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의 꽃집 알바생 '하란'은 오늘도 꽃을 팔고 있다. 한여름, 눅눅한 더위가 뼛속까지 스미는 날이지만 이런날에도 꽃을사러오는 손님은 있다. 아니, 꽤 많다. 손님중 반이상이 애인에게 근사한 선물을 하고싶어하는 '남자'. 하란은 요즘들어 부쩍 외로워지는 중이다.
"아.. 사실 오늘이 여자친구랑 딱 300일되는날이거든요..! 삼백송이는 너무 많으려나요? 헤헤.. "
아오 이런 진짜....!! 누가 물어봤냐? 누가 물어봤냐고!!!!! 으악!!!! 속으로 끓어오르는걸 애써 삭히며 하란은 분노의 가위질로 포장지를 오리기 시작했다. 익숙해질때도 되었는데, 거참.. 염장질에는 익숙해지기 힘들다.
" 와~ 정말 좋으시겠어요..!! 삼십송이 정도만 하시고.. 색상을 흰색, 분홍 섞으셔도 참 이뻐요..^^" " 아네, 제가 뭘 알겠습니까. 한 십만원 아래로, 최대한 예쁘게 해주세요.. 정말 중요한날이거든요." " 후후, 당연하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장미 줄기의 가시와 잎사귀를 다듬는 하란의 손이 매섭기만하다. 분노의 가위질을 하는 모습은 용도 무찌를 기새다. 처음 알바를 시작할때는, 설램도 있었다. 누군가 언젠가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생각... 그러다보니 어느새 딴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 근사한 남자 한명이 들어온다. 그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풍기며 부드러워보이기도하고 섹시해보이기도 한다. 약간 낮은 톤의 음성으로 그는 장미 한송이를 주문한다. 하란은 떨리는 손으로 장미한송이를 포장하며 장미를 받을 여자를 상상하며 부러워한다. 그남자는 완성된 장미를 받고, 하란에게 조용히 인사하며 말한다.. " 예전부터 여기 지나칠때마다 제 걸음이 느려졌어요. 오늘은 들어오고야 말았네요..저기.." ]
"아, 저기요 괜찮으세요?? 손에서 피나는데.." "으악!!"
하란은 딴생각을하다 손을 찝어버렸다. 깊지는 않았지만 상처사이로 핏방울이 맺힌다. 상처의 아픔보다는 갑자기 무언가 형용할수 없는 서러움에 눈물이 나려고만 한다. 누군가 날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기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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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퇴근 안하세요? " "으응? 응, 해야지.. 먼저가 오늘은 내가 정리하고 셔터내릴게" "네..~ 그럼 먼저 들어가볼게요! 내일뵈요." "응, 잘가!"
아.. 힘드네,, 거참.. 운학은 생각한다. 자신은 행복하다고. 자신은 사회적으로 꽤나 성공했다고. 하지만 최근들어 인생이 계속 허무하게만 느껴진다. 그는 대학졸업을 하자마자 아버지의 도움으로 헨드폰가게를 하나 차렸고, 지금은 수원에서 매출 10위권안에 드는 헨드폰 대리점을 운영하고있다. 하지만 요즘들어.. 계속. 인생이 허무하다.
집에 오는길에 맥주와 치킨을 산다. 지친 하루, 그를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는 보통 이런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집에와서 티비를 켠다. 케이블체널에서 시덥잖은 드라마가 방영되고있다. 그래도 재밌는지 운학은 낄낄거리며 맥주 한모금을 들이킨다. 치킨 포장지를 뜯는다. 썅.. 이러면 안되는데.. 내 뱃살.. 여름인데. 사실 이런생각도 매일 하다보니 이제는 무덤덤해졌다. 그는 살이찐편은 아니였지만, 점점 늘어나는 뱃살에 홀로 늙어가는 자신이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은 했다. 허무하다.. 매일같이 똑같은 하루. 정말로 똑같다. 하지만 치킨은 맛있다. 고로 난 행복하다. 애써 자기 위로를 하며 치킨을 뜯는다. 헨드폰이 울리지만, tv 소리에 묻혀 듣지를 못한다. 그는 그렇게 tv를 보다 씻지도 않은채 그대로 잠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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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학은 간만에 찾아온 휴일을 마음껏 즐기며 친구들과 해변으로 놀러갔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기분좋은날이었다. 갑자기 장면이 밤으로 바뀌고, 옆에는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알바생 주연이 앉아있다. 친구들이 그 둘을 놀리기 시작한다.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운학의 손사래침과 동시에 주연이 운학에게 키스를 한다. 갑자기 놀란 운학은 그녀를 때어내려하지만, 내심 속으로는 싫지만은 않았다.
