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부엌에는 오직 라면 물 맞출때만 쓰는 계량컵이 있습니다.

부모님 두분 다 맞벌이신지라 저와 동생들은 라면을 끓여먹는 일이 빈번했고

라면봉지에 얼만큼 물을 넣어라 써져있으니 당연히 계량컵으로 물을 맞추곤 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기에 tv나 인터넷에서 나오곤 하는 라면 물도 못 마춘다는 말도

얼마나 대충 끓이길래 계량컵 눈금도 제대로 안 보는걸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친구 집에 놀러가서 다같이 놀다보니 배는 출출해졌고

라면이 있길래 라면을 끓일 사람을 정했습니다.

저야 뭐 어려울게 있나 해서 제가 끓이겠다 자청했고

부엌을 가보니 있어야 할게 없기에 친구에게 당당하게 물었습니다.

'근데 계량컵은 어딨어?'

그와 동시에 친구들은 일제히 폭소했고 무슨 라면 끓이는데

계량컵씩이나 필요하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계량컵 없이 끓였던 라면은 다행히도 성공했지만

아직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