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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괴담] 뚝방길
게시물ID : panic_829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르군
추천 : 3
조회수 : 94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29 0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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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아아아 솨아아아
 
어두운 밤 하늘에 촘촘한 별들이 보이던 어느 밤이었다.
 
솨아아아 솨아아아
 
이제 곧장 걸어가면 고향에 닿을 수 있는 시골의 한 뚝방길에 섰다.
그리고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바람에 실린 갈대소리가 내 귓가를 설레이게 만든다.
 
"후우우.."
 
그래, 시작은 단순한 변덕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을려고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20년의 세월이 허망하게, 지금의 난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불혹의 나이라는 마흔.
갑작스런 귀향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아마도 작년 이맘 때 즈음이었을까..
우연히 잡지에 실렸던 내 고향의 뚝방길이 그렇게도 이뻐보일 수가 없었다.

처음엔 그냥 언제 한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정도의 마음가짐이었는데..
이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내 마음 속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버렸다.
단순히 하루 이틀 수준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원래 있어야할 장소인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보다.
 
솨아아아 솨아아아
 
비록, 저녁이라 잘 보이진 않지만 뚝방길 옆에 보이는 넓디 넓은 갈대밭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 이리도 아름다운 고향을 두고 난 왜 이렇게 바보같이, 그리고 힘들게 살았던 것일까.
좀더 빨리 알아챌 수 없었던 것일까.
때가 되면 알아서 돌아오는 연어 때와 같이, 나도 그 때를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사회에 찌들고 찌들어 젊은 날에 돌아왔다 한들 내가 머물 곳이 있었겠는가.
탓할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다 그런 것 아니겠나 싶다.
 
사박, 사박, 사박, 사박
 
뚝방길에 나있는 이름 모를 잡초들이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점점 내가 그토록 원해 마지않던 고향 문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주름이 잔칫상을 차린 얼굴을 가진 나이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고향에 살았던 어린 날의 내 얼굴이 보일 것만 같았다.
 
"때 늦은 귀향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혼자만의 외로움을 잠시 달랬다.
하긴, 이제 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겠지.
유난히 반짝거리는 밤하늘 아래에서 내 마음도 설레고 있지 않는가.
다음 일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의 반가움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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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S시의 외각에 있는 H면이다.
굉장히 작은 시골이고, 딱히 비옥하지도 않은 땅 탓에 내가 어릴 적 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던 곳은 아니었다.
그저 고향이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거나, 혹은 다른 사정으로 머무는 사람들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내 어릴적의 부모님들도 필시 그러셨겠지.
 
오래되어 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때 내 아버지는 분명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셨다.
현모양처를 쏙 빼닮은 내 어머니와는 반대로 진정한 의미의 바깥양반이었으니..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근처 도시로 이사를 했다.
당시엔 어렸던 나였지만, 늙은이들과 함께 머슴일이나 하며 죽긴 싫다는 아버지의 지나가는 말씀은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아마, 그 때부터 였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사회 생활에 목을 매며 달려온 것은..
 
나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가슴팍에 담아두고, 얼마나 많은 위선을 떨치며 세상을 살아왔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고,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다 이렇게 될 것 아니었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저 앞에 어느 여성이 보였다.
 
"어, 너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그 여성은 놀래며 날 바라봤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성식이니?"
"..... 설마 금자니?"
"어머나 세상에! 이게 얼마만이니? 이거 참. 완전 쭈그렁 할아버지 다 되버렸네."
"허이구, 남말하기는. 그러는 너는 아가씨인줄 아냐?"
"킥...킥킥킥킥."
"하...하하하하."
 
그래, 내 앞에 있는 여성은 금자였다.
어릴 적에 내가 알던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게 신기하다.
내가 기억한 모습에서 키만 좀 커졌고 주름만 좀 생겼구나 싶다.
그렇게 단짝이던 친구였는데 아직도 고향에서 살고 있었구나.
지금은 빛이 조금 바래있지만, 어둠 속의 금자는 필시 이쁠 것이다.
 
"무슨 일이야? 이 늦은 시간에 여길 오고?"
"나 원래부터 돌아오고 싶었어."
"에잉? 이제와서 참, 말도 잘하네."
"진짜야. 내가 작년부터 얼마나 마음 고생 했는지 아니?"
"하이고, 그러세요. 킥킥킥."
 
정말 생긴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내가 알던 금자,  그대로인 것 같다.
이것이 인생의 기쁨인가.
 
"너 기억 나니?"
"응?"
"너랑 나랑 이 뚝방길을 쭈욱 지나서 말야. 쩌어그 작은 냇가에서 심심하면 물장구 치고 놀았잖니. 그땐 그런게 왜그렇게 재밌었나 몰라."
"어렸으니까, 뭐 물은 둘다 좋아했었지 않아?"
"하, 그런가."
 
