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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글은 영화 기술의 발달을 아주 간략~하게만 훑었습니다.
기초중의 기초일 뿐이니 대충 읽고 아항~ 하고 넘어가주시면 되겠습니다^^
과게와도 연관있을 수 있지만 영화 얘기를 하려는 거라 이 시리즈는 영화게시판에 올립니다.
지루한 건 이번 편까지이고 다음편부터는 실제 영화를 통해 영화 기술과 표현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2) 레디, 액션! ‘열차의 도착’부터 ‘그래비티’까지
: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영화 제작 기법 확장의 역사
(장면 1.) 막이 오르자 귀여운 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열연을 펼친다. 부모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르며 그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꺼내더니 무대 위 공연이 아닌 공연 촬영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장면 2.) 어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테이블 위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세팅되고 이를 바라보며 마주앉은 연인의 눈에도 행복한 빛이 서린다. 이윽고 포크를 들어 식사를 시작하려는 남자를 저지하는 여자.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SNS 공유로 마무리.
익숙한 풍경이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어딘가에 기록하여 두고두고 곱씹어 보는 모습. 휴대기기의 발달로 기록의 방식이 바뀌었을 뿐 순간을 기록해 영원으로 남기려는 것은 인간의 오랜 본능인 것 같다. 선사 시대 인류도 먹음직스런 사냥감, 경이로운 자연을 그림으로, 노래로, 이야기로 남기지 않았나. 이 순간들은 상상력을 더해 조각으로, 책으로, 춤과 연기라는 몸짓으로 살아나고는 했다. 기록과 재생의 한계 때문에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 채.
이번 연재 글에서는 120년 남짓한 영화의 역사에서 나타난 기술적 진보와 그 활용 예를 살펴보며, 기록과 재현의 긴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눈, 본다는 것과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인간은 외부 정보를 오감의 감각 기관을 통해 얻고 있으며 비율로 보면 시각을 통해 70%를 얻고 20%는 청각을 통해 그리고 나머지는 미각, 촉각, 후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의 경험은 대부분 시각에 의존하고, 청각이 이를 보조하며, 남은 세 감각이 더해지며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좀 더 생생한 기록을 위해서는 본다는 행위에 대한 이해와 이미지의 재현이 필수적이었다.
눈과 카메라에 상이 맺히는 방식의 비교
카메라는 눈을 모방한 것으로 그 작동 원리가 같다. 물체에 반사된 빛은 직진하여 렌즈(수정체)를 통과해 굴절하여 필름(망막)에 맺힌다. 들어오는 빛의 양은 조리개(홍채)로 조절하며, 이때 맺힌 상은 원래의 상과 상하 반전된 모습이다. 사진 혹은 동영상은 후처리 과정에서 이를 바로잡으며, 뇌는 경험적으로 망막에서 보내온 상의 정보가 상하반전된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를 뒤집어서 올바르게 지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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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과학 시간에 빛의 성질을 배우며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어 어둠상자를 만든 후 외부의 상이 맺히는 현상을 관찰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스마트폰과 돋보기를 결합해 간이 빔 프로젝터를 만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눈을 통해 보는 행위의 메커니즘과 어둠상자의 원리를 비교한 생각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핀홀 카메라의 광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10세기 아랍의 과학자 알하젠은 최초로 이 현상의 원리를 기술하며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빛을 가린 방’이라는 뜻)와 핀홀 카메라를 발명해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이 현상을 기술하였으며, 16세기 이탈리아의 조각가 델라 포르타는 처음으로 ‘어둠상자의 원리’를 완벽하게 설명해냈다. 17세기에 이르러 네덜란드의 과학자 하위헌스(호이겐스)가 기존의 카메라 옵스큐라와 반대로 상자에서 방의 벽으로 영사하는 이동카메라 옵스큐라, 즉, 환등기(leterna magica: the magic lantern)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영사기의 시초이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이를 활용한 핀홀 카메라의 원리
