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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회장의 똥볼로 피해받는 노동자들..
게시물ID : sisa_10844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유여유발견
추천 : 10
조회수 : 7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7/12 09:22:23
재계 10위에 집착한 금 수저의 오판

2006년 2월 박삼구 그룹 회장이 밝힌 그 해의 그룹 모토는 ‘아름다운 기업이 되자’였다. 

박 회장의 지시로 직원들이 갑자기 음악과 미술 감상에 줄줄이 동원됐다. 
“예술을 알아야 아름다운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전까지 바탕체, 굴림체, 돋움체 등이 혼용됐던 금호그룹의 모든 보고서 글씨체는 박 회장의 지시로 ‘가을체’로 통일됐다.


바로 이 시기 금호그룹이 건설 분야 1위 기업 대우건설의 인수전에 올인(all in)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금호는 2005년 삼성그룹 X파일 사건과 두산 형제의 난 등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재벌 그룹에 대한 여론을 의식했다.

대우건설 인수전에는 두산과 한화 등을 비롯해 무려 10개의 컨소시엄이 참여했다.

금호는 이 승부에서 꼭 이기고 싶었다. 

박삼구 회장은 연초 기자회견에서 “확보한 자금만 1조 5000억 원이다.

대우건설을 인수해 반드시 ‘아름다운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외쳤다.

그는 재계에 대한 곱지 않는 세간의 시선을 뚫고 “우리야말로 대우건설을 인수하기에 적합한 아름다운 기업이다”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문제의 핵심은 금호의 여건이 박 회장의 호언과 달리 대우건설을 인수할 상황이 전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호그룹은 2005년 기준 매출이 11조 원, 순이익이 5079억 원에 불과했다. 

반면 대우건설은 수주 잔액만 22조 원에 이르는 업계 1위의 건설기업이었다.

당시만 해도 재계 순위 10위권 밖이었던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만 하면 재계 서열 8위로 오를 판이었다.

10위권 진입의 꿈은 뱁새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대우건설의 적정 매각 가격은 3조 원 남짓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름신이 강림한 박삼구 회장은 무려 6조 6000억 원을 입찰가로 써냈다. 

그 무렵 대우건설 주가는 1만 2600원이었는데, 금호는 갑절이 넘는 2만 7000원에 이를 사겠다고 나선 것이다.

금호가 6조 6000억 원을 감당할 능력이 없음은 분명했다.

자체 조달 자금은 약 2조 5000억 원 정도였다.
박 회장은 계열사들의 자산과 매출을 담보로 1조 원 가량의 돈을 은행에서 끌어 썼다.

대우건설 인수 실패가 엉뚱하게도 금호타이어 등 계열사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게다가 박 회장은 남의 돈까지 과감히 끌어들였다. 모자란 3조 원을 투자자로부터 조달하기 위해 풋백옵션(put back option)이라는 무지막지한 방법도 동원했다.

그 내용은 이랬다. ‘2009년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 2576원을 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의 대우건설 투자금을 금호가 연 9%의 복리 이자를 붙여 되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무모해도 상상을 초월한 무모함이었다.

1만 2600원짜리 주식을 2만 7000원에 사들인 무모함도 문제였지만, 3년 안에 주가를 3만 2576원까지 올려주겠다는 자신감은 무모함을 넘어 아둔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투자자들로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위험이 거의 없는 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2만 7000원에 주식을 사서 3년 만에 3만 2576원으로 오르면 20% 이상 수익을 내서 좋다. 만약 주가가 그만큼 안 오르면 금호가 원금에 연 9% 복리 이자를 붙여줘서 좋다.

이 허황된 약속에 미래에셋그룹 등 굴지의 금융그룹이 가담하면서 금호와 박삼구 회장의 가랑이 찢기는 한 매듭을 짓는다.

금호는 대우건설을 감당할 여력도, 능력도 없었다.

마구잡이로 끌어 쓴 돈은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빚더미로 돌변했다. 

대우건설의 2009년 주가는 3만 2576원은 고사하고, 금호의 매입원가인 2만 7000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1만 2000원~1만 5000원에 머물렀다.

금호는 수 조원에 이르는 외부투자자금에 9% 복리 이자를 물어 고스란히 토해낼 위기에 몰렸다.

결국 박 회장은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대부분의 지분을 채권단에 내놓았다. 

박 회장의 현재 직함이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긴 하지만, 그는 지금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최대주주가 아니다.

그가 그룹 소유권을 빼앗긴 것이 바로 이런 사연 때문이다.

최근 박삼구 회장은 그룹을 되찾겠다며 채권단으로부터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산업의 지분을 되사려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채권단은 자신의 지분을 7800억~8600억 원에 되팔려 하고, 박 회장은 “너무 비싸다”며 6000억 원 선에서 그룹을 되찾으려 한다. 이것이 지금 박삼구 회장이 몰입해 있는 수 천 억 원대 M&A 협상의 본모습이다.

6년의 고통, 왜 노동자가 책임을 지나?

뱁새가 벌인 도박의 결과는 처참했다. 2009년 금호그룹은 대우건설 지분을 주당 1만 5000원 선에서 산업은행에 매각했다. 

원금의 절반가량을 날린 처참한 결과였다. 금호타이이어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은 모두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문제는 박 회장의 뱁새 도박이 단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재계 10위에 집착하며 가랑이를 잘못 찢는 바람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금호그룹 노동자에게 돌아왔다.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주요 계열사들은 빚더미에 올랐다. 
당연히 계열사의 경영 상황은 극도로 악화됐다.

2010년 이후 3년 동안 금호타이어에서는 매년 격렬한 노사 갈등이 벌어졌다. 

보수 언론에 포장돼 잘못된 여론이 형성되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 주제에 웬 파업이냐?”는 따가운 눈총도 받았다.

하지만 파업의 단초는 언제나 사측이 제공했다. 워크아웃 기간 동안 사측은 거의 매해 1000명가량의 정리해고 안을 들고 나왔다. 

노조는 임금과 상여금, 복지혜택 등을 계속 반납하며 정리해고를 막았다.

협상이 타결되면 이듬해 어김없이 사측은 다시 정리해고를 추진했다. 

노조가 반발할 때마다 채권단은 “워크아웃을 중단한다”며 노조를 위협했다.

 그 결과 2012년 이 회사 노동자들의 임금은 2010년에 비해 40%로 급감했다. 

워크아웃을 졸업한 올해 초에도 금호타이어는 어김없이 노동자들의 도급화를 들고 나왔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대의원 김재기 씨가 이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뱁새의 가랑이 놀이가 불러일으킨 2015년 금호타이어 노동 현장의 현실은 이렇듯 처참했다.




출처 출처: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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