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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가 맞는 표현입니다. [삼국사]는 혼용되던 표현이지요.
게시물ID : humorbest_10839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량011
추천 : 19
조회수 : 2352회
댓글수 : 1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6/22 12:16:28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6/22 01:38:50
삼국사기의 책 표지명을 보셨나요?
1.jpg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삼국사기라는 책의 표지는 실제로 '삼국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흔히 생각할법 합니다.

'어? 왜 삼국사기가 아니라 삼국사 라고 적혀 있지?' 라고요.

그런데 이 의문에 매몰되서는 앞뒤 못보고 덤버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http://www.hwandangogi.or.kr/hwan/community.php?mid=129&p=5&r=view&uid=312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5/03/20150503001763.html

바로 유사역사학자들이죠.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사실 삼국사가 맞는 책을 일본 학자들이 '삼국사기'로 바꾸었다. 그것은 일본서기보다 하위 급인 사기로 사를 바꿔서 제후의 역사인양 바꾸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1. 사기가 서기보다 하위에 있지 않고 2. 사기라는 표현 자체가 자주국(황제국)의 역사 표현이며 3. 삼국사기가 원래 맞고 둘은 혼용하여 쓰는 표현 이라는 점에서 반박되 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음모론에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일본인이 한건 아닌거 같은데 어찌 되었든 조선에서 삼국사로 쓰던 것을 일제 강점기 경에 삼국사기로 썻으니 조선인 학자들의 의신 변화 같은걸 엿볼 수 있는거 아니냐? 그리고 제목이 삼국사니깐 당연히 삼국사가 맞지" 

이분이 생각하시는 문제를 해부하면 이렇습니다.
1.
초기조건 : 조선시대에 삼국사로 불렸다.(왕조실록 검색해 보니 삼국사기 보다 삼국사가 대다수 더라) 그런데 갑자기 용어가 바뀌었다.
법칙 : 갑자기 쓰이는 용어가 바뀐다면 뭔가 사람들의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 : 이건 뭔가 있다.
2.
초기조건 : 책 표지에 삼국사로 쓰여있다. 그리고 삼국사와 삼국사기는 동일한 책을 의미한다.
법칙 : 책 표지에 쓰인게 제목이 맞다
결론 : 그러니깐 삼국사가 맞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도 답이 나와 버립니다.
바로 '삼국사나 삼국사기나 원래 혼용해서 사용했다'  '진삼국사기표와 책 내부의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가 맞다' 라는 것이죠.

이 분의 사고 과정은 지금 몇가지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초기조건의 거짓 
이 분은 자신의 주장하는 바(조선시대에 삼국사로 불렸다)를 증명하기 위하여 왕조실록을 검색했고 그 결과로 삼국사가 대다수로 많더라 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왕조실록에 삼국사기로 불린 기록도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오직 삼국사가 더 많다 라는 이유로 '조선시대에는 삼국사로 불렸다' 라고 잠정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이분은 지금 사료 분석에 실패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왕조 실록에 삼국사기와 삼국사의 분포는 아래와 같습니다.

<삼국사>
태종 : 4회 / 세종 : 15회 / 세조 : 3회 / 성종 : 3회 / 연산군 : 1회 / 선조 : 1회
<삼국사기>
세조 : 3회 / 성종 : 1회 / 중종 : 1회

그리고 이를 통해서 27:5의 비율로 [삼국사]가 더 많이 쓰인다는 것을 확인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를 정말 '대다수'로 많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를 통해서 '조선왕조는 대다수가 삼국사라 불렀다' 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습니까? 자그마치 15%가 [삼국사기]가 차지하는데도요?

그런데다 실제로 사용 용례를 보시죠. 세조와 성종은 각각 3회씩 [삼국사]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세조는 3회 그리고 성종은 1회 [삼국사기]라고도 부릅니다. 

세조 2년의 기사에서 3월 28일에 [삼국사기] 라고 부릅니다.
세조 삼국사기.JPG

그리고 같은 2년에 11월에 [삼국사] 라고 부릅니다.
세조 삼국사.JPG



이번에는 4년에 [삼국사] 라고 부르고
세조 삼국사2.JPG

9년에 다시 [삼국사]라고 부릅니다.
세조 삼국사3.JPG



그런데 10년 6월에 [삼국사기]라고 부르는군요
세조 삼국사기2.JPG

또한 같은 10년 8월에 또 [삼국사기]라고 부릅니다.
세조 삼국사기3.JPG

 
위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조선왕조에서 [삼국사]와 [삼국사기]는 혼용하여 쓰였다 라는 것입니다. 
이 세조의 기사뿐만이 아니라 '성종'에서도 마찬가지로 혼용하여 쓰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아예 중종때는 [삼국사기]라고 불리는 사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분이 그토록 신뢰하셨던 초기조건인 '조선시대에는 대다수가 삼국사 로 불렸다'는 틀렸다라는 소립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 여기서 첫번째로 초기조건 자체가 틀렸으며, 두번째로 대다수가 삼국사로 불렀다 라는 사료 해석은 틀린것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확인해 보니 중종 실록에 [삼국사기]로 쓰인걸 [삼국사]로 쓰였다고 잘못 알고 계시네요..)

