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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
게시물ID : gomin_15165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kaoops
추천 : 0
조회수 : 17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9/12 00: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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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되게 우울하고 기분이 안좋은데.. 어디 말할데도 없고 해서.. 푸념할 곳이 필요했네요.
내용이 길 것 같아요. 우울한 얘기 듣기 싫으신분은 뒤로가기~

37세 남자입니다. 
21살에 전공이 마음에 안들어 미대 간답시고 학교 자퇴하고 다시 수능보고 실기 준비했는데 원하는 곳에 다 떨어졌어요.
알바나 하며 시간 보내다가 영장이 나왔네요. 군대를 갔어요.
이등병 말에 허리를 다쳐 군 병원에 갔더니 디스크래요. 병원을 전전하면서 선임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 군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상병을 달자마자 제대했어요.
남들보다 일찍 제대했기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일을 하다 악화가 됐어요. 재활치료를 했어야 했는데..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다시 대학을 가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어요.
허리는 점점 안좋아지고.. 심할때는 약 3개월 여 동안 앉아있지도 못했었네요.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같은 무력감과 두려움에 빠졌었죠.
겉보기엔 멀쩡하기에 좀 괜찮아 보인다 싶으시면 아버지가 일하러 가자고 하셨어요. 집 수리 일을 하셨었죠. 네. 노가다요. 눈치보여 따라 나서고는, 한달 정도 하고 나면 또 두달은 쉬어야 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스물 여덟이 되어버렸네요. 더이상 시간을 헛되게 보낼 수 없다 싶었어요.
이렇게 살다간 사람구실도 제대로 못할 것만 같았어요.
서울에 있던 누나에게 사정을 해서 상경을 했죠. 알바를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몸이 버텨주더라구요.
차곡차곡 모은돈으로 학원을 등록해 1년동안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어요. 서른에 드디어 꿈꾸던 게임 업계의 한 회사에 입사를 했네요.
뭐든지 좋아보였어요. 이제 나도 좋아하는 일 하면서 남들처럼 잘 살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자존감도 서서히 회복이 되어가고.. 20대의 아까웠던 시간들도 내 앞으로의 삶에 토대가 될꺼라고 생각했죠. 내 스스로가 얼마나 바닥까지 떨어질 수 있는 지를 봤기에..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죠. 암흑같던 그 시절들도 내 밑거름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 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부당함과 불합리. 
4년을 버텼어요. 희망이 안보이더라구요. 과연 이 일이 나한테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어요. 
퇴사를 하고 무계획으로 유럽으로 떠났어요. 100여일간의 배낭여행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자존감을 찾았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한지도 잘 알게 되었죠. 귀국후 몇개월여의 준비와 정리를 마치고 런던으로 떠났어요. 
10여개월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을 해야 했죠. 그동안 모은돈은 이미 다 떨어지고, 가족에게 빌린 빚만 수백이 남았죠.
그래도 괜찮았어요. 죽으란 법은 없다 싶었고, 돈은 없지만 가슴에 가득한 만족감이 있었으니까요. 
재취업이 힘들었어요. 2년에 가까운 공백이 걸림돌이었죠. 많은 나이도 그랬구요. 
다행히 저를 좋게 봐준 분을 통해 다시 게임 바닥에 들어 올 수 있었죠. 작은 회사라 그랬는지, 팀원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그랬는지, 심히 과도한 업무량에 몸은 망가져갔어도 정말 즐겁게 일했어요.
1년도 안됐는데, 회사에서 개발진들 다 나가래요. 월급 줄 돈이 없대요.
그래도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얼마 안됐지만, 좋은 회사 같아요. 아직까지는 재미있게 다니고 있어요.
앞으로의 길도 지인들과 함께 잘 만들어가고 있어요.
행복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에서 앞으로도 잘 살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불행하네요.
9살 차이나는 5촌 조카가 있어요. 오랫만에 만나서 수다나 떨었죠.
근황을 묻길래 이것 저것 얘기하다, 최근 관심이 가는 여성이 있었는데, 나이차도 너무 많이나고 그쪽에선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그냥 접었어 라고 하자.. 그러지 말래요. 나이차가 너무 심하지 않냐고 하네요. 나이는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냥 그쪽에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어짜피 접었다 라고 했어요.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기전에 잠깐 있었던 회사에서 고생하고 있는 어린 친구가 안쓰러워 지금의 회사에 오면서 지인에게 부탁해 같이 이직을 했어요. 그 친구가 이사를 했어야 했어서 같이 집도 알아봐주고, 여러모로 조언과 도움을 많이 줬어요. 그러다보니 이성적으로 관심이 생기길래 가만히 지켜보며 눈치를 봤죠. 그녀에게 저는 그냥 착하고 잘 챙겨주는 나이 많은 오빠. 딱 거기더라구요. 그래서 접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씁쓸하네요. 그 조카가 나쁜마음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핀잔을 주려 한것도 아닌데..
나이가 많아서 수컷으로 이미 수명을 다한 것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이 보시기엔 우스운 소리로 들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첫 여자친구가 스물 한살때 재수 실패한 직후였어요. 한살 연상이었고.. 나쁜여자였어요. 두달만에 12년지기 제 친구와 양다리를 걸쳤죠. 충격이 컸어요.
근데 그게 마지막 여자친구이기도 해요.
20대의 암흑기때는 여자를 만날 생각도 못했어요. 드디어 취직이 된 서른부터 부던히 소개팅도 많이 했죠. 닿는 연이 없었어요.
썸도 많이 탔어요. 항상 실패를 했죠. 흔히 말하는 연애상담은 최고인데 자기 앞가림을 못하는 타입이죠. 
3자의 입장에서는 눈에 뻔히 보여요. 조언을 많이 해주고.. 그대로 해서 성공한 커플들이 많죠. 그런데 당사자가 되면 아무것도 안보이고 안들려요. 눈치도 없어져요.
눈이 높대요. 그래서 내가 눈이 높다면, 그 눈높이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배나온 아저씨는 절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깊이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책도 많이 읽었었어요. 
좋은 가치관, 열린 사고, 큰 그릇을 품은 인간이 되려 항상 노력해요. 참 좋은 사람이다라는 주위의 평판도 얻었어요.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갈 수록 하나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요. 그렇게 하면 나도 행복하고, 그걸 좋게 바라봐 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좀 늦었나봐요. 주위에 괜찮은 사람들은 이미 다 결혼을 해버렸어요. 새로 알게되는 여성분들은 다 젊고 어려요. 그사람들 눈엔 제가 아무리 가꾸고 노력해봤자 아저씨네요. 오늘 문득 그걸 깨닳았어요. 난 그냥.. 흔한 노총각 아저씨가 되어버린거구나. 내 노력은, 내 삶은 보다 단단하고 행복하게 만들지언정, 내 외로움은 채워줄 수 없구나.. 하고. 
난 남자로써, 수컷으로써 이미 끝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인들은 저랑 친해서 그런지 니가 왜 연애를 못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들해요. 겉보기엔 멀쩡하거든요. 제법 키도 큰편이고, 꾸준한 운동으로 단단한 편이고, 생긴건 좀 촌스럽게 생겨서 그렇지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그렇다고 잘생기지도 않았어요. 그냥 평범해요). 옷도 항상 깔끔하고 단정하게 하지만 너무 딱딱하지 않게 입으려 노력하고, 허허 거리며 사람 좋아보이고 자상하다고도 하고, 일도 열심히 해서 나름 괜찮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물론 빈털털이긴 해요. 모아둔 돈이 얼마 안되거든요. 하긴 이 나이에 모아둔 돈 없으면 별로이긴 한 것 같아요. 그런걸 이해해 줄 사람을 바라는긴 이기적인 거겠죠. 사실 결혼도 그닥 크게 기대하진 않아요. 결혼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야 결혼 한다는 주의라, 그냥 연애라도 하고 싶을 뿐이에요. 물론 지금 그게 제일 힘든거지만..