렌즈 없이 밀폐된 상자에 빛이 들어올 작은 구멍을 뚫어두고 반대편 벽면을 보면 거꾸로 된 상이 맺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어둠상자에 닿으면, 다양한 각도의 반사광 중 핀홀을 향하는 광선만이 상자 벽에 가로막히지 않고, 통과하여 반대편 벽면(영상 평면 혹은 투영 평면)에 맺히게 된다. 이 상의 크기는 핀홀 카메라의 초점거리(f)에 의해 결정되며, 이상적인 핀홀 카메라의 경우, 초점거리는 핀홀 구멍에서부터 영상 평면까지의 거리이다. 핀홀을 중심으로 상과 반사광이 만든 두 삼각형의 비례를 이용하여 상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 물체의 크기를 A, 상의 크기를 a로 두고, 핀홀과 물체 사이의 거리를 Z, 핀홀 카메라의 초점거리를 f라 할 때 상의 크기 a는 다음 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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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등기의 작동 원리
환등기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정확히 뒤집어 놓은 것이다. 광원이 기기 외부에 위치한 카메라 옵스큐라와 반대로 환등기는 내부에 램프가 있다. 불투명한 물체(사진, 그림 등)를 램프의 아래쪽에 놓고, 강한 광선을 비추어 평면거울에 피사체의 상을 보내면 이를 렌즈가 확대하여 기기 바깥으로 영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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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가 발명되기까지는 아직 필요한 요소가 남아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빛이 사라지면 상 역시 사라졌기에 화가들이 상을 따라 그리는 도구로만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빛의 물리적 성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결상과 영사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다른 한 편에서는 화학적 접근을 통해 상을 물질에 고정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18세기 I. B. 베커리가 은 염화물에 대한 광선의 작용을 발견한 이후, 프랑스의 사진가 다게르가 은판을 이용해 최초로 실용적인 사진 기술을 발명해냈고, 1826년 프랑스의 발명가 니엡스가 아스팔트 감광층에 상을 영구적으로 고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피사체를 긴 시간 동안 태양광에 노출시킬 필요가 없는 렌즈가 개발되고, 1882년 뉴욕의 은행 서기였던 조지 이스트먼이 젤라틴지의 박리필름을 사용한 현대식 필름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 낸 후 이듬해 세계 최초의 감광필름을 만들고, 1884년 셀룰로이드 필름 특허를 취득한 후 이스트만 코닥사(社)를 설립, 본격적으로 필름을 양산해내며 사진의 시대를 열었다.
일반적인 팬크로매틱 필름(panchromatic film: 가시광선에 속하는 거의 모든 파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필름)의 구조
베이스 위에 감광 유제가 도포되어 있다. 필름에 도포된 유제층은 빛에 쉽게 반응하는 성질을 가진 은 화합물(할로겐화은)과 젤라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할로겐화은이 빛을 흡수하면 광화학반응이 발생하여 은 화합물이 금속성 은으로 변하고, 잠상(潛像)이 형성된다. 이를 필름에 고정하기 위해 현상 과정이 필요하며, 그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현상: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잠상핵에 알칼리성인 현상액을 넣으면 할로겐화은이 흑화은으로 치환되어 검은 입자가 생성된다. 2. 정지: 빛을 받지 않은 할로겐화은이 변하지 않도록 산성의 정지액을 넣어 중화반응을 일으켜 현상을 정지시킨다. 3. 정착: 정착액을 이용해서 불필요해진 할로겐화은을 제거하고 안정된 화상으로 만든다. 4. 수세 및 건조: 화상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유제층에 남아있는 약품을 물로 씻은 후(수세), 먼지가 없는 곳에서 필름을 건조시킨다. 이 모든 과정을 네거티브 프로세스라고하며, 컬러 네거티브 필름 현상 과정에는 발색과 표백 과정이 추가되는 점이 다르다. 정지 사진용 필름의 현상과 영화용 필름의 현상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따로 기술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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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잔상 효과와 조트로프(Zoetrope)
