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공개 토크쇼 ‘다스뵈이다’에 나갔습니다. 현장에서 개략적인 요지는 전달했으나, 즉흥적으로 얘기했기에 조금 더 정제된 글로 올립니다.
1. 조선시대와 비교한 현실.
400년 전 사관(史官)이 현재에 와서 요즘 민주당 당 대표 선거와 관련해 벌어지는 일을 본다면, 아마 이렇게 기록할 겁니다.
“그해에 사림이 대거 기용되어 조정이 사림 일색처럼 되었다. 경기감사 이모에 대해서는 언행이 상스럽고 무뢰배와 어울리며 역심을 품었다는 소문이 돌아 그를 매우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림 중에도 이감사를 즉시 파직하여 사림의 의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생겨 스스로 ‘청류(淸流)’라 칭하며 자기들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을 모두 탁류(濁流)로 몰아 공격하기를 역적 대하듯 하였다. 이에 서로를 배척하는 마음이 날로 깊어져 마침내 양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 권력의 가성비 추구 법칙.
민주주의(Democracy)는 본래 ‘다수 지배’라는 뜻입니다. 51%의 지분으로 100%의 권력을 갖는 게 다수 지배입니다. 권력을 사유물로 보는 사람들은 70%의 지분으로 100%의 권력을 가지면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정치세력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면, 내부에서 ‘분열의 충동’이 일곤 했습니다. 만약 지난 지방선거에서 자한당이 부산 경남 강원 등지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다면, 그래도 ‘경기지사는 자한당’이라고들 했을까요? 70대 30의 세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이를 다시 40대 30대 30으로 나누어 40%의 지분으로 100%의 권력을 갖는 것이 가까운 사람들끼리 더 많은 권력을 나누는 효율적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쪼개는 과정에서 세력 관계가 변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지 못하는 게 첫 번째 함정이고, 조직에서 이질적인 세력을 쫓아내기만 하면 그 조직 전체를 온전히 장악할 수 있다고 믿는 게 두 번째 함정입니다.
3. 준론(峻論)과 완론(緩論).
날카롭고 빠른 것이 ‘준(峻)’이고, 느슨하고 더딘 것이 ‘완(緩)’입니다. 기민함은 준론(峻論)의 매력이고, 신중함은 완론(緩論)의 미덕입니다. 반면 준론은 맹동주의로 흐르기 쉽고, 완론은 기회주의와 혼동되기 쉽습니다. 대중은 대체로 준론을 좋아합니다. 섣불리 판단하더라도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임 있는 사람들의 속단은 위험합니다. 지난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때에는 문 대통령이 탄핵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고구마라는 말도 들었고, 기회주의라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늘 신중한 문 대통령이 지금 민주당 의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이재명 지사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게다가 준론과 완론은 판단의 시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재명 지사 관련 의혹들을 사실로 확신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서로 적대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4. 얼레리꼴레리 전술
조선 시대에 상복을 9개월 입느냐 1년 입느냐는 의리와 예(禮)에 관한 근본 문제였지만, 요즘 사람들은 별 시답지 않는 이유로 목숨 걸고 싸웠다며 비웃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들어진 대립 구도는 저것보다 더 우스꽝스럽습니다. 말로는 ‘의리의 근본 문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얼레리꼴레리 놀이’에 훨씬 가깝습니다. “얼레리꼴레리 누구랑 논대요”나 “얼레리꼴레리 뭐 묻었대요”는 초등학생 반장 선거에서 상대에 대해 특별한 비교우위가 없는 경우 흔히 쓰는 수법입니다. 이 수법이 통하면 품성이나 지도력은 따질 필요 없는 문제가 됩니다.
5. 투쟁의 정당성
자기편이 ‘얼레리꼴레리’ 놀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민망합니다. 상대를 일본 제국주의나 군사 독재정권 같은 어마머마한 거악(巨惡)으로 상정해야, 스스로 힘겹지만 정의로운 투쟁을 벌인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 한국 사회의 모든 악(惡)이 이재명 지사를 중심으로 총결집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경찰, 검찰, 법원, 언론, 자한-바미당, 정의당, 민주당 내 일부가 이재명 지사를 비호하며 오른쪽으로는 일베부터 왼쪽으로는 구 통진당 세력까지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들의 의식 안에서 이재명 지사는 이명박 박근혜보다 훨씬 사악한 데다가 기득권층으로부터 조폭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전 영역을 통제하는 막강한 권력 실세로 형상화합니다. 자기에게 쏠린 의혹을 풀지 못해 전국 시도지사 중 직무 수행 지지도 최하위를 기록한 이재명 지사를 극력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면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6. 비호할 이유
정유라 부정 입학 사건으로 이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을 때, 이대 교수로 있는 후배와 다른 일로 통화한 적이 있습니다. 대화 중 “학교가 어수선해서 어쩌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의 답은 “일부의 몰락은 다수에겐 기회죠”였습니다. 지난 대선 경선 때, 민주당에도 안희정씨를 지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안희정씨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한 사람이 누가 있나요? 민주당 유력 의원들이 이재명 지사를 극력 비호할 이유가 뭘까요? 그가 다음 대통령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판단해서? 그와의 오래된 인연 때문에?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이 이재명 지사를 극력 비호할 이유가 뭔지 생각나지 않으면, 그들을 이재명 비호세력으로 낙인찍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7. 예상되는 결과
물론 이재명 지사를 즉시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는 순수한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여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세력은 언제나 있습니다. 상대 진영 내에 내분이 일어나면,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밖에서 부채질하는 세력도 언제나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 엉키면, 내분은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지방 선거 직후 관념으로 갈라놓은 ‘찢묻 대 반찢묻’이라는 구도는 지금의 당대표 선거뿐 아니라 내후년의 총선, 나아가 다음 대선 때까지 지속될 겁니다. 설령 이재명 지사가 탈당하거나 사퇴하더라도, 일단 만들어진 구도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이명박 박근혜가 다 구속됐지만 자한당에 아직도 친이 친박이 있는 것처럼. 게다가 이 구도가 계속되기를 원하는 세력이 있는 한, 강력한 통합의 의지가 없으면 민주개혁 세력이 분열하고 민주당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8. 판단의 준거
자기 판단에 따라 이재명 지사를 배척하거나 증오하는 건 주권자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가 한국 사회 모든 악(惡)의 총 결집체라고 생각된다면, 그래서 자기의 미운 마음을 그에게 몽땅 쏟아 붓고 있다면, 그래서 다른 일들에는 분노할 여력이 없다면, 혹시 자기 판단에 착오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짚어 두고 싶습니다. 해방 이후 이승만과 김구가 환국하자, 태극기에 혈서를 써서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보다 충실한 이승만과 김구의 추종자이자 애국자인 양 행세했습니다. 이들은 왜 일제강점기에는 안 그러다가 해방된 뒤에야 태극기에 혈서를 썼을까요? 충성심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사람들의 말은, 깎아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전에도 썼지만, 제가 트위터 활동을 중단한 이유는 내분의 불씨를 키우기 위해 부채질하는 조직적 움직임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채질이 멈추지 않는 한, 앞으로도 불쏘시개를 제공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