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싶지 않던 아가씨 시절. 이유는 단 하나. 여자로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잘나가는 커리어우먼 같은 욕심도 없었다. 그냥 내가 여자로서 스스로를 꾸미고 돌보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 활동도 즐기면서 가끔이라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나의 희망이었다.
올 여름에 임신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결혼하고 시간이 좀 지나니 슬슬 시댁이나 주변에서 기대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보류 중이다. 신랑과 둘이 연애하듯이 알콩달콩 사는 게 재미있기도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계속 곁에서 봐주는 동안 여자로서의 나는 사라지고 엄마로서의 나만 남을까봐 그게 두렵다.
신랑에게는 그냥 천천히 갖자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많이 두렵다. 아이를 낳더라도 한 달에 하루 이틀은 아이 없이 신랑과 단 둘이 혹은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게 녹녹하지 않은 현실임을 잘 알기에.
엄마의 집이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의 어렸을 적 기억이 나온다. 주인공이 가족과 함께 동물원 같은 곳에 놀러가면 자기는 아빠 손을 잡고 돌아다니고,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엄마가 혼자 생각에 잠긴 얼굴로 걷고 있었다고. 그럴 때의 엄마는 우리 엄마이기보다는 한 사람의 여자로 보이면서 낯설었다고.
어차피 언젠가는 나도 아이를 갖게 될 것이고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게 되겠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나 자신으로, 여자로서의 나를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여자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