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고백을 즐기는 사나이 이야기
게시물ID : humorbest_10883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80
조회수 : 7722회
댓글수 : 1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7/01 14:30:01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7/01 11:05:28
옵션
  • 창작글
대학 시절 나의 절친의 별명은 고백이었다. 
솔직한 성격이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사람들에게 잘 털어놔서도, 흔한 노래 제목인 '고백' 이라는 제목의 노래들을 
잘 불러서도 아니었다. 항상 여자들에게 다가가면 (GO) 빈손으로 뒤돌아왔기 (BACK) 때문에 우리는 녀석을 고백이라 불렀다. 

처음 친해졌을 때 풋풋한 새내기 시절 수업이 없던 나른한 봄날 벚꽃 떨어지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고백이 내게 물어봤던 질문은 
"성성아 너 여자하고 키스해 봤냐?" 였다. 
모든 사건에는 기승전결의 과정이 필요한데 결론만 물어보는 녀석에게 화가 나서 말했다.
"키스해 봤냐? 라고 묻기 전에 키스할 상대가 있냐고 물어보는 게 인지상정의 예의 아니겠냐."
"어.. 나는 너 입술 두껍길래 키스 많이 해본 줄 알았지." 
녀석의 외모 비하 지적질에 주먹이 쥐어졌지만, 가뜩이나 신이 주물럭거리시다 포기한 외모를 내 주먹으로 더 망쳐놓는 건 녀석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참았다. 
"어렸을 때 소 여물 주다 소 혓바닥에 얼굴 전체를 쓸린 이후로 사람이든 짐승이든 내 얼굴에 혀를 갖다 대지 않더라."
"그렇구나, 나도 엄마 이후로는 없어. 그것도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즈음에는 나보면 아빠 얼굴 생각나서 못하겠다고 하시더라고"
녀석은 "우리 21살 되기 전에 꼭 키스해보자. 꼭 사람하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둘이 담배를 피웠다. 그날 우리를 향해 떨어지는 봄날의 따뜻한 눈송이 같던 벚꽃은 우리의 미래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입학 후 캠퍼스 생활 낭만의 시작을 알리는 연합 MT를 갔을 때, 녀석은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눈여겨봤다는 여자 동기에게 꼭 고백하겠다고 
MT를 가기 전부터 다짐했다. 그리고 녀석은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게임도, 술자리에서도 열정적으로 임했다. 숨쉬기 운동도 버거울 것 같은 
녀석이 달리고, 벗고, 아버지 몸속에 있을 때의 힘까지 쓰는 모습을 보면서 녀석의 고백이 꼭 성공하길 바랐다.
낮의 격렬했던 레크레이션이 끝나고 저녁 술자리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때 즈음 그녀가 한 친구와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갔다.
술자리 내내 그녀 곁에 가지는 못하고 그녀만 힐끔힐끔 바라보던 녀석은 드디어 "기회는 찬스야" 이러며 달려나갔다. 
공기 좋은 휴양림에서 두 여자가 하늘을 보며 우정을 나누고 있는데, 어느 정도 술에 취한 녀석은 영화 좀비 영화의 원조인 1968년 제작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보았던 어설픈 연기력의 엑스트라 좀비처럼 느릿느릿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GO)
멀리서 녀석을 지켜보며 배는 아프지만, 녀석의 짝사랑이 성공하길 기원했다. 약 2분의 시간 동안 녀석을 포함한 세 명은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녀석은 <28일 후>의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좀비로 진화해서 내 쪽으로 달려왔다. (BACK)
"야. 잘 됐냐?"
"응! 고백했어!"
"뭐래? 뭐래?"
"남자친구 있데. 좋은 동기로 지내자고 하던데." 라고 말하며 녀석은 매우 흐뭇해 했다. 
"뭐야.. 나가리잖아..."
"아니야. 나중에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또 고백해도 되느냐고 하니까, 그때 해도 된대."
사람이 긍정의 힘이 과도하면 바보가 된다는 것을 녀석을 보고 깨달았다. 