빛을 붙잡아 상을 정착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지한 이미지만으로는 시간의 흐름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영국의 의사인 로제 박사가 발견한 ‘잔상(persistence of vision) 효과’가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할지도 몰랐다. 로제에 의하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그 대상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약 1/10초 동안 아직 그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잠시 떠올려보자. 판자 종이 양면에 새와 새장을 각각 그려 회전시키면 새장 안에 새가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가?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영국인 의사인 파리스가 만든 쏘마트로프(thaumatrope: 요술회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련의 원판 회전 실험에서 홈을 낸 원판을 돌려보다 셔터의 원리를 발견한 이후, 1834년에 이르러 영국의 수학자 호너가 구멍 뚫은 원판을 위가 뚫린 회전원통으로 대체한 조트로프(zoetrope: 돌아가는 인생)를 발명하여 큰 인기를 모은다. 이것은 아직도 장난감이나 예술작품에서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링크한 동영상에서 현대의 조트로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SK 플래닛 미디어플라워 조트로프 영상 https://youtu.be/5lSmWF42lFk
그림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영화의 출현에 앞서 애니메이션이 먼저 탄생한다. 1870년대 말, 프랑스의 발명가 레이노는 조트로프를 개조하여 그 셔터 원리를 환등과 결합시켜 최초로 움직이는 그림을 영사하는 데 성공한다. 이 발명품은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라 불렸으며, 셀룰로이드 띠와 릴, 각진 거울과 릴을 사용해 성능을 향상시켰고, 이것은 머지않아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와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e)의 발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카메라와 영사기술, 강하고 얇으며 탄력성 있는 필름, 셔터를 통한 잔상효과를 이용한 활동사진과 애니메이션 기술의 등장이 맞물리며 1888년 에디슨 연구소의 딕슨은 원통형 축음기에 사진을 배열, 시각과 청각의 동시영사에 도전하였고, 키네토스코프라 불리게 되는 요지경 기계를 만들어낸다. 발명가인 동시에 사업가였던 에디슨은 이 기계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리고자 영상을 세로로 영사해 한 명씩 동전을 넣으면 활동사진을 볼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했으며, 이는 그가 현대적 영화의 발명자라는 타이틀을 빼앗기게 되는 원인이 된다.
키네토스코프의 공개 이후,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발명가들은 아크등과 렌즈를 추가하고, 셔터의 움직임을 개선하며 영사의 문제점을 해결해갔고, 마침내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이 기계를 가장 성공적으로 개조해낸다. 이들은 그해 3월 국가산업진흥협회에서 그들의 영사기를 전시했으며, 12월에는 지하 카페에서 공공 유료상영을 시작하였다. 시네마토그래프는 기존 키네토스코프에 비해 작고 가벼워 기동성이 있었으며, 카메라는 물론 인화기 기능도 겸한 것이었다. 그들은 스튜디오에 머무르던 피사체를 야외로 확장시켰고, 뤼미에르 방식의 우수성을 알아본 다른 사람들은 즉시 그들의 방식을 따라가며 영화의 흥행시대가 시작되었다.
원래 움직임을 분석하는 기술을 재미있는 시각장난감으로 개발하면서 시작된 영화는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담을 수 있게 되었을 때도 이야기전달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초기의 활동사진기사는 실생활에서의 극적 사건과 공연을 사실적으로 담아 제공하는 데 만족하였고, 처음으로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간을 보게 된 관객들에게는 그 정도의 표현으로도 충분했다.
