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근승 기자]
시련은 언제나 아프다. '어차피 3패'란 소리를 듣던 월드컵이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씁쓸함이 휘몰아친다. '숙적' 일본과 이란이 잘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지난 4년간 뭐 했나' 자괴감까지 들이닥친다.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다. 최선을 다한 이들의 눈물이 뭉클함을 전하지만, 속 깊이 자리 잡은 분노의 감정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중략) 장현수의 반복된 실수, 국대의 문제 블라블라
다시 한 번 떠오르는 물음, '한국 축구는 공정한가'
그들이 틀렸음이 월드컵 본선 2경기를 통해 확실히 증명됐다. 강점이라던 빌드업 능력은 보이지 않았고, 부정확한 패스만 도드라졌다. 이전에 수차례 반복했던 실수도 자취를 감추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실점에는 그가 있었다. 우리는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쌓인 불만이 폭발했다. 지도자들이 장현수의 반복되는 실수를 외면하면서, 누군가는 기회를 잃었다. 지난 시즌 '대들보' 김민재와 함께 K리그1 최소실점에 이바지한 이재성(전북 수비수), K리그1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오반석, 손흥민 다음으로 한국 선수 중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권경원 등 수많은 재능들에 부여된 기회는 너무나도 적었다.
안 그래도 학연과 지연이 능력을 뛰어넘는 역사가 뿌리 깊은 대한민국이다.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는 소속팀에서 오랜 시간 빼어난 활약을 보여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반면 누군가는 소속팀 활약이 저조하고, 심지어 뛰지 못해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거다. '한국 축구는 공정한가', '원칙은 존재하는가'란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가 없다. 능력이 부족한 선수가 대표팀 주전이 되고, 뼈아픈 실패로 이어지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거스 히딩크가 아니었다면, 박지성이 2002 한·일월드컵 역사의 중심에 섰을지 의문이 드는 대한민국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중략)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고, 답이 없으면 만들어내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고 존재 이유다. 히딩크 감독이 기존 한국 축구 자원에 만족했다면, 2002 한·일 월드컵 신화는 없었다. K리그를 쉴 새 없이 누볐고, 끝까지 객관성을 유지하며 선수를 발굴하고 또 발굴했다. 그것에 멈추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선수로 거듭나게 했다. 3-4-3 포메이션의 윙백을 담당했던 박지성을 한 위치 끌어올려 공격수로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축구팬들이 장현수에 대한 엄청난 비판을 쏟아내는 데는 한국 축구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담겨있다. 사실 장현수는 큰 잘못이 없다. 지도자들이 너무 막대한 부담을 안겼고, 능력이 감당하지 못했을 뿐이다. 경쟁을 통해 그를 좀 더 강하게 만들었다면, 최소한 이 정도의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 안타깝다.
똑바로 봐야 한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무분별한 비난에 올바른 비판까지 가리지 말아야 한다. 장현수 논란의 시작은 어디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파악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축구인이라면, 26세 청년에게 2018 러시아 월드컵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지게 해선 안 된다. 언제 어디서나 책임은 권한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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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얘기에 비단 국한되지 않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치나 최근 문제가 되는 팟캐 이슈 등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맞추어 변화하고 실력을 키우지 않고
친목질로 썪어문드러지는 건 예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국대가 아니라 축협이 변화되길 기대합니다.
한국정치도 문대통령을 중심으로 변화한 민심에 발맞추어 혁신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