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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할매와 10살 손자, 추석에도 곰팡이 핀 밥 한그릇
게시물ID : sisa_6139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ouseofcards
추천 : 10
조회수 : 1312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5/09/24 09:59:34
[email protected]" alt="“가족이 같이 살며 같이 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문주이 할머니(왼쪽)와 손자 우진(가명·오른쪽). 갈수록 몸이 쇠약해지고 최근에는 치매까지 온 문 할머니가 지난 16일 경기도 연천의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낡은 집 앞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수영을 하러 가는 손자를 바라보고 있다. 연천/이종근 기자 [email protected]" style="border:0px;margin:0px;padding:0px;width:640px;">
“가족이 같이 살며 같이 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문주이 할머니(왼쪽)와 손자 우진(가명·오른쪽). 갈수록 몸이 쇠약해지고 최근에는 치매까지 온 문 할머니가 지난 16일 경기도 연천의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낡은 집 앞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수영을 하러 가는 손자를 바라보고 있다. 연천/이종근 기자 [email protected]
2015 나눔꽃 캠페인-사람이 중심이다
내가 전하는 한송이 ‘나눔꽃’이 이웃과 사회를 밝고 행복하게 합니다.

<한겨레>가 ‘2015 나눔꽃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나눔꽃 캠페인은 2009년부터 해마다 진행한 <한겨레>의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입니다. 올해는 대한적십자사, 바보의 나눔, 세이브더칠드런,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와 함께 일곱번째 나눔을 시작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연이 실린 기사 속 계좌 또는 자동응답전화(ARS)로 성금을 보내시면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달됩니다. 여러분의 기부로 위기를 넘기고 새로운 기회를 찾은 이들의 ‘보도 이후’ 모습은 다음 사연을 보도할 때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이 여러분의 작은 기부로 웃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한겨레>가 나눔꽃으로 함께하겠습니다. 개인 기부는 나눔 문화의 뿌리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첫번째 나눔꽃은 대한적십자사와 함께하는 ‘희망풍차’ 캠페인입니다. 소외된 어르신, 어린이, 다문화가족에게 희망을 전합니다.

‘손주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문주이(77) 할머니는 “우진이는 고추장을 좋아해”라고 말하며 아이처럼 웃었다. 냉장고 안에 있는 것이라곤 오래된 반찬통 하나와 고추장이 전부였다. 할머니는 한창 자랄 나이인 우진(10·가명)이가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고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는 모습만 지켜봤다. 언제부터인가 우진이는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게 됐다고 한다.

가장이 분양사기 당해 수억 빚진 뒤
컨테이너서 할머니·손자 둘이 살아
기초연금 2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

최근 오락가락 치매에 백내장까지
바구미 그득한 밥 해주고도 몰라

쇠약한 할머니·사춘기 겪는 손주
가난·질병에 둘 사이도 ‘삐그덕’
“그래도 함께 밥먹고 사는 게 꿈”

16일 경기도 연천의 한 시골 마을에서 만난 문 할머니와 우진이의 생활은 텅 빈 냉장고만큼이나 불안했다. 차도 오르지 못하는 산비탈을 200여m 올라간 산기슭,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낡은 집에서 둘은 서로 기대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힘만으로 살아가기에 우진이는 너무 어리고, 할머니는 너무 늙고 병들었다.

마당에는 치우지 못한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10㎡ 남짓한 방에는 떡처럼 굳은 밥 두 공기와 식기들이 쌓여 있었다. 텔레비전이 올려진 선반 아래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아무렇게나 제쳐놓은 이불과 언제 벗어놓은 것인지 모를 옷가지가 뒤엉켜있는 곳에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문주이 할머니가 지난 16일 경기도 연천 낡은 컨테이너 집에서 손자에게 “밥 한 그릇 못해준다”는 이야기를 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천/이종근 기자
문주이 할머니가 지난 16일 경기도 연천 낡은 컨테이너 집에서 손자에게 “밥 한 그릇 못해준다”는 이야기를 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천/이종근 기자
벌써 6년째 어린 손주를 홀로 키워왔다. 손주는 훌쩍 자라 어느새 자신보다 몸집이 커졌지만 할머니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갔다. 어깨며 팔꿈치며 성한 곳이 없어 온 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산다. 손아귀 힘도 덩달아 없어져 오른손 엄지 손톱을 몇 주째 깎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치매까지 와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할머니는 더 이상 손주를 돌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우진이가 예쁜데…. 예쁘긴 한데…. 밥 한 그릇 못해줘….” 할머니는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리듯 얼른 눈물을 훔쳐냈다.

할머니가 우진이와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연천에서 살게 된 것은 6년 전부터다. 그전까지는 서울에서 퀵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던 아들(55)과 함께 살았다. 몽골 사람인 며느리는 2005년 우진이를 낳은 뒤 집을 나갔다. 아들은 2009년 아파트 분양 사기를 당해 수억원대 빚을 지게 됐다. 아들은 사무실과 전셋집까지 처분했다. 마지막까지 남겨둔 연천의 작은 땅에 컨테이너박스를 구해 놓고는 어머니와 어린 아들을 보냈다. 자신은 서울에 남아 택배기사로 일하지만 한달 150만원 남짓한 벌이로는 빚진 돈의 이자를 갚기도 버겁다.