시네마토그래프의 구조와 원리 https://youtu.be/OXMHceVxq_c
키네토스코프와 같이 톱니로 필름을 감고, 레이노의 방식을 차용해서 화면에 연속적인 프레임을 영사했다. 또한, 필름 노출 비율을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초당 16 프레임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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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기의 구조와 구동 원리
영사기는 크게 필름을 감아주거나 풀어주는 릴, 필름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도록 구동시키는 모터, 필름의 영상을 스크린에 투영하기 위한 프레임 장치, 광원이 되는 램프, 광학 녹음된 음향을 재생하는 음향램프, 영상의 크기와 초점을 맞춰주는 렌즈의 6가지 부분으로 구성된다. 릴에 걸린 필름은 모터에 의해 일정한 속도(초당 24프레임)로 이동하며 렌즈와 연결된 개구에 순서대로 한 프레임씩 지나간다. 렌즈 개구부(aperture)에 있는 셔터가 움직여 보일 프레임을 결정하고, 영사기 뒤편에 설치된 램프에서 나온 빛은 투명한 필름을 통과해 영사기 앞부분의 렌즈를 통해 확대되어 비춰진다. 만일 셔터 없이 필름을 그냥 통과시킨다면 스크린에는 화면이 그냥 줄줄 흐르게 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필름의 각 프레임에 빛이 투과되는 순간에는 아주 일시적으로 필름이 정지하고 셔터가 열린다. 이때 빛이 필름을 통과해 스크린에 영상이 투영되고, 다시 셔터를 닫아 생긴 짧은 암전 동안 한 프레임이 이동하고, 이후 필름 릴이 끝날 때까지 이 과정이 반복된다. 영화 필름의 프레임 내에는 영상이 담겨 있지만 필름 가장자리에 음향 신호를 담기 위한 공간이 있고, 광학 녹음이라 불리는 특수한 녹음 방식으로 기록된 음향 신호가 영상과 동기화되어 재생된다. 영상과는 달리 음향 신호는 연속적인 바코드이므로, 멈추지 않고 계속 재생되며, 이 패턴을 읽어낼 별도의 전구가 들어간다. 다만 영상용 램프와 달리 음향 재생용 램프는 그다지 밝지 않다. 스크린에 투사된 화면의 크기나 초점은 렌즈를 조절해 이뤄지며, 모든 영사기는 이 기본 구조를 응용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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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표현 양식의 발전 과정은 프랑스의 마술사 멜리에스의 우연한 발견 이후에야 시작된다. 이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므로 생략하고,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을 계속 추적해보자.
소리, 파동과 전자기력의 하모니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지만, 청각의 도움 없이는 의사소통을 하기 어렵다. 영화가 발명된 이래 영화감독들은 움직이는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터득해갔으며, 1918년에 이미 영화 산업이 성립되었다. 영화는 충분히 길어지고 있었고, 각국의 창작자들은 시각적 표현 기법과 편집 기법을 개발해 무성 영화의 예술적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실험은 1927년 10월 6일, 대사와 음악, 그리고 음향을 합성한 최초의 극영화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 1927>가 공개됨으로써 완결되었다.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 홍보영상 https://youtu.be/FpjhEj9R_qU
사실 대부분의 다른 기술적 혁신과 마찬가지로 사운드도 처음부터 실험되어 왔다. 앞서 설명했듯 딕슨은 이미 뤼미에르 이전에 영상과 소리를 결합하는데 성공했지만, 차후의 컬러 영화나 와이드 스크린, 3-D 기술 등과 마찬가지로 유성영화의 출현에는 강한 경제적 동기가 필요했다. 미국 영화계에서 상대적으로 소규모 제작사였던 워너 브러더스사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로 사운드의 개발을 결정했다. <재즈 싱어>에 앞서 워너브라더스는 무성 영화 <돈 주앙 Don Juan, 1926>에 사운드 트랙을 첨가하여 개봉했고,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관련 기자재를 보유한 극장이 많지 않아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제작 과정에서의 비용과 극장 설비를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을 고려하여 다른 제작사들이 유성 영화 제작을 보류하는 동안 워너 사는 실험을 지속하며 1927년 뮤지컬 <재즈 싱어>를 그들의 네 번째 유성 영화로 선택한다. 기존의 유성 영화가 단순히 녹음된 음악만을 사용하여 상대적으로 관객의 흥미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지만, 우연히 녹음된 주연 배우의 대사에 청중들이 열광하며 영화의 역사를 바꿀 큰 혁명이 벌어진다. 토키(talkie)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미지는 빛의 물리적 성질과 필름의 개발, 시각인지의 왜곡을 이용해 기록하고 재생되었다. 소리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기록과 재현이 가능한 것일까?
광원에서 출발한 빛이 피사체에 반사되어 눈이나 카메라에 도달하면 이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꿔 뇌에 전달하는 영상과 달리, 음원의 물리적 진동이 매질(대개 공기)을 통해 고막에 전달되면, 우리 귀에서는 이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신경 네트워크를 통해 뇌로 전달한다. 즉, 소리를 붙잡기 위해서는 매질 진동의 패턴을 기록하고 재현해야 하는 것이다.
