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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리저린 김에 과거 회상
게시물ID : animal_1415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콩이두마리
추천 : 18
조회수 : 855회
댓글수 : 38개
등록시간 : 2015/09/24 07: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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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그러니까 2008년 5월
 
자주가던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었다.
'제가 밥을 주는 동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얘가 성격이 진짜 웃겨요. 저 슈퍼갈 때 야옹하고 슈퍼 앞에서 아는 척해요. 그리고 제가 슈퍼에서 물건 계산할 때 가격이 꼭 몇 백원씩 더 붙길래 뭐지? 했는데, 아주머니가 제 뒤를 가리켜요. 걔가 유유히 저 따라 들어와서 쥐포나 소세지같은거 물고 나가는거 있죠. 간혹 저희 집에 들어와서 우리 고양이 밥도 뺏어먹고, 가끔 우리 애 뺨도 때리고 도망쳐요. 근데 하는 짓이 미워도 천연덕스러운게 웃겨서 자꾸 눈이 가요'
 
웃기는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에 또 글이 올라왔다.
'그 고양이가 새끼를 한 마리 낳았는데, 어제 비오는 밤에 저희 집 창문에 와서 엄청 우는거예요. 그래서 뭐지? 하고 보는데 옥상에서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요. 보니까 옥상의 하수구멍에 새끼고양이가 빠져서 못 나오고 있더라구요. 그 새벽에 죄송하지만 119 대원분들의 힘을 빌려서 아이 구조했어요. 물을 너무 많이 마신데다가 저체온증이라 새벽에 다리를 건너가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반나절 지나고 튼튼해졌어요. 혹시 이 아이 데려가실 분 계신가요?'
 
뭐지, 그 웃기는 고양이와 비오는 밤 하수구에 빠져서 죽을 뻔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새끼고양이는?!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글을 본 순간 나는 꼭 너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한장 안 보고 얼굴도 모르는 너를 [턱시도 수컷] 조건 하나만 보고  데려오기로 마음 먹었다. 고양이는 키워본 적도 없었는데, 왜 너였는지. 지금도 사실 모르겠다. 그냥 너의 엄마가 웃겼고, 너의 사연이 웃퍼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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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4일
나는 용인에서 안산까지 버스를 타고 친구와 함께 너를 데리러 갔었다.
너는 작았고, 성격은 엄마를 닮았는지 낯도 안가렸다. 냉큼 친구품에, 또는 내 품에 안겨서 울지도 않고 우리집까지 무사히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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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째로 추정되는 500g의 너는 작았고 귀여웠다. 근데 얼굴은 넙대대해서 나를 웃겼다, 짜식.
그리고 수시로 젖병 달라며 울어대는 너 때문에 나는 밤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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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5일
기본적인 검사를 위해서 병원을 갔다.
 
의사 선생님이 네 얼굴을 보고 '녀석, 얼굴이 장군감이네!' 라고 하셨다.
그리고 너를 들어올리시고 한참 보시더니 나에게 '.....어, 얘 여자애네요.' 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아니 의사선생, 그게 무슨 말이오!!!! 분명 임보자분께서도 이 녀석이 떡두꺼비같은 남자애라고 철썩같이 믿고 계셨는데!!!
 
나는 배로 뛰는 중성화 수술 비용이나 임신 걱정보다 네가 그 얼굴로 여자애라는게 그냥 슬펐다.
2n년만에 어릴 때 선머슴이었던 나를 보며 한숨 쉬던 부모님의 기분을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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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잘 먹고, 잘 놀고 쑥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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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짧았지만 강렬했던 캣초딩 시절.
나는 기나긴 전쟁 영화 한편을 찍은 기분이었다.
 
 
 
2008년 9월 첫째 주 토요일. 너는 수컷 고양이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너무 어린건 아닐까, 너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리고 마취가 깨자마자 밥을 찾고 냥냥대는 너의 건강한 체력과 식탐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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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잘 먹던 너는 전보다 더 잘 먹게 되었고, 게을러졌다. 
 
내가 미친듯한 손목 스냅으로 낚싯대를 흔들면, 환호하던 네가 어느 날 갑자기 낚싯대와 내 손, 그리고 내 얼굴을 번갈아보고
배신감 가득찬 표정을 하더니 그 이후로 아무리 장난감을 흔들어도 반응해주지 않았다.
나에 대한 불신이 너의 본능을 이긴거니. 아니면 그냥 움직이기 귀찮아진거니.
 
 
 
근데 여전히 너는 나를 너무 좋아해서 내가 없는 집에서 목이 터져라 울어댔다. 나는 그게 너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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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하는 첫째 때문에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더 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고양이 카페에서 너와 얼굴 문양이 대칭으로 닮은 턱시도 고양이의 글을 보게 되었다.
 
시장 생선가게에서 묶어놓고 키우던 고양이.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그대로 묶어둔채로 방치. 발견 당시 임신을 했지만 병원에서 유산.
같이 임보 중인 새끼 고양이에게 나오지 않는 젖을 계속 물려주는걸 보아 모성애가 강함.
 
안타까운 사연도 사연이지만, 첫째처럼 콧잔등과 입이 반만 하얀 그 얼굴을 보고 이 녀석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나는 또 고양이를 데리러 안산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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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용인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 가방 속에서 내내 작은 목소리로 애옹-되던 너.
 
집에 들어온건 두번째라 둘째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실 첫째보다 1-2개월 앞서 있던 터라 너는 그렇게 첫째의 언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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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경계심이 많은지. 이게 고양이의 습성이라는걸 첫째 때문에 잊고 있었다.
일주일은 네 얼굴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네 덕분에 반푼이 고양이 같았던 첫째가 한 7푼 고양이 정도로 승급했다.
난생 처음 첫째의 하악질과 어설프고 요상한 경계의 캣워크와 점프를 네 덕분에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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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의 경계에도 너는 하악질 한번 하지 않았고, 나보다 첫째에게 먼저 마음을 열었다.
너는 한동안 나를 따돌렸고, 나는 외로움에 너의 관심을 갈구했다.
 
 
첫째는 항상 나의 애정을 고파했고, 나는 둘째의 관심을 갈구했으며, 둘째는 첫째의 뒤꽁무니만 쫓았다.
그렇게 우리 집의 이상한 삼각관계가 시작되었다.
 

 
출처 새벽부터 나의 다리를 저리게 만드는 너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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