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스팀과 함께 되찾은 어린 시절의 기분
게시물ID : gametalk_1096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로렌초
추천 : 13
조회수 : 410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3/10/13 09:43:40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게임'은 생소한 단어였다.
우리는 '오락기'를 가지고 '오락'을 했다.
그나마도 당시에는 굉장한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가가호호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때문에 우리는 몇 반 누구가 어떤 오락기를 갖고 있는지, 그걸로 무슨 오락을 할 수 있는지 등의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누가 새로 오락기 팩을 샀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구름처럼 몰려들어 한 번만 해보자고 온갖 로비를 하곤 했다.
그런 몇몇 부유한 아이들이 오락기를 가지고 위세를 떠는 건, 솔직히 나로서는 배알이 뒤틀리는 일이었다.
나는 무슨 놀이에 있어서든 지고는 못 사는 전투적인 애송이였던 것이다.

처음으로 나의 오락기를 갖게 된 것은 90년대 후반 즈음에 이르러서였다.
일주일에 몇천 원 받는 용돈을 악착같이 모아서 구입한 세가 새턴.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된 칙칙한 삼성 새턴이 아닌, 흰색과 회색이 멋드러지게 어울리는 일본판 후기형 화이트 새턴이었다.
물론 지금에야 소니의 용력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콘솔이지만, 당시에는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콘솔이었다.
심지어 플레이 스테이션을 갖고 있었던 친구조차도 나를 부러워할 정도였다.
이 새턴은 놀라운 내구력으로 최근까지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다가 변압기를 꽂지 않은 나의 부주의로 인해 퇴역하고 말았다.

콘솔을 소유한다는 것.
오락실에서 백 원짜리 몇 개를 들고 서성거리거나, 친구네 집에 들러 몇 시간쯤 갖고 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가슴이 뛰었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도 훨씬 신나는 일이 되었다.
모처럼 어머니와 함께 매장에 들러 새로운 타이틀을 고르는 태도는, 지금의 내가 할 수 없을 만큼 진지하고 신중했다.
무슨 소린지도 모를 꼬부랑 글씨를 어떻게든 해석해가며 브라운관 속의 작은 세계를 탐험했고, 때로는 감동으로 웃고 울었다.
그 안에서 나는 용기와 희생의 의미와 선의의 경쟁을 배웠고, 일본어와 영어에 익숙해졌고, 평화의 가치를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여 합당한 댓가를 치르는 멋진 기분을 알았다.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온라인에서 게임을 구매한다.
매장에서 게임을 고르고, 집에 돌아와 비닐을 뜯고, 콘솔에 CD를 넣으며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올랐던 감각은 이제 없지만,
나는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게임을 담고 설치하며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질 준비를 한다.
게임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었고, 내 기대보다 더 멋진 것을 보여주었으며,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인연을 만나게 해 주었으니까.
이 즐거운 모험이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