답을 먼저 공개한다. 힌트는 진동과 전기. 18세기 영국의 물리학자였던 패러데이는 전류와 자기의 변화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수학적으로 설명해냈다. 이는 자기장이 변하는 곳에 있는 도체에 전위차가 발생하는 현상으로 전자기 유도라 부른다. 그는 이를 이용해 발전기를 개발했고, 후세의 발명가들이 마이크를, 이를 응용해 스피커를 만들어낸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실험
철로 만들어진 고리에 절연 피복으로 감싼 두 개의 코일을 촘촘하게 감은 후, 코일 하나는 전지에 다른 코일 하나는 검류계에 연결했다. 코일이 전지에 연결되는 순간 전지와 연결되지 않은 다른 코일에 연결된 검류계의 바늘이 움직인다. 1차 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쇠고리에 자기장이 생성되고 이때 만들어진 자기력이 다른 코일에 전류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발생된 전류를 유도전류라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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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의 구조와 작동 원리
다이내믹 마이크는 얇은 알루미늄 코일에 연결되어 있는 가벼운 다이어프램과 영구자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파가 마이크에 도달하면 음압에 따라 다이어프램이 앞뒤로 움직이게 되고, 이 다이어프램과 연결된 코일이 함께 움직이면, 코일과 영구자석 사이에 자기장이 형성되어 코일에 전압이 발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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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의 구조와 작동 원리
스피커는 마이크와 반대로 작동한다. 진동판 주위에 감긴 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코일이 자석이 되고, 왼쪽의 영구자석과 코일 사이에 자기력이 작용하여 오른쪽의 진동판이 앞뒤로 움직여 공기 진동을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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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성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토키의 성공과 더불어 무성 영화 시대는 막을 내린다. 1928년 말 할리우드에는 사용가능한 녹음기가 16대 밖에 없었으나, 이듬해 말에는 116로 불어났고, 미국 내 2만 여개 극장의 과반수가 소리의 재생 시설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후 여러 종류의 사운드 체계가 통합되어 사운드의 표준이 확립되고 영상과 독자적으로 사운드 역시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다.
영화에 소리를 담을 수 있게 되면서, 영화 매체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으며, 배경음악 외에도 대사와 효과음 등 다양한 음향 기술이 개발된다.
영화 음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추후 다룰 예정이므로 영화 기술의 또 다른 영역을 살펴보자.
색과 와이드 스크린, 시각의 확장
독보적인 여가 매체로 승승장구하던 영화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1950년대 초. 정부의 통제와 스포츠 등 다른 여가 수단의 등장으로 영화의 흥행 수익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같은 영상 매체인 TV와의 경쟁이었다. 더 이상 흑백 무성영화로 영화만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된 제작사들은 빼앗긴 관객을 되찾기 위해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사운드의 도입에 이어 영화사 초기부터 존재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활용되지 않던 컬러와 와이드 스크린, 3-D 기술을 도입한 것이다. 3-D 기술이 진가를 발휘하기까지는 50년 이상이 남아있으므로 다른 두 가지 전략인 컬러 영화와 와이드 스크린 기술을 살펴보자.
입체영화 시스템이 보다 강한 깊이의 환상을 제공하고 흥미로운 미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당대의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와이드 스크린이 부가한 웅대함이었다. 필름과 영사기의 진보는 높은 해상도의 큰 화면 영사를 가능케 했고, 이런 전략은 현대에 IMAX의 활용으로 이어진다. TV가 가진 1.33:1의 종횡비를 넘어서 2.85:1의 거대한 시네라마(cinerama) 앞에 앉은 관객은 굉장한 넓이와 깊이의 시각 자극에 파묻혔다.