그렇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금자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히야, 오늘 별도 밝구나. 성식이 온다고 이래 밝은 하늘이 되었나부다."
"하하. 그거 기분 좋네."
 
그렇게 말하고 밤 하늘을 다시한번 보았다.
그리고 내 눈에 맞추어 수많은 별들이 쏟아진다.
장관이다.
 
"그나저나, 많이 외롭진 않았니?"
"뭐, 다 그런거지."
"헤에, 너는 성격이 좀 바뀐 모양이구나?"
"그런가."
 
그리고 난 입을 다물었다.
학생 시절까지 생각한다면 나의 도시 생활은 25년을 족히 넘는다.
여기에 오기 전, 금자와 얘기하기 전 까지만 해도 내 성격이 바뀌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천히, 곱씹어 생각해보면 확실히 난 많이 바뀐 모양이다.
 
"그래도 고맙네. 여기까지 와주고."
"그냥 고향이 그립더라. 이 뚝방길도 아른거리고."
"그래? 다 늙어서 그런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어깨를 가볍게 치는 금자가 밉지 않다.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고향 친구와 이렇게 얘기하는 것 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기분 좋게 웃고 있는데, 금자가 말을 걸었다.
 
"그래, 이제 어디로 갈꺼니?"
"음.. 글쎄. 모르겠다."
"여긴 몇번째로 왔니?"
".... 아마 처음일거다."
".... 너 정말 그리웠나 보구나. 그지?"
"......."
 
그리웠으니까 왔지 이 가시내야, 라고 얘기할 뻔 했다.
아무리 반가워도 내 나이는 생각해야지.
 
이제, 슬슬 가봐야겠다.
 
"난 이만 가봐야겠다 금자야."
"그래, 성식아. 그래도 이럴 땐 내 운명이 마음에 드네."
"뭐 사는게 다 그런 것 아니겠니. 덕분에 얘기도 편하게 하고 말야."
"킥킥. 그지?"
"응. 그렇단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난 이만 뒤돌아 섰다.
그저 고향을 바라보며 후회에 찬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어 왔는데, 이렇게 반가운 친구를 만나니 이제 여한은 없다.
열심히 살았던 만큼 받았던 것은 항상 부족하다 느낀 나였지만, 그 모든 것을 종착점에 와서야 보상받은 기분이다.
 
"약속 지켜줘서 고맙다. 성식아."
"뭘, 행복해라 가시내야."
 
그렇게 얘기하고 난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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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아아아 솨아아아
 
어두운 밤 하늘에 촘촘한 별들이 보이던 어느 밤이었다.
시골의 뚝방길에 아직 앳된 모습의 소녀와 소년이 앉아 있었다.
 
"야, 성식아."
"응, 금자야. 왜애?"
"넌 내가 무섭지 않니?"
"응? 왜애?"
"막 귀신 보구 그러는데 무섭지 않니?"
"안무서운데?"
"헤에, 너 참 신기하네. 킥킥."
"헤헤, 뭐 가시내야."
"참, 니랑은 내가 오래가는 인연이 아니라서 아쉽다."
"건 또 무슨 소리?"
"킥킥, 아니다 아니다."
 
그렇게 웃어대던 소녀는 소년의 어깨 손을 올렸다.
 
 
"그냥 나중에, 나보러 꼭 한번 와라."
"응? 지금 보잖아?"
"에이 멍충아. 너이 부모님 이미 쩌어 멀리 이사간다고 준비중이시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니까 아는거지. 이 멍충아."
"뭐이 가시내야."
"아이참, 내 말좀 들으라 좀."
"알았다 알았다. 내 꼭 올께."
"그래. 꼭 오라. 내가 니 명을 늘릴 순 없어도, 니 가는 길 편히 해줄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가시내야."
"킥킥, 아니다 아니다."
 
소녀의 장난에 살짝 화가 난듯한 소년은 뾰로퉁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흐아따. 하늘에 무슨 놈의 별들이 저리 많대냐."
".... 그러게. 참 이쁘네."
"아, 그래! 너 혹시 나중에 올 때 길을 잘 모르겠으면 저 별들을 기억해라."
"내가 저 많은 별들을 어떻게 기억하냐? 머리가 터져버리겠다."
"킥킥킥킥. 멍충이."
 
그렇게 얘기하는 소녀와 소년의 머리 위로 아름다운 밤하늘이 드리워졌다.
 
반짝이는 수많은 별..
그리고 아름다운 갈대 밭..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출처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46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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