지금은 클럽이지만 우리가 신입생이었을 때는 락카페가 청춘을 즐기고 청춘남녀 만남의 장이 열렸던 장소였다. 최근의 클럽 관련된 사진이나 글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부비부비'라는 단어는 동아리 회장 형이 "제발 부비 좀 내라. 부비부비!" 했을 때 많이 사용되었는데....
아무튼, 고백과 그리고 다른 친구, 나 이렇게 셋이 락카페에서 이성과의 건전한 만남을 성사시켜 보기 위해 갔다. 
나와 다른 친구는 처음 가본 락카페가 신기해서 두리번대며 구경하고 있는데, 녀석의 눈은 세렝게티 초원의 표범이 되어 톰슨가젤 아니 여성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한 손에 병을 들고, 음악에 몸을 실은 채 흐느적거리며, 드디어 표범의 눈을 하고 여성들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녀석은 쿨해 보이는
도시 학생이라 생각했겠지만, 지켜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술 취한 주정뱅이가 비틀거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GO)
톰슨가젤 무리에 낀 표범은 어깨를 들썩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 도중 손가락으로 우리 쪽을 가리키기도 했다.
잠시 후 톰슨가젤의 뒷발 차기에 제대로 급소를 맞은 상처받은 표범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BACK)
"뭐래? 뭐래?"
"우리 셋 다 못생겨서 싫데..."
"와~ 진짜 그렇게 직접 말해?"
"응, 자기들 스타일이 아니래. 그런데 이제 한 번 시도했잖아. 한 번 실패했다고 벌써 포기하면 안돼."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라는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이 떠올랐다. 오늘 밤 녀석이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처럼 
시련은 있지만 성공하길 바랐지만, 그날 녀석의 자서전 제목은 <시련도 있고, 실패만 했다> 였다. 
결국,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셋이 국수를 사 먹으며, 시끄러운 락카페는 우리의 장점인 진솔한 대화를 살릴 수 없는 장소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1학년 여름방학 때 학기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친구들과 경포대로 여행을 갔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상상을 했다.
나는 해 저물 무렵 한 여인을 옆에 두고 기타를 치며 감미로운 목소리로 그녀를 유혹하는 세이렌이 된 나를 떠올렸고, 녀석은 파도치는 밤바다에서 
서로 첫눈에 반한 남녀가 뜨거운 키스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더웠던 그 날, 경포대 해변에는 사람도 참 많았지만 확 트인 바다는
그동안 답답했던 우리의 마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여자도 많았다. 
눈 내리는 날의 똥개처럼 해변에서 신나게 뛰논 우리는 어른들의 시간인 저녁이 되자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우리와 비슷하거나 같은 의도로 해변에 자리를 잡은 하이에나 무리가 많이 있었다. 
녀석의 눈은 마치 야간 투시경을 쓴 것처럼 해변의 여인들을 차례차례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멈춘 곳에 우리와 같은 수의
밤바다의 낭만을 즐기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나서야 할 차례군' 하는 표정으로 녀석은 바로 일어나 그녀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밤바다 달빛 아래 녀석의 실루엣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처럼 멋있어 보였다. (GO)
포세이돈은 위풍당당하게 네 명의 여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여인들은 신에게 화사한 미소로 화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포세이돈의 
남 신도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신은 네 명의 여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수박을 작은 과도로 낑낑대며 자르고 있었다. 
그리고 포세이돈은 한 손에 수박 덩이를 들고 우리에게 왔다. (BACK)
"뭐래? 뭐래?"
"남자 일행 있데."
"근데 왜 수박 썰고 왔어?"
"온 김에 수박이나 썰어주고 가면 안 되냐고 해서, 썰어주고 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포세이돈은 아테네 여신에게 패배한 흑역사가 있었다. 
녀석은 그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었지만, 그날 그녀들은 전쟁의 여신 아테네였다. 
그럼, 여름 밤바다에서 나는 뭐했냐고? 
선원을 유혹하는 전설 속 세이렌처럼 내가 기타 치고 노래하면 술 취한 아저씨들만 계속 와서 반주 신청해대서 기타쳐주고 끝.

그렇게 우리는 20살 여름 이성과의 키스는 커녕 손도 못잡아봤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
출처 고백 좀 그만해 새퀴야...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