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렸을 적 집안 어른들을 따라서 자주 산 속의 절에 가던 기억과 맛없는 절 밥을 대강 먹고서는 얼른 절편을 달라고 졸라 설탕을 찍어먹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두 집안 모두 그 시절 각자의 터전에서 위세가 대단하였던 집안으로 따로 적을 두고 다니는 절이 있었는데 친할머니께서 어머니에게 집안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며 저희 어머니를 본래 다니던 절에 못 다니게 하셨었지요. 갓 스물의 나이로 시집 간 어머니는 모진 시집살이는 견디면서도 친정에 대한 그리움은 떨치지 못했던지 아주 가끔 어린 둘째딸, 장녀와 막내 손자사이 소외된 저를 데리고서는 친정에는 무서워 가지 못하고 다니던 절에 몰래 가시곤 하였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위 있는 집안에서는 종교를 그저 믿음의 목적으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저희 양가에서도 마찮가지로 매년 어마어마한 양의 시주를 하시며 흔히 말하는 점을 보고는 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친가 쪽의 절에서만 아니라 몰래몰래 다니는 외가 쪽 절로 부터도 그런 신기한 이야기를 자주 들으러 다니셨는데 유독 저에 대한 이야기만은 두 절에서 이 아이는 다 괜찮으니 누구도 참견하지 말라며 딱 그 말만 수년을 말을 아끼셔서 잘 듣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수험생이 되던 즈음 불안하신 어머니는 저에 대해 다시 물으셨으나 오히려 꾸중을 들으시고 급기야는 알음알음 소위 영험하다는 무당을 찾아 제게 드라이브를 하자며 속여 저를 무당 집에 데려가셨습니다.
무당 집에 생각지도 못하게 처음 간 그 무서움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대문부터 앉아있던 방도, 그 방의 분위기도 절과는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절에 다니는 내력이나 들은 이야기는 쏙 빼시고 그저 저의 앞날에 대해 대학에 대해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어머니가 무슨 마음이신지 다 알만 한 나이 였지요. 앞에 앉은 무당이 자신의 방식으로 점사를 보고(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평소에도 이 부분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이후에 말한 점사는 제 기억에 남은 말입니다.) 말하기를 니 딸은 심성이 착하고 곧고ㅡㅡ;; 부모를 불쌍히 여겨 효가 넘친다. 손을 쓰는 일을 하면 재능있어 잘 맞다. 대학도 좋은 학교 잘가고 성실하니 그저 신경쓰지 말고 내버려두라 했습니다.
이 말만 들으면 그 어느 부모가 기뻐하지 않을 까요. 어머니는 좋아하시며 저를 데리고 나가시려는데 이 무당이 잠시만 저를 잠시 따로 보자고 하는 겁니다. 제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어머니는 잠시 계시다가 저를 억지로 눌러 앉히시고 황급히 나가시는 바람에 정신없이 앉아있는데 무당이 빠르게 하는 말이
너희 집안이 부처님께 얼마나 정성들였는지 안다는 겁니다. 놀라서 어린 마음에 네? 했더니. 조상이 정성들인 티가 나는데 예전만은 안 하는거 같다고. 그 업을 자손인 너희가 진다. 너는 역마살이 있는데 차라리 잘된 것이 니가 착하고 약해서 앞으로 사람 중 특히 부모에게 상처를 크게 받는다. 되도록 집 안과 멀리 떨어져 혼자 살아야 니가 산다. 라고 속사포 처럼 말을 빠르게 하더군요. 곧 나가라는 말과 함께 얼른 제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당연히 많이 궁금해 하셨지만 저는 아직까지 말씀드린 일이 없습니다.(대충 수능 핑계로 둘러 댔습니다.)
제가 너무 신경을 쓰고 산 탓인지 기가 막히게 맞은 그점을 자세한 이야기는 알아보는 친인척이 있을지도 몰라 생략해서 적었지만 이 경험이 공게에 어울릴 것 같아 올립니다.
ㅎㅎ 글이 너무 길고 사족이 많아 재미없을 수 있어도틈틈히 공게 게시글을 보는 것이 낙인 유저가 공게 유저, 업로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이나마 전하려 씁니다.
제가 글재주가 없어 그렇지 공게에 어울릴만한 소재는 머리에 많으니 글만 많이 읽으면 죄송하니 가끔 글 쓰겠습니다. 공게 활성화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