모르겠어요. 뭐가 잘 못되어가고 있는건지. 물론 저도 제 단점들 잘 알죠. 그게 이성에게 어필이 잘 안되는 이유라는것도. 
밀당도 못하고, 카리스마도 없고, 튕기는건지 거절하는건지 구분을 못해 전부다 NO로 받아들이고.. 누가 좋아해줘도 눈치못채고. 모두에게 친절해서 더 매력없어 보인다는 말도 듣고. 상처가 많아서 저돌적인 어렸을때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런데 어쩌겠어요. 이게 저인데요. 바꾸려고 해봤는데 안되더라구요. 

아.. 글을 쓰다보니.. 뭐하고 있나 싶네요. 더 혼돈에 빠진 듯해요. 
사람들은 참 쉽게 말해요. 곧 짝이 나타날꺼라고. 그말만 15년을 넘게 들어보셨나요? 15년동안 수많은 여성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 내 짝이 없었다면, 앞으로 15년 안에 나타나리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독신주의는 아닌데, 강제 독신주의가 되버리고 있어요. 내 속의 본능은 육식인데, 내 삶은 초식남을 향해 가고 있어요. 어느샌가 외로움도 익숙해져버리고, 욕구는 제어하는게 당연한게 되어버렸고.. 그냥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싶어요. 내 삶에 이성과의 관계는 배제한채 살아가야 하는것인가 싶어요.

차라리 술이라도 잘 마시면 소주 한잔에 탁 털어버릴텐데, 이놈의 몸뚱아리는 술도 못마셔요.
이래저래 힘든 날이네요.
읽으신 분들 푸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인들에게도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모르는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었어요.
좋은 주말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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