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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고딩과의 대화
저는 며칠전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놀러온 미국인 친구의 동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미국 10학년 고1입니다. 카페에서 메르스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북한이 한국에 메르스를 퍼뜨렸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미국애들도 있다는걸 듣고 조금 놀라웠습니다. 전 그래서 북한탓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변명거리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국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 아이는 한국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이란 걸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재자의 딸인건 죄가 아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독재가 나라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변호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그랬더니 그럼 한국인들은 다른 어떤 점 때문에 그녀를 대통령으로 뽑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한국인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경제를 가장 발전시킨 대통령이었다고 여긴다고 후광효과란 단어가 기억이 안나 일종의 background effect라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러자 그 애는 이상하다는 듯 그래봤자 독재자 아니냐. 한국에선 독재자란 말이 모욕이 아니냐?
저는 여기서 얼굴이 후끈거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럼 독재가 왜 나쁘다 생각하냐 말을 돌리는 질문했습니다.
저는 그 애가 독재정치의 단점을 얘기할 줄 알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라웠습니다.
Because it's a dictatorship(독재니까...)
마치 너나 나나 잘 알고 있을텐데 굳이 뭐하러 묻나는 어조였습니다. 정치인이 commit할 수 있는 the worst crime이 독재라고...
그렇습니다. 그 애에게 독재는 독재란 자체로 충분히 나쁘다는 설명이 되었던 겁니다. 어릴 때 거짓말이 나쁘다고 당연시되도록 배우듯이 독재도 독재니까 당연히 나쁘다 배우는 그들의 정치 인식과 교육이 부러웠습니다.
이 대화 때문에 저는 독재란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초중고 시절 독재가 나쁘다고 말해주셨던 선생님도 계십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 들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를 했지만 어쩌고 저쩌고...비록 독재를 했지만~그 뒤의 말들이 훨씬 더 길었고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독재라는 말조차 생략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어쩌고 저쩌고...저 역시도 독재를 해도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란 생각 때문에 학생땐 독재란 단어에 대해 저항감이나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큰 함정이 있다는걸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독재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해서 민주주의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었단 말은 아니며 경제 외에도 다른 어떤 것들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을.
지금은 독재가 나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독재는 결국 독재자를 위한 것일 뿐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양계장 주인은 닭의 배를 불려주지만 결국엔 닭 모가지를 비틀어버린다. 독재자에게 국민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라구요.
독재자에게 붙을 수 있는 수식어는 ‘미화된’ 하나뿐입니다. 독재란 말에 거부감이 없는 주변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세요.
일본의 식민지배는 일본의 독재이기도 했다구요.
#혹시 보고있을지 모를 철없는 일충이들에게 독재를 가장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덧붙이는 말
너희 주변의 누나 여동생, 혹은 여자친구가 예쁘고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사람 술자리에 불려가 술시중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는게 바로 독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