2. 사료 인식의 오류
이분은 현재 [삼국사기] 가 아니라 [삼국사]가 맞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론의 기반에는 '책 표지에 쓰인게 제목이 맞다' 라는 법칙이 존재합니다.
물론 이 것은 맞는 명제입니다. 책 표지에으로 쓰인게 제목으로 불리는건 당연한 것이지요. 하지만 법칙은 미안하게도 지금 이 경우에는 틀린 법칙이 됩니다.

해당 법칙이 맞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으로 '책 표지에 쓰인 것이 정녕 원래 제목이 맞는가?' 라는 의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삼국사]라 표지에 적힌 이 책의 원래 이름은 [삼국사기]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진삼국사기표]의 존재, 진삼국사기표는 김부식이 인종23년에 삼국사기를 진상하면서 올린 상표입니다. 삼국사기로 치면 서문쯤 되겠네요. 실제로 이 [진삼국사기표]는 '삼국사기'책 자체에 실려 있는것이 아니라 [동문선]이라는 조선 성종때 쓰여진 책에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동문선] 자체가 '옛 문헌'을 원형 그대로 모아 발간한 모음집이기 때문에 그 신뢰성을 보장된다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앞서 본 바처처럼 조선시기에는 태종 세종대에 [삼국사기]란 표현은 한마디도 없으며 오직 [삼국사]로만 불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삼국사]가 범칭되는 상황에서 [동문선]에 [진삼국사기표]라 실려 있다면 이것은 원형을 지켜서 실렸다라는 추측을 하게 만듭니다. 
아무튼 이 [진삼국사기표]는 김부식이 직접 쓴 글이며 여기서 [삼국사기]라고 부르고 있다라는 것은 누가 뭐래도 이 책의 원래 이름은 [삼국사기] 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진삼국사기표]는 상표문입니다. 최대한 격식을 차려서 쓰는 글이지요. 여기서 [삼국사] 같은 줄임말을 쓸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 [삼국사기]라는게 공식적인 표기가 맞는 겁니다.

두번째, [삼국사기] 책 내부의 기록, 책 표지에는 [삼국사]라고 적혀있는 이 책을 들여다 보면 그 내부는 [삼국사]가 아니라 [삼국사기]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스스로 "나는 [삼국사기]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애초에 왜 이런 서로 다른 표기가 공존하게 된것일까요? 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삼국사기는 조선 중종때 발간한 책입니다. 
'삼국사'란 표현이 조선시대에 '상대적'으로 '삼국사기'보다 자주 쓰였다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범칭으로 쓰이던 '삼국사'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 책의 원래 이름은 [삼국사]가 아니라 [삼국사기]가 맞다. 라는 겁니다.


3. 근거없는 가능성의 전개
관련해서 글을 썻고 몇번이나 스스로 추천도 했던거 같은데 글 자체가 워낙 별로인지 사람들이 이 문제에 정말 생소해 하는거 같습니다.
http://todayhumor.com/?history_19562
이 분은 지금 
초기조건 : 조선시대에 삼국사로 불렸다.(왕조실록 검색해 보니 삼국사기 보다 삼국사가 대다수 더라) 그런데 갑자기 용어가 바뀌었다.
법칙 : 갑자기 쓰이는 용어가 바뀐다면 뭔가 사람들의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 : 이건 뭔가 있다
이런 사고를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앞서서 이 사고의 '초기조건'은 오류였음을 증명했지요.
이번에는 결론과 더불어서 이 연역법칙적인 사고 자체를 좀 다루어 볼까 합니다.
불행히도 이 결론은 '근거'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물론 이런 의문을 가질법합니다. 얼마든지요. 그런데 이걸 의문을 가져서 파헤쳐 유의미한 결론을 내리는 것과 부족한 근거를 가지고서 무작정 가능성을 제기하는것은 천지차이 입니다. 
현재 이 결론은 유의미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못합니다.
단순히 '조선지식인의 의식변화가 있지 않을까?' 라는 추측을 하지만 '왜?' 라는 대답에는 본인이 처음 의구심을 가지게 만든 '조선시대에는 삼국사로 불렀다'라는 잠정 결론외에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심지어 이 결론은 틀렸지요.) 그저 여기선 '뭔가 있지 않을까?' 라는 근거없는 가능성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여기서는 이런 추측이 가능합니다.
사례 : 삼국사와 삼국사기는 혼용해서 사용했구나 
확률 : 조선시대에 학문을 연구했던 사람들에게 삼국사기는 [삼국사]와 [삼국사기]로 혼용되는게 익숙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론 : 신채호 등이 [삼국사기]로 바꿔서 불렀던 것은 혼용의 결과이다.
여기서 저는 '조선시대에 혼용되었다' 라는 근거 외에 '혼용된 시기에 공부한 사람은 두 명칭을 같이 쓰는데 익숙할 가능성이 높다' 라는 확률적인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렇게 얻어진 '혼용의 결과이다' 는 근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경우 초기조건 외에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뭔가 있다' 라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일까요? 아니면 '확률적 가능성'을 가진 '혼용의 결과이다' 가 더 합리적인 판단일까요?
가능성을 제시하는것은 좋습니다만 최소한 그 가능성에는 그것을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외려 '혼용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사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모든걸 무시하고 무조건 '뭔가 있다' 라고 나서는건 아무리봐도 무리수 아닙니까?

