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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일진들을 20여 년 후 만난 이야기
게시물ID : humorbest_10976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174
조회수 : 14907회
댓글수 : 5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7/21 16:45:01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7/21 15: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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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고등학교 시절 일진들에게서 벗어난 이야기는 예전 오유에 쓴 적이 있다.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12389
재작년 설날 고향을 찾아갔다가, 동창회 비슷한 모임을 한다고 해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을 때 이야기이다. 

지금은 까마득한 과거의 일인 것 같지만, 시골에서 약간 큰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 나는 그 학교의 일진 무리에게 단지 촌놈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짝꿍이었던 민뽀의 영향도 있었다.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집이 여관이었던 녀석은 학교에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 공급책이어서 민뽀라 불렸다. 학교 내 포르노 테이프 점유율은 약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훗날 김본좌 사건이 터졌을 때 
아마도 녀석이 김본좌라는 가명으로 활동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갈고 닦은 낫질 퍼포먼스 이후 일진들은 일단 예전처럼 심하게 나와 민뽀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똥개가 똥을 단번에 끊을 수 
없는 법, 한 두 번씩 우리를 괴롭히기는 했다. 그래도 별명이나 옷 못 입는 거로 놀리는 거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생긴 게 워낙 동남아 사람 같고 옷은 못 입는 게 맞았으니까... 그렇게 3년의 세월을 보내고 민뽀는 그 지역 대학으로 진학했고, 나는 서울 쪽의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민뽀와의 우정도 그리고 자연스레 녀석들과 인연은 끝이 나는 줄 알았다. 

이십 여년이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가끔 고향을 내려가기 전 민뽀와 연락을 하고 시간이 맞으면 만나기도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5년에 한 번 정도 만났던 것 같다. 재작년 명절을 앞두고 어김없이 민뽀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성성성성성성성, 설날에 내려오지?"

"응. 내려 갈 건데."

난 1년에 딱 2번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강한 귀소본능이 생기고는 한다. 

"이번에 우리 반 애들 한 번 모두 모이기로 했거든. 너도 꼭 와. 우리 가끔 술 마시다가 니 이야기 많이 하거든. 다들 너 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게 아니고 동남아 5개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온 미스터 통차이가  보고 싶은 거겠지..."

"아무튼, 꼭 와~ 그럼 너 오는 것으로 알고 있을게."

같은 반 친구들이 중년의 아저씨들로 변한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졸업 후 민뽀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을 거의 만난 적이 없어
모임에 나가기로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도시를 떠난 지 거의 이십여 년이 되어서 그런지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하교 후 민뽀와 달려가던 오락실 자리에는 피시방이, 주말 혼자 만화를 보던 만화방이 있던 건물 자리에는 큰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추억에 잠겨 '다들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모임이 있는 고깃집으로 찾아갔다. 

식당의 방에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스무 명 남짓한 아저씨 무리가 우글거리는 모습은 멀리서 봐도 우리 동창들 같았다. 
내가 들어서자 고기와 술을 마시고 있던 아저씨들 아니 친구들은
 
"와 성성이 왔다. 야 이거 몇 년 만이야!"
 
하며 마치 엊그제까지 함께 술 마시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해 줬다.
물론 나를 가장 반갑게 맞이해 준 것은 이미 술에 취해 양 볼에 연지 곤지 찍은 새신부 같은 민뽀였다.
나도 자리를 잡고 오랜만에 보는 녀석들과 술과 고기를 먹고 있었다. 저쪽에서 한 녀석이 술병을 들고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야 성성이~ 너 나 기억하냐?"
 
"아니, 너 누구지?"
 
사실 나를 괴롭혔던 녀석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
 
"나 **이, 기억 안 나? 내가 너 고등학교 때 힘들게 했잖아."
 
"아.. 너구나.."
 
녀석은 내 옆에 있던 민뽀를 밀어내고 내 옆에 앉아 술을 권했다.
 
"그래 너 서울에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뭐 하고 사냐?"
 
"그냥 출판사 다니고 