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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꿈의 메스 5화
게시물ID : readers_109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떠돌이참견꾼
추천 : 0
조회수 : 1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15 19:59:07
노년의 지혜보다는 빛바랜 욕구가 덕지덕지 지저분하게 묻어있는 것 같아 어딘지 거부감을 주는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대개 옆의 사람이 웃으면 따라 웃게 되는 것이 사람인데 여자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럼, 가볼게요."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에게 정중히 인사하고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떠나는 여자와 앉아있는 노인, 둘 중 그 누구도 이 짧았던 만남이 끝나는 것이 그리 아쉬워 보이진 않는다.
정녕 둘은 부녀 사이가 맞긴 한 걸까?


회장실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이 건물을 나서는 중에도 여자는 반복적으로 긴 호흡을 시도했다. 
어두운 낯빛으로 나온 그녀가 걱정되어 만복은 얼른 차 문을 열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마중 나갔다. 만복은 그녀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저 버겨운 발걸음의 그녀가 차 문에 근접할 때까지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기다리고는 정중히 문을 열었다.


차 문이 열렸을 때 기사는 몸을 잠시 부르르 떨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렵사리 모아놨던 차 안의 온기가 훌훌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여자가 차에 타고 문이 닫혔을 때 그는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 온기 속에서 바지주머니에 숨겨 놓았던 살짝 곯은 귤을 까 먹으며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다.


"허엉~"


그녀가 아직 폭신한 의자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도 못했을 때 만복은 그녀의 다음 스케줄을 위해 입을 열었다. 


"전수영 의원님 도서출판 기념회로.."


그때 여자는 손으로 만복의 입을 얼른 막으며 버럭 화를 냈다.


"아.. 좀 쉬지이?"


만복은 이에 질 세라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그녀의 손을 살짝 떼어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30분 후에요.. 지금 출발 안하면 늦는데.."


"오늘은.. 알잖아. 응?"


여자가 만복을 설득하기 위해 만복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고 말하는 바람에 만복은 순간 당황했다.


"어... 음... 근데! 3선 의원님이신데.. 괜찮겠어요?"


여자는 눈을 감고는 차 시트에 몸을 기대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몸으로 피력했다.


"3선이든, 4선이든, 지금은 아니라구.. 어차피 저녁에 고려호텔에서 당 회합도 있잖아."


더 이상 만복도 설득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하죠.. 어쨌든 오늘 안 간 거 수습 잘해요."


아직 행선지를 받지 못한 기사가 정확한 행선지를 묻기 위해 만복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개성에 온 김에.. 음.. 일단 정문동으로 가주세요. 거기서부턴 제가 방향을 말씀 드릴게요."


"네."


"아니 근데 기사님 귤 남은 거 없어요?"


"네?"


"귤.. 드셨잖아요."


"제가요?"


"... 은근 식탐 많으시네."


"에이.. 무슨 생사람을.. 아무튼 출.. 출발할게요."


기사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운전대를 잡고는 엑셀을 밟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완전히 귀신이네.. 암튼 돼지새끼.. 음식 냄새 하난 기가 막히게 잘 맡아요..' 


차가 출발하고 만복은 의자 밑에 놓아 둔 검은 봉다리에서 과자 봉지 하나를 주섬주섬 꺼내 들어 게걸스럽게 먹었다. 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만복이 먹는 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지도 먹을 거 있으면서.. 콘초코? 나도 저거 무지 좋아하는데.. 쩝..'


우걱우걱


여자를 태운 차는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도시를 빠져 나와 구불구불 좁은 산 길이 있는 곳까지 달렸다. 비포장도로에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마을이지만 길 양 옆으로 한옥집들이 정갈하게 지어있다. 
운전하던 기사가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만복에게 뜬금없이 질문했다.


"김 보좌관님, 근데 이 집들은 아직도 온돌 써요?"


만복은 검은 봉다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 찾으며 건성건성 대답했다.


"아.. 풉. 오해할 만 하죠. 누가 요새 온돌 쓰겠어요. 집 안에는 현대건물하고 그렇게 다른 거 없어요. 전통이죠. 옛날 사대부가의 자존심. 이런 마을들 많던데."


"아.."


"찾았다!"


만복이 500ml짜리 콜라 페트병 하나와 종이 컵 한 잔을 꺼내 들고는 종이 컵에 콜라를 따랐다. 그러고는 한껏 기대를 머금은 얼굴로 한 입 꿀꺽 마셨다. 종이컵 한잔에 담긴 검은 설탕물이 자취를 감추는 데는 오직 한 모금만이 필요했다.


"캬아~!"


의미 그대로의 청량감을 과시하는 목넘김 소리에 백미러를 통해 기사의 시선이 만복이 들고 있는 종이컵에 멈췄다. 