애초에 이런 실수를 하게 된것은 이분의 연역법칙적인 사고 과정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역사학에서 익숙한 '귀납확률적'인 사고설명 모형을 이용했습니다. 귀납식으로 사례를 수집하고 확률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밀었지요. 반면에 이분은 사례가 아닌 '초기조건'으로 부터 시작해서 '법칙'을 통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역사적이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역사는 독특하고 다양하기에 법칙으로 일반화 될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분은 '[삼국사]란 명칭가 [삼국사기]로 바뀌었다면 당연히 의식의 변화등이 있을 것이다' 라는 법칙으로 일관했습니다. 
하지만 법칙은 여기서 '혼용되는 명칭을 바꿔가며 사용하는 것이 반드시 의식의 변화등을 상장하는가?' 라는 문제제기에는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역사는 이런 예외적 상황이 수도 없이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앞서서 제가 이분에게 근거가 없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오직 초기조건만이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라며 '법칙'을 근거로 제시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역사학에서 법칙은 결코 데우스엑스마키나 같은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이제 정리해 보겠습니다. 
한마디로 이분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으며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음모론'을 생산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미 이분이 하고계신 초기조건은 거짓으로 판명난이 오래이며 이분의 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칙은 역사학에서 수용될 수 없는 존재이고
많은 사례와 확률적 근거들은 반대로 '혼용'이라는 결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그냥'이라는게 나쁜게 아닙니다. 정말로 역사는 '그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미친놈이 그냥 사람을 죽일수 있는거고 그냥 사람을 살릴수도 있는겁니다. 
이런 '그냥'에 대한 논의는 실제로 역사학에서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그냥의 존재로 인하여 '성향적인 설명 모형' '합리적 설명 모형' 같은게 비판받은바 있습니다.(그래봤자 대안이 없어서 그냥 잘만 쓰고 있지만)

여기 문제에서 삼국사와 삼국사기는 혼용하고 있음을 확인가능하고 신채호를 비롯한 사람들이 삼국사기로 부르는건 말그대로 '혼용의 결과' '그냥'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뭔가 있다' 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연구를해서 발표를 하면됩니다' 지금처럼 '왜 이 뭔가 있는것에 관심들을 안가지고 그냥이라고 말하냐! 너 좀 의아스러운데?' 라고 하는건 상대에 대한 저열한 협잡이고 동시에 음모론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근거도 없는데 이걸 '조선지식인의 사상 의식변화'라고 비화시키는것 자체가 음모론이며 유사역사이지만 말입니다.



ps. 딱 보면 이글을 본 그분이 어떻게 답을 하실지 뻔히 보입니다. 분명히 '난 조선시대에 삼국사로 불렀다 라는 말을 한적 없어' 라고 하시겠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분은 
"단순히 조선시대엔 혼용했다..라고 하지만 김부식이 분명하게 삼국사기라 밝혔고 (구)삼국사가 있다면 삼국사기라고 했어야 하지만
실록과 조선학자들은 어느 이유에선지 삼국사라 칭햇고
그걸 근대 일제시대까지 삼국사라 했다가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삼국사기로 바꿨다" 
이렇게 스스로 밝히고 계십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에 삼국사라고 불렀다' 라며 스스로가 사료 분석에 실패했음을 밝히고 계시는 것이지요.
출처 http://todayhumor.com/?history_2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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