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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이
게시물ID : panic_829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orLeonis
추천 : 12
조회수 : 151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8/29 03: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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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나는 어렸을때 굉장히 병약했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 기억의 대부분은 병원에서 지낸 일이었고, 죽을뻔한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고 들었다. 

초등학생이 될때쯤엔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한두달에 한번은 앓아 눕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아파 눕는데도 병원에 가면 의사는 내 몸에 큰 문제는 없다고 했고, 단순한 감기나 몸살이라는 처방과 함께 주사나 링거를 놔주는게 거의 전부였다.

또 아파도 보통은 사나흘정도, 길어봐야 일주일 앓고나면 곧잘 건강해져서 나도 부모님도 이제는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기가 약해서 잔병치레가 잦은거라고 보양식품이나 한약따위를 가져오셨고, 난 맛없지만 억지로 먹곤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난 크게 앓게 되었다. 처음에는 예전처럼 길어야 일주일 앓고 낫겠지 했지만,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 다 되가도록 차도가 없이 계속 누워있었다. 

내가 일주일이 넘도록 아프자, 그제서야 부모님은 평소의 단순한 몸살이 아닐거라고 생각했는지, 시름시름 앓는 나를 데리고 이 병원, 저병원 다 다녀봤지만, 단순히 감기라고, 단순한 몸살이라는 처방만 내렸고, MRI니 CT니 뭐니 하는 각종 검사를 받아도 정상이라는 결과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다녀본 병원이 두자릿수를 넘을 무렵, 나는 깨있는 시간보다 자면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었고, 잠든 동안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는 꿈을 자주 꿨다.



어느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잠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숲에 들어온 것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현실성 없는 그 상쾌함이 꿈속임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마치 꽃밭에 누워 있는것처럼 달콤한 냄새가 났고, 아픈것도 다른사람이 아픈듯한 느낌이었다.

"애가 진짜배기 반쪽이로구만 반쪽이야!"  지긋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은 띄여지지 않았다.

"한달쯤 전부터 이렇게 아팠는데, 어딜가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가 반쪽이라서 이런것을! 의사는 감기나 몸살이라겠지, 백날 병원을 다녀도 나아질까!"

"그 반쪽이라는건 무슨 말씀이신지..."

"보통 사람은 신생아든, 노인이든, 남자건 여자건, 병이있던 어떻든간에 그 한명 그 자체로서 온전한 존재라네. 그런데 이 아이는 그 반쪽밖에 없는 놈이야. 어쩐일인지 하나의 존재가 둘로 나뉘었단 말이야. 한명한테 가야할 혼이, 정기가, 생명력이 둘로 나뉘어있는 셈이지." 

노인의 목소리는 골골대는듯하면서도 힘이 가득 실린것 같았고, 믿을 수밖에 없는, 현기같은게 실린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엄마의 목소리는 울것만 같았다.

"보통 열살 전후에 약한 한쪽이 죽고, 그래야지 남은 한쪽이 평범하게 살아갈텐데, 이대로면 이 아이는 죽겠지."

담담하게 내 죽음을 말하는 노인에 부모님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 그럼 만.. 만약에 제가 다른 한쪽을..." 한참만에 말을 꺼낸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렇지, 그렇게 되겠지..."

"하!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당신은 정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얼른 나가자" 아버지가 화내듯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굳이 믿기 싫다는 사람한테 믿으라고 할 생각은 없네만, 그래도 연이 닿았으니 도움이 될만한걸 만들어줌세."

머리에서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이 아이만 가리키는 나침반 같은걸세. 하지만 이세상에 이 아이는 둘인 셈이니까, 더 가까운 쪽을 가리키게 되겠지. 내키면 사용해서 다른 한쪽을 찾아보게나."

"참, 아이한테 남은 시간은 6주정도일걸세. 잘 생각해보게"

이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곧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나 보니 다음날 저녁이었다. 거의 24시간을 잔 셈이었다. 오후 10시쯤인걸 보니까 부모님이 둘다 있을 시간인데 집에는 아버지뿐이었다.

"아들 괜찮니? 죽이라도 좀 줄까?"

"아녀 식욕이 없어서... 엄마는 어디갔어요?"

"어... 갑자기 급하게 출장가야된다고 하더구나. 아마 2주일정도 걸릴거래."

문득 어제 꿈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6주남았다던가? 묘하게 현실감 있었던 꿈이라 6주남았다는 소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6주만 있으면 이렇게 더 아프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다른 이야기도 있었던것 같은데 6주라는 소리만 계속 떠올랐다. 그 6주라는 시간을 계속 생각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꿈에선 내가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고 있었다. 달리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지만, 무슨일 있었냐는듯 일어나서 다시 달렸고, 마지막엔 골을 넣었다.



이때쯤의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면서 보내느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엄마는 거의 3주일이 다 되어서 돌아왔다. 엄마와 아빠가 소리높여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나서 엄마와 몇마디 말을 나눴지만 대부분 꿈처럼 흐릿해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엄마가 울먹이면서 '사랑한다 얘야, 너를 위해선 뭐든지..." 라고 읊조린것만은 또렷히 기억난다.

그 날 꿈에서 나는 아빠한테 자전거를 배우고 있었다. 나도 건강해지면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때는 집이 아니라 병원이었다. 집에서 깨어나면 두번중 한번은 간병인이, 한번은 부모님이 있던거에 비해서 병원에선 며칠이 지나도 부모님을 볼 수 없었다.

며칠이고 안보이는 부모님에게 서운했지만, 내가 자는동안 몇번 다녀갔다는 간호사의 말에 금방 풀려버렸다. 

병원에서도 거의 잠만 자며 시간이 흘러갔다. 이때쯤엔 매일같이 또 하나의 나에 대한 꿈을 꾸었다. 잠깐 깨어났을땐 달력을 보고 창밖을 보다 다시금잠드는게 일과였다. 꿈에서 노인이 말한 6주가 맞다면 이제 닷새정도 남았을까. 

이대로 곧 죽게 된다고 해도 삶에는 별로 미련이 없었지만, 매일같이 꿈에서 보는 또 하나의 나를 지켜볼 수 없다는게 아쉬웠다. 오늘도 잠깐 깨어났다가 이번엔 어떤 꿈을 꿀까 기대하며 곧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목 뒤에서 뭔가 찌리릿 하는게 느껴지더니 온 몸에 힘이 빠져 쓰러져버렸다.

눈을 뜨자 을씨년스러운듯한 건물이었다. 게다가 나는 손발이 묶여있고, 입엔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가까이에 누군가가 보였다. 꿈속의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겠지만, 내게는 아주 익숙한 모습.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인채로 미안하다는 소리만 연신 중얼거렸다. 내가 깨어나서 버둥거리자, 아빠가 나타나서 내 얼굴을 보더니, 온갖 감정이 섞인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말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고 전기충격기를 다시 내 몸에 갖다댔다.

꿈에서의 또 다른 내가 기절하면서 내 의식은 다시 깊은곳으로 빠져들어갔고, 노인과 부모님의 대화가 전부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이 꿈 이후로 그 아이의 꿈을 꾸는 일은 없어졌고, 나는 점차 건강해졌다. 오히려 이후로는 아픈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부모님은 나를 볼 때 종종 죄책감이 스친 표정을 짓긴 하지만, 나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밝은척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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