문 할머니는 부양가족이 있는 탓에 기초생활수급자 자격도 없다. 할머니 몫으로 나오는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이 한달 생활비의 전부다.

한창 자랄 나이인 우진이에게는 늘 먹을 것이 부족하다. 대한적십자사에서 한달에 한번 쌀을 지원받지만 찬도 제대로 못 갖춘 밥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먹을 것에 늘 굶주려 있는 우진이는 유난히 음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급식이 나오면, 우진이는 다른 친구들의 곱절은 받아가서는 5분만에 깨끗이 비운다고 한다. 빵이나 과자 등 학교에서 먹을 게 나오면 남겨두는 법 없이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운다. 집에서 아침, 저녁을 거르고 점심에 학교에서 폭식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비만이 됐다. 우진이는 자신의 별명이 ‘멧돼지’라고 했다.

늙은 할머니와 어린 우진이가 살기에 컨테이너 박스는 너무 열악하다. 창문도 없어서 여름에는 글자 그대로 찜통이 되고 겨울에는 툭하면 수도가 언다. 바닥 난방이 되지 않아 감기도 달고 산다. 어지럽게 꽂힌 콘센트와 전열기 탓에 화재 위험도 크다. 가끔씩 쌀을 들고 문 할머니 집을 찾는다는 연천다정적십자봉사회의 장옥화 회장은 “주거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건강도 문제고 화재가 날까봐 늘 불안하다”고 했다.

최근 할머니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면서 두 사람의 생활은 더 크게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노환으로 할머니는 귀가 어둡다. 대화가 어려울 정도다. 백내장으로 시력도 나빠져 코 앞에 있는 사물도 분간하기 어려워한다. 쌀통에 바구미가 그득했지만 할머니는 그걸 보지 못하고 그대로 우진이에게 밥을 해줬다. 얼마 전에는 곰팡이 핀 밥을 우진이에게 내줬다. 이제는 할머니 대신 우진이가 자기는 먹지도 않을 밥을 짓는다고 한다.

할머니는 치매로 나이와 고향도 기억하지 못 한다. 연천에서 언제부터 살았는지, 그전에는 어디에서 살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밥을 해놓고도 언제 해놓은 것인지 몰라 상하기 일쑤다.

지난달에는 할머니가 밤에 자다 이불에 소변을 본 일도 있었다. 축축한 느낌에 잠에서 깬 우진이는 깜짝 놀라 “왜 화장실에 안 갔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던 우진이와 할머니는 결국 젖지 않은 곳을 찾아 잠을 청해야 했다. 젖은 이불은 일주일 뒤 집을 찾은 아버지가 빨았다고 한다.

아들은 최근 할머니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하려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등급 판정을 신청했지만 등급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대화가 통하고 거동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들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우진이는 자신이 데리고 있으려 했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요양병원 비용이 자신의 한달 벌이보다도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포기했다고 한다.

우진이의 담임선생님은 사춘기가 시작된 우진이 걱정이 크다고 했다. 선생님은 “어리고 뭘 모를 때는 할머니를 잘 따랐는데, 요즘 들어서는 할머니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요즘에 할머니가 신경질을 많이 부려요. 그러면 저도 할머니한테 소리 질러요.” 할머니의 변덕스러움을 감내하기에 우진이는 너무 어리다. 문 할머니도 이전과 달리 말을 듣지 않는 우진이에게 속 상하는 일이 많다.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파.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야지.” 할머니의 치매는 애틋하던 손주와의 사이도 갈라놓고 있었다.

가난과 질병 속에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통하는 것이 있다. 앞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할머니와 우진이는 각각, 그러나 똑같이 “가족이 같이 살며 같이 밥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6년 전 언젠가 세 식구는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치매로 예전 일을 잊어버려서, 우진이는 너무 어렸을 때라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듯 두 사람은 같은 희망을 이야기했다.

연천/허승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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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이 할머니와 손자 우진이에게 힘이 되어주실 분들은 계좌이체(기업은행 060-709-1004. 예금주 대한적십자사)를 하거나 후원전화(060-709-1004. 한 통화 5000원)를 거시면 됩니다.

모금 목표액은 2000만원입니다. 지저분하고 위험한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하고 최소한의 생필품을 마련하는 데 1500만원이 필요합니다. 또 귀가 어두운 할머니의 보청기 구입에 300만원, 시력을 거의 잃은 할머니의 백내장 치료비에 20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우진이에게 식료품을 지원하거나 두 사람에게 정기후원을 하실 분은 대한적십자사(1577-8179)에 연락해 방법을 문의하시면 됩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9993.html?_fr=m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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