저녁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 소감을 말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 한겨레 강창광 기자
6월13일 저녁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 소감을 말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 한겨레 강창광 기자
‘개미’만 한 몸집의 히어로가 있다. <마블>의 히어로 중 하나인 ‘앤트맨’이다. 앤트맨 수트를 처음 받아든 주인공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몸집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다.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자신의 몸집을 조절하고 몸을 놀릴 수 있게 됐을 때, 그는 비로소 히어로로 거듭난다. 이 과정을 통해 앤트맨은 ‘사이즈’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음을 보여준다. 사이즈에 걸맞은 ‘애티튜드’(태도)와 ‘플레이’(기량)다.
정치에서도 사이즈에 맞는 애티튜드는 필수다. 가슴에 품은 뜻은 초지일관 지켜야겠지만, 체급에 따라 처신은 달라야 한다. 초선 의원처럼 혈기방장한 다선 의원을 만나거나, 다선 의원처럼 중후한 초선 의원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6·13 지방선거에서 상대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된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선거 뒤에 더 큰 비판을 사고 있는 것도 그가 덩칫값을 못해서가 아닐까. 스캔들의 진위보다 대중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가 스캔들을 대하는 태도다. 이재명은 6월13일 당선된 뒤 언론 인터뷰에서 불편한 질문이 나오자 “관심사가 오로지 그거(스캔들) 같다”고 비아냥거리거나 “잘 안 들린다”며 전화를 끊었다. 같은 시각 경남의 김경수 당선인이 ‘드루킹 특검’ 관련 질문에 성실히 답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이재명의 ‘마크맨’(전담 취재기자)을 맡았던 내게, 그에 대한 여러 평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벼룩이 소처럼 걸으면 눈에도 안 띈다”던 어느 참모의 말이었다. 수위 높은 사이다 발언들이 체급을 반영한 전략이라는 취지였다. 그는 한마디 더 보탰다. “소가 벼룩처럼 뛰면 미친 소지.” 때가 되면 이재명도 그에 맞게 거동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지근거리에서 취재할 때 그는 무엇보다 ‘달변’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재명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다양한 비유와 직설을 오가며 날카롭게 입장을 내놨다. 다만 ‘억강부약’(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줌)을 주장하는 그의 언어는 대개 강자에 대한 공격이나 세태에 대한 비아냥에 가까웠다. 듣기에 시원하지만 감동은 적었다.
단 한 번 이재명에게서 ‘감동의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지난해 4월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뒤 지지자들 앞에서 원고 없이 토해낸 즉석 연설이다. 그때 이재명은 “우리가 지금 이렇게 헤어지지만 가정으로 직장으로 마을로 돌아가서, 우리가 가진 커다란 꿈을 키워서 다시 돌아오자”고 외쳤다. 공격과 조롱의 말이 아니라 긍정과 비전을 담은 말이었다. 마크맨으로서 나는 그때 이재명이 마침내 덩치에 맞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스캔들을 대하는 이재명의 태도는 그가 여전히 자신을 주류와 싸우는 ‘변방의 사또’로 생각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의 한 측근은 “이재명은 살아온 삶 때문에 자기방어가 심하다. 공격을 당하면 거세게 반격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인구 100만 성남시를 이끌거나 비주류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땐 지지자만 상대할 수 있었겠지만, 틀렸다. 인구 1300만 경기도를 이끄는 이상 그에겐 숱한 공격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황소’의 몸으로 ‘벼룩’처럼 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