"삐리리링 삥융융~ 삐리링 삥융융~"
윽.. 젠장. 꿈이었나.. 주연이가 왜 꿈에나왔지? 아 내가 미친건가진짜.. 원조교제라도 할샘인가.. 미쳤지 진짜. 운학은 왜 주연이 꿈에 나왔는지 의문스러워하며 나갈준비를한다. 오늘은 sj네트웍스에서 새로나온 스마트폰 350개가 입고되는날이라 오전부터 부산스러울것 같았다. 가는길에보니 부재중통화가 와있었다. 대학교때부터 쭉 친했던 친구 가은이었다. 작년에 가은이가 결혼할때 tv를 선물했는데.. 가은이한테 연락만오면 사준 tv생각이 난다. 내가 사준걸 기억은 하고있을런지.. 운학은 속으로 자신이 참 쪼잔하다고 생각을하며 가은에게 전화를 한다.
" 웅~ 전화했었네? 미안미안." " 아, 아냐 괜찮아. 야 있잖아 너 소개팅해라, 이번주 토요일에" " 응 할게" "하하하하하하!! 아웃겨 아진짜 너 외롭긴하구나? 아무것도 안물어보고 한다니.. 그것도 1초만에. 하하!" "씨발.. 몰라 외롭다기보단, 뭔가 그냥 허무해.. 암튼 무조건 할게" "응 알았어.. 그럼 연락해봐 문자로 번호 넣어줄게. 홧팅~" "오키 땡큐~"
대리점에 도착했다. 세명의 정직원과 두명의 알바생이 있는 제법 큰 대리점. 오늘 분명히 일찍나오라 했건만.. 역시 아무도 없다. 그때 주연이 들어왔다.
" 안녕하세요오ㅡ!" "오..!! 완전 일찍왔네~" 어젯밤 꿈의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서일까?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일부러 오바를 해본다. " 네.. 하핫." 주연이 의문스런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음... 뭐지? 설마.. 어제 미드에 나온 마음을 읽는.. 그런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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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임에도 아직 날이 화창하다. 역시 여름은 여름인가보다. 분무기로 물을 분사하던 하란은 문득 시계를 보며 생각했다. 손님이 한창 많을 토요일 오후인데.. 왜인지 한산하기만하다.
"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서른즈음 되었을까? 단정한듯 짧은 헤어스타일, 젊어보이려는듯 덴디하고 케주얼하게 입은 옷차림. 비싸보이는 시계. 잘생기진 않았지만 인상좋아보이는 외모를 가진 손님이었다. " 음.. 제가 지금 소개팅 가는데요. 사실 그동안 족족 실패를해서.. 하하.. 이번엔 꽃이라도 사가보려구요."
" 아네. 그러시군요. 첫만남에 꽃선물이 어색하다 생각하지 마시구요.. 오히려 좋게 작용할수도 있어요."
운학은 꽃집 아가씨의 빙긋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정말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여자에게 대이고, 여자를 무서운 존재라고 믿는 그여서 그런지. 또 속고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160cm 는 될까. 크지않은 키에 통통한듯 하면서도 아담한 몸매. 지금은 묶고있지만 어깨정도 내려올것같은 단정한 머리에,한번에 혹할 얼굴은 아니지만 착해보이는 얼굴에 선한 눈을 가진 여자였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받을사람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을만한 자그마한 꽃바구니를 사고서 나오는길에 운학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아.. 진짜 느낌이 좋은 여자다. 내일 다시와서 얘기해볼까? 으.... 어떡하지? 고민은 길지않았다. 건너편 레코드샵의 스피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it's now or never' 가사를 듣는순간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운학은 즉시 발길을돌려 꽃집으로 들어갔다.
"어, 또오셨네요?" "네.. 아 저기.." "넹?" "아... 저기.. 정말 제가 이런거 처음인데. 음... 괜찮으시다면... 폰번호라도 좀 알수있을까요?" 아.. 진짜 바보같다. 정말 이게 뭐니. 이런거 처음이라는 소리는 왜해!! 으악! 중학생도 아니고.. 운학은 자기자신이 싫어졌다. "네?? 아 근데.."
하란은 조금 놀라고 당황했다. 내게.. 내게!! 폰번호를 묻다니!!! 그것도 남자가!!! 으악!!! 그냥 주고싶었지만 뭔가 쉬운여자로 보일것같았다. 한번쯤 튕기라는 베프 은주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운학은 순간 왠지모를 '실패'라는 두단어가 날아와 자신의 가슴에 박히는것을 느끼고는 창피함에 재빨리 꽃집을 빠져나왔다. 분명 저 여자는 나따위에 폰번호를 주기 싫었던 것이다..자괴감과 패배감이 자신을 옥죄여왔다. 하지만 용기내어 물어봤다는 사실 하나는 무언가 뿌듯했다. 에이!! 잊고 소개팅에나 전념하자!!! 그리고 그날밤, 운학은 맥주와 감자칩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