"저... 근데... 그 콜라..."


"에이~ 좀 더 빨리 말씀하시지! 콜라 한 잔 밖에 없었는데. 하하!"


"아... 쩝."
'참나 한 잔 밖에 없었으면 같이 먹을래요 하고 먼저 묻는 게 예의 아닌가..'


기사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만복이 말했다.


"아까 차 기사님도 귤 한 쪽 혼자 먹으셨으니까 저도 이번엔 용서해주세요~"


"네.. 아, 아니.. 근데 저 진짜 안 먹었어요!"


"네네."


운전대를 잡은 자신의 손톱에 주황색 물이 들은 줄도 모르고 기사는 자신이 귤을 혼자 몰래 먹었다는 사실을 연신 부인해댔다.


그렇게 10분을 더 내달려 차는 어느 이름모를 들판에 멈춰 섰다.
100년도 더 되어 보이는 소나무 한 그루와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그네 하나가 외로이 있는 곳이었다.
휘이잉 바람 소리와 함께 황금빛 잔디밭도 마치 생명을 얻은 듯 이리저리 춤춰댔다.
이곳은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 경사도 상당하기 때문에 온 마을이 단숨에 시야에 들어온다. 심지어 주위의 다른 마을들까지도 시력이 좋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천혜의 명당이라 할 만한 곳이다.


만복이 여자를 깨웠고, 그녀는 잠이 덜 깬 눈을 부스스 손으로 비벼댔다.
그녀의 길 잃은 동공은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다가 창가 쪽에 멈췄다.
그제서야 여자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러고는 말 없이 스스로 문을 열더니 다짜고짜 땅에 발을 디뎠다.
바람이 불어 추운 날씨였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그네 쪽으로 향했다. 검은 하이힐을 신은 그녀의 발엔 아직 녹지 않은 눈의 결정체들이 조금 까쓸하게 밟히는 것이 느껴졌다.


만복은 목도리와 모피코트를 챙기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 뒤늦게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고는 천천히 걷고 있는 그녀의 뒤로 재빨리 뛰어가 모피코트를 정성스레 입혀주고 목도리를 건넸다. 또 그녀가 무방비 상태로 의자에 앉기 전에 눈이 와 젖어버린 의자를 자신의 손수건과 소매를 이용해서 닦았다.


여자는 만복이 깔끔하게 닦아준 그네에 앉아 그 앞에 펼쳐져 있는 마을의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묵묵히 바라보았다.
햇살은 그녀를 태운 외로운 그네를 향하고 있었지만 커다란 소나무가 그것을 막아 실제로 그곳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뭐, 오늘 같은 추운 날씨엔 햇살도 나쁘지 않을 뻔 했지만 말이다.


"탁 트인 절경에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곳이죠.. 오랜만이시죠?"


만복이 한창 감상에 취해있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렇지 여기.. 그 날 이후로 올 수 없었으니까.."


...


"그때 그 소년은 지금쯤 어떻게 얼마나 컸을까?"


"하얀 가운을 입고 여기서 책을 읽던 그 분 말씀이십니까? 늘 말씀하셨던.."


"그래. 그립네. 내 유일한 친구였는데.. 왠지 그대로일 것만 같아."


그녀가 11살,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아버지를 따라 이 마을에 처음 오게 되었다. 이 마을은 송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추석을 맞아 종가집에 들르기 위해 찾게 되었다.
아는 친척도 붙임성도 없었기에 그녀는 차례를 지낸 후에 하릴없이 그저 시간만 홀로 축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또래아이들은 아는 아이들끼리 서로 얘기하고 노는데 바빴기 때문에 그녀는 어디에도 낄 틈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집을 나와 재미나게 놀 것을 찾아 마을을 헤매고 또 헤매었다. 
한껏 무르익은 황금빛 들녘에는 메뚜기가 많았다. 새끼 메뚜기의 푸르스름하면서도 통통한 몸집은 손에 꼭 잡으니 풀썩하고 튀어올라 어느 샌가 자취를 감추곤 했다.
그러다 이 언덕까지 오게 되었다. 그 곳에 소년이 있었다.


가을의 언덕은 바람이 가져온 오색의 단풍으로 빼어나게 수놓아져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것은 그녀에게 하나의 재미난 도전과도 같았다. 아직은 짧은 그녀의 다리가 욱신욱신 아파오곤 했다. 게다가 그녀의 다리는 유난히 얇기도 했으니까..
낑낑대며 힘겹게 언덕을 모두 오른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은 바로 소나무였다. 족히 그녀의 키의 50배는 됨직한 거대한 높이의 그것은 자신의 키만큼 위압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소년을 발견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소나무 밑 그늘 아래에서 소년은 책을 읽고 있었다. 소년이 입고 있던 옷은 하얀 가운이었는데 소년의 체형에 꼭 맞게 제작되어 있었다.
유별난 일.. 신령스러울만큼 거대한 소나무와 그 아래 책을 읽는 하얀 가운의 소년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그녀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만한 기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윤기 있는 검은 머리의 소년은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만 해 보였다.


