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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감성, 청설모 새끼 SSul
게시물ID : bestofbest_1093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맥콜같은인간
추천 : 454
조회수 : 38618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3/05/11 22:41:41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5/11 19:41:44

 

 

 

대충 산속에 있는 부대에서 생활한 닝겐들이라면 알 것이다.

부대 주위에 있는 침엽수림에는 엄청난 청설모들이 서식한다는 것을.

 

그들은 구보할 때도 보이며 야간 선로작업을 하러 나갈 때도 보이고,

짱박히기 위해 여단건물 옆 사격장 쪽문으로 작업을 나갈때도 항상 우리를 주시한다.

일설에 의하면 내 바로 윗 고참이 탈영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는데,

그게 실은 청설모로부터 지통실에 상황보고가 들어와서 라는 설이 있다.

 

어쨌든 이 청설모들은 다람쥐보다 더욱, 흔하고 귀엽다는 이유로 부대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취사병들은 짬타이거보다 청설모를 더 사랑해서, 제초작업 인원에게

부탁하여 건빵 부스러기를 나무 밑둥에 뿌려달라는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서였는지 청설모는 군인들을 봐도 별 다른 감흥이 없는 듯 했다.

'이리로 오련' 하면, 심지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옆 소대 개같은 분대장 그놈도

청설모만 보면 천사가 되었다. 후임 중 누군가 사고를 쳤을 때, 청설모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 부대원들의 청설모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더 설명하면 손가락이 아프다.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다.

다음 해 봄이면 전역이라 저녁을 먹으러 다녀오는 길이었다.

우리 소대에서 제일 멀쩡하게 생긴 구성원 중 하나지만, 생긴것과 다르게 괴랄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정식결선 만들어오게 시켜서 여자친구한테 선물로 주기 etc)부소대장이 나와 내 후임을 다급히 불렀다.

 

'왜 부르십니까'

'잠깐 통신과로 가봐 얼른'

 

난 후임과 헬스장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매우 심기가 불편했다. 까라면 까야 하는 집단인지라 일단은 입을 다물고

통신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기에는 못보던 상자가 있었다. 우리가 야간 작업에 쓰는 랜턴이 조명으로 쓰이고

있었다. 상자안에 무엇이 있기에?

 

나와 내 후임은 그자리에서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미친년이 된다는 여고생처럼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보이는 꼬물꼬물 내친구 새끼청설모가 몸을 웅크리고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귀여웠다. 건드려보고 싶었지만 차마 내 아름다운 감성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후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연신 '귀엽습니다' 만 연발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부소대장이 들어오며 씨익 웃더니,

 

'귀엽냐? 줏어왔다' 하는 것이었다.

 

'이게 뭐라고 주워오십니까. 엄마가 찾을 거 아닙니까'

 

'걔 땅에 떨어져 있었어. 여단 다녀올 때도 그자리에 있길래 주워왔다.'

 

 

씁쓸하고, 숙연해진다.

언제 주워왔는지 의무실에서 주사기 하나와 취사반에서 우유를 훔쳐온 부소대장은 '앞으로 너희가 키워야 한다' 며

통신과의 마스코트라는 이유로 이름을 '통돌이' 로 정했다.

소대원들은 기쁨에 겨워했다. 시도때도 없이 올라가 작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등을 한다는 핑계로 통신과에

올라와 통돌이를 어화둥둥 기르는 재미에 하루하루 시간가는 줄 몰랐다. 우유도 먹이고, 가끔 잠꼬대 비슷한 것을 하면

불을 더 켜주거나 하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통돌이가 어느날 숨을 쉬지 않더니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이었다.

직감했다. 아무리 불빛을 비춰줘도 움직이지 않고, 차가웠다. 때마침 통돌이가 움직이지 않기 시작하던 때에

소대원들은 모두 모여있었고, 나는 부소대장의 지시로 후임 너뎃명과 함께 통돌이를 막사 옆 배드민턴 시합장

구석 흙구덩이에 묻어줬다. 작은 기도를 올리고, 우유 조금을 무덤 위에 부어줬다.

 

지나가던 간부들도, 다른 소대 다른 중대 사람들도 저게 뭐냐며 비웃었지만, 내막을 알고서부터는 빠르게 소문이 퍼져

아무도 통돌이의 무덤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를 더이상 비웃지도 않았다.

다만 지랄맞은 행보관이 동물새끼 하나 뒈졌는데 웬 지랄들이냐며 언제나 그렇듯 타박을 줬다.

우리는 행보관이 미웠지만, 언젠가 저지방 우유가 좋다며 읍내 공판장에서 우유를 사와 무심하게 던져주던 그의

뒷모습 때문에 미움마저도 사라졌다.

 

아직도 생각난다.

통돌이가 다 크면, 방자통을 메고서 우리 대신 선을 깔러 다니면 참 좋겠다고 말하던 후임의 모습이 생각난다.

니 후임이 들어오면 통돌이가 선임이니까 상병 통돌이 해야 된다면서 대대장님한테 전역신고도 시키자던 목소리가 생각난다.

나무 못타는 선임이, 나대신 쟤 나무 태우면 되겠다고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굳이 피엑스 놔두고서 휴가 다녀온 소대장이

동물우유 사오고 애처럼 웃었던 것도 생각난다. 그냥 왠지, 그렇게 통돌이가 생각난다.

 

 

쇠냄새 쩔던 방자통과, 수송부 옆 침엽수림에서 나던 그 기분나쁜 풀냄새도 생각난다.

 

그냥 모든것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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