넓어진 화면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하이파이 스테레오 시스템도 개발되었다. 마그네틱 사운드 시스템을 사용해 훨씬 넓은 주파수 대역을 다루게 됨으로써 보다 사실음에 근접한 소리를 재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개의 마이크와 스피커는 소리가 영상을 따라가도록 만들었다. 이후 이어진 입체음향 기술은 따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한편 기술에 적합한 표현 양식에 대한 고민 없이 넓기만 한 시네라마 영화에 관객들은 싫증을 느꼈고, 20세기 폭스 사는 시네라마의 장점만 활용한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에 하이파이 4본 트랙 스테레오 사운드를 결합한 잘 만들어진 장편영화들로 흥행에 성공한다. 와이드 스크린의 표준으로 자리잡아가던 시네마스코프에 이어 파라마운트의 비스타비전이 등장하였다. 이를 위해 기존의 35mm 필름 대신 70mm 필름이 개발되었으며, 와이드 스크린은 영화 화면의 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풀 스코프는 2.35:1이며, 보다 작은 표준 와이드 스크린은 1.85:1의 종횡비를 가진다.
영상과 사운드의 표준이 확립되며 이 표준 안에서 다양한 표현양식이 발전하며 영화는 여전히 주된 여가매체로 살아남는다.
디지털과 컴퓨터 그래픽스(CG), 입체 영상과 입체 음향, 보다 생생한 상상의 재현
필름에 기록된 아날로그 신호를 영사하고, 재생하던 영화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시간 뿐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실감나게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필름을 돌려가며 실시간으로 필름을 자르고 붙이는 선형 편집(혹은 네거티브 편집) 대신 필름을 스캔해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 후(텔레시네라고 부른다), 편집 소프트웨어로 원하는 모든 영상 클립에 쉽게 접근해 편집이 용이해졌으며(비선형 편집), 미니어처나 특수 분장을 통해 만들어낸 상상 속 피조물들은 컴퓨터 그래픽스를 통해 정교한 모션 캡처와 피지컬 모델링으로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스크린에 담겼다. 평면의 스크린에 깊이감을 부여하는 입체 영상을 잘 활용한 <아바타 Avatar, 2009>는 역대 최고 수익을 거두었으며, 돌비 등 음향 업체들이 앞 다투어 개발한 입체 음향 기술이 극장을 찾도록 유혹한다. 현재 진행형인 이 기술들은 상세한 예시와 함께 차차 다룰 예정이다.
스크린을 넘어서
시네마천국 Cinema Paradiso 25주년 기념 공식 트레일러 https://youtu.be/stLekU5BnbI
영화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뜬금없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 것 같지만 바야흐로 영상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들은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가 유일한 영상 매체였던 시절이라면, 이미지와 소리를 담은 필름 속에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극장에서, TV로, 컴퓨터로,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로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는 요즘 물질적 그릇 속에 영화가 존재한다고 답할 수는 없다.
애초에 연속적이라고 생각했던 프레임의 흐름도 실제로는 불연속적이고, 스크린에 투사된 그림자 영상대신 실제로 말하는 것은 어딘가에 설치된 스피커이다.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은 우리의 뇌가 빚어낸 착각이 만든 백일몽일 수도 있다. 고대인들이 별을 보며 하던 몽상이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실재감을 가지며 유한한 현실을 확장한다.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이 기술적으로, 예술적으로 노력해 왔으며, 그 결실은 당신이 보는 짧은 영화에 남는다.
이 모든 내용을 알지 못해도 영화를 즐길 수 있지만, 스크린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한 번쯤 생각하며 영화를 본다면 더욱 알차게 영화 콘텐츠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영화의 속살을 보기 위한 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참고문헌
http://www.ieeeghn.org/wiki/index.php/The_Technology_of_Movies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film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film_technology
http://en.wikipedia.org/wiki/Timeline_of_photography_technology
http://www.institut-lumiere.org/
손영수, 손장용, “청감의 시각화를 통한 브랜드 네임 표현에 대한 연구(A study on method of the sense of hearing which for the brand name as the vision)”, 브랜드디자인학연구(KCI 등재), Vol.5, No.2, pp.171-185, 2007
Goeffrey Nowell-Smith, “The Oxford History of World Cinema”,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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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역시 예전에 써둔 수정전 원고입니다. 불펌하지 마세요. 다소 딱딱한 버전이라 일단 올리고 수정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