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1년 7월.. 난 조그마한 백화점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전역을 하고 등록금이나 모아볼까 하고 시작했던 일인데
집안 사정상 학교를 그만두게 되면서 1년 반째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다니고 있었다.
보안팀의 인원은 총7명으로 주간조는 팀장포함 4명, 야간조는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월 8회씩 휴무를 해야했기에 실질적으로 세명이
같이 일하는 날은 6,7일 정도였고 대부분의 시간은 2명에서 근무를 해야했다.
야간조의 업무는 정말 간단했다. 밤10시에 매장을 오프한뒤 계속 순찰과 취침의 반복이다. 아침이 되면 매장 오픈준비를 하면서 주간조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면 되는 정말 단순한 일이었다.
근무자가 두명일땐 한명은 자고 나머지 한명은 보안실에서 상주하며 CCTV를 계속 보고 있어야한다. 매장오프를 했다고 아무도 없는게 아니라
미화팀 이모들이나 전기실 당직자는 매장안에 있기 때문에 만일에 대비하면서 50대 가까이되는 CCTV화면을 유심히 봐야한다.
자는 시간은 고참순으로 나중에 자게되는데 그땐 내가 제일 고참이라 항상 나중에 자곤 했다.
문제의 그날 같이 근무했던 동생은 나보다 2살 어린데다 알고보니 학교 선후배였는지라 형동생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동생을 먼저
자라고 보낸뒤 별일없이 시간을 보낸후 새벽4시가 되서 동생이 보안실로 복귀를 했고 2차 순찰을 돌고 난뒤 곧장 숙직실로 가서 잠을 청했다.
야간일은 아무리 하는일 없이 앉아있어도 몸이 피곤해서, 눕기만 하면 꿀잠을 잘수있었다.
한참 잘자고 있는데 머리맡에 놓아둔 무전기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행님, 좆됐씁니다" 동생의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다급함을 보니 백화점 고위층이 기습방문이라고 했나 싶어서 짜증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왜, 지점장이라도 들어왔드나?"
"도둑들었습니다. 행님"
도둑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피곤에 찌든 몸이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졌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듬과 동시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일단 해야될일을 하자 싶어서 동생에게 모든 출입문을 봉쇄하고 대기하라고 전하고 나 역시 보안실로 복귀를 했다.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CCTV녹화화면 몇가지를 보여줬다. 첫번째는 이 도둑이 백화점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새벽5~6시에는 지하1층
마트에 납품하는 차량들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원칙은 닫아놓고 방문할때마다 열어줘야 하지만 한두대도 아니고 10대가 넘는 차량이 수시로
드나들다보니 귀찮은 날에는 사람 한명 기어들어갈수 있을 정도로 열어놓고 CCTV만 죽어라 보고있곤 했는데 하필 동생이 그날 셔터를 살짝
올려놨는데 그틈을 이용해 도둑이 들어온것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화면을 보여주는데 그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매장에 침입한 도둑이 엘리베이터를 타지않고 2층으로 진입을 했는데 CCTV의 존재를 의식했는지 바닥에 바짝 엎드린채 포복전진으로
정말 빠른 속도로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2차순찰때 최소한의 빛만 남겨두고 소등을 해버렸기에 바닥을 기어다니던 도둑은 금새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
고 그뒤로는 카메라에서 찾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린 도둑과의 원치않은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할일은 도둑의 위치파악인데 드넓은 매장을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는 놈을 고작 두명에서 수색하는건 무리였고, 각증에 설치되어있는
보안시스템을 가동했다. 평소땐 미화이모들이 수시로 왔다갔다해서 일부러라도 켜지 않았었는데 그날은 매장에 연락이 닿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전을 넣어서 꼼짝말고 숨어있으라고 전한뒤 모든층의 보안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감지된다면 바로 그층 센서에서 경광등이
켜지는 시스템인데 작동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2층의 센서가 요란하게 깜빡거렸다.
도둑의 위치는 2층... 동생과 나는 방검조끼와 삼단봉, 후레쉬를 챙겨서 2층으로 향했다. 빛이 있는곳은 정말 좁았고 그층의 대부분은 시커먼 어둠이
었다. 쌩으로 순찰만 돌때도 겁나는 곳인데 어디 숨었을지 무슨 흉기를 들었을지 모를 도둑이 있는곳을 돌아다니려니 정말 공포스러웠다...
동생과 서로 반대방향으로 삥 둘러서 돌았는데도 도둑을 발견을 못하자 그사이에 다른층으로 옮겼나싶어서 꺼져있는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려던 찰나
동생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야이 씨발놈아 거기 안서나!!! 행님 저새끼 저기있습니다" 동생이 가르키는 곳을 보니 도둑이 제일 처음 침입했던 2층 입구쪽이었다.
그곳으로 뛰어가보니 도둑이 도망치다가 흘린 훔친 양복과 구두 몇켤레가 떨어져있었고 소리를 들어보니 아래층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따라붙었다. 도둑은 주차장입구셔터를 열려고 버튼을 연타하고 있었고 뛰어오는 우리를 보더니 지하주차장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얼핏 본 도둑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다. 암튼 동생은 그 도둑을 쫓아서 지하로 뛰어갔고 1년반의 순찰로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던 나는
지하주차장 반대편 출구에서 놈을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두사람의 뜀박질 소리가 가까워오고 나는 삼단봉을 펼쳐서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후 도둑이 시야에 들어왔고 삼단봉을 크게 휘두르려는데 가속도가 붙은 도둑놈의 날라차기에 팔을 맞고 넘어졌고 그놈역시 착지를 잘못해서
발을 헛디딘후 넘어졌다. 내가 맞고 쓰러진걸 뒤에서 보던 동생은 넘어져있는 도둑에게 알고 있는 모든 공격기술을 퍼부었고, 나도 분에 못이겨
몇대 쥐어박았다. 흥분을 가라않히고 보니 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낯이익다 했더니 불과 얼마전까지 나와 같이 일했다가 근무태만으로 짤린
전직 보안요원이었다. 생각해보니 더 괘씸해서 쌍욕과 함께 카메라가 안찍히는 곳에서 몇차례 더 쥐어박은 후 경찰에 신고를 하고 최초발견자인
동생은 경찰서까지 따라가서 진술서를 작성하고 왔고 나는 팀장과 매장고위관계자들에게 아침해가 밝자마자 전화를 해서 이사실을 알렸다.
도둑놈이 훔친 옷가지,신발들의 금액을 환산해보니 500만원 가량이나 되었는지라, 도둑을 잡은건 잡은거고 애초에 뚫린게 잘못이지 않냐며
관리실장이 난리를쳤지만 지점장이 그래도 잘했다며 포상금 20만원씩을 뽀너스로 받고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 뒤로 관리실장의 눈밖에 난 탓인지 몰라도 한달뒤 그만두게 되었는데, 4년이 지난 지금도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후레쉬 하나에만 의지해서
도둑을 찾아다녔던걸 생각하면 다리가 후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