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몰랑 시대와 대비되는 공민왕의 개혁정치
개혁군주로 유명했던 공민왕!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 역사의 의미있는, 안타까운 측면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공민왕은 원나라의 신임을 받아 고려에 파견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는 군주입니다. 그런데 이때! 공민왕의 반전이 있었으니
원나라에 충성하고 그들을 일방적으로 따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집요하게 반원자주정책을 펼치며 우리나라의 주체성을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1.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했습니다.
당시 고려는 기왕후와 그 가족들의 내정간섭이 너무 심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기왕후의 동생인 기철과 그 일파가 운영하던 정동행성과 이문소를
폐지시켜 국정운영의 주체성을 높였습니다.
2. 쌍성 총관부 수복
쌍성 총관부는 몽고가 침입 후 고려의 화주 이북을 직접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설치한 관부입니다.
고려 영토의 상당부분이 상실된 상태인데, 이를 무력으로 수복하여 영토를
회복하게 됩니다.
3. 전민변정도감 설치
승려 신돈을 동원해 당시 친원세력인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을 무력화시키는
의의를 지니었습니다. 그리고 신진사대부를 등용하여 유능한 유학자를
길러내고 장기개혁의 기초를 둡니다.
그외도 관제 복구 몽골풍 금지, 정방 폐지, 요동정벌 등 다양한 업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비극적 사실. 대부분의 개혁은 집권 5년 안에 진행된 것들입니다.
23년의 통치기간 중 18년은? 그리고 어떤 비극이 있는것일까?
더 자세한 사항은 영상을 통해 알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