소녀는 쭈그려 앉아 땅 밑의 개미들을 관찰하면서도 힐끗힐끗 관심 없는 듯이 소년을 훔쳐보았다. 하지만 소년은 소녀가 언덕에 올라왔을 때부터 시종일관 눈길 하나 보내지 않고 오롯이 책에만 열중해 있었다.
한결같은 소년의 무관심에 화가 난 소녀는 나뭇가지로 개미가 살고 있는 집을 무너뜨리고 개미들을 이리저리 툭툭 치는 등 애꿎은 그들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일생 동안 열심히 일만 해 온 개미들 입장에서는 베짱이는 놔두고 왜 저만 괴롭히냐고 호소를 해 댈 만 했다.


"헤헤헤"


한창 소녀가 개미놀이에 열중해 있을 때 하나의 커다란 그림자가 그 위에서 소녀를 덮쳤다. 소녀는 땅에 비친 그 큰 그림자에 놀라 뒤돌아 보았는데 그곳에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키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햇빛과의 마주함이 그렇게 큰 그림자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괴롭히지마. 개미들을 괴롭혀선 안돼."


소년은 딴에는 단호한 경고를 한 것이었지만 예상 밖으로 소녀는 조금의 겁도 먹지 않고 콧방귀만 끼었다. 역시 키가 조금이라도 더 큰 사람이 기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일까?


"칫, 뭐래."


소녀는 다시 개미놀이에 열중했다. 소년은 이제 그녀의 옆에 쭈그려앉아 손을 잡고는 나뭇가지를 빼 던져버렸다.


"내 말 무시하지마. 누구든 괴롭히면 안 되는 거야."


"야 씨, 한 대 맞을래? 이게 어디서 깝쳐."


툭!


소녀는 흥분한 나머지 조막만한 손으로 힘껏 주먹을 쥐어 소년의 머리를 콩하고 때렸다. 그러고는 멈칫하다가 미안한 마음이라도 들었는지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그.. 그러니까 왜 잘 놀고 있는데 건드리고.. 그래.."


별안간에 한 대 맞은 소년은 얼떨떨해하다가 끓어오르는 울음보를 참지 못하고 터뜨려버렸다.


"으아아앙!"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유난히 우렁찬 울음소리였다.
예상치 못한 소음공격을 받은 소녀는 귀를 두 손으로 꽉 틀어막았지만 공기가 통하는 모든 곳으로 날카로운 음파는 이리저리 잘도 피해 고막을 찔러댔다.


"아오 시끄러!! 조용히 안해!"


소녀는 너무 시끄러워서 더 이상의 소리를 멈춰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발로 소년의 허벅지를 밀어버렸다.
소년의 몸은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거짓말같이 울음소리도 뚝 끊겼다.
소녀는 그제서야 소년을 흘끗흘끗 쳐다보며 괜찮은가 하고 조심스레 동태를 살폈다. 소년은 웬일인지 미동도 없었다.


"괘... 괜찮아?"


소녀가 소년의 몸에 조심스럽게 손을 대었을 때 그 몸이 조금 부르르 떨리더니 2차 초음파 대공습이 시작되었다.


"끄아아아아앙아앙!!!"


1차가 일개 수류탄 급이었다면 2차는 가공할 만한 위력의 핵폭탄 급이었다. 소녀는 소년을 건드리는 것이 마치 벌집을 쑤셔대는 것처럼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고는 귀를 틀어막은 채 땅에 엎드려 소년의 울음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소년의 울음도 한바탕의 소란 후에 소나기 멈추듯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멎어 들었다.


“휴..”


소녀는 쓸데없이 이마에 맺혀버린 식은땀을 닦으며 뭐 이런 애가 다 있냐는 듯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가엔 아직 송골송골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눈이 머지않아 감기는 순간에는 맺혀있던 눈물들이 왈칵하고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이 위태로운 형상이었다. 


‘혹시 저것이 터져버리면 다시 울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소녀에겐 이것이 일촉즉발의 상황과도 같았다. 


‘어쩐다.. 도대체 이런 아이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거야!’



감사합니다.
17일에 오랜 휴재기를 마치고 새 에피소드(9화)를 업로드할 예정이나 오유엔 8화까지 하루하루 차근히 올리구 그 다음에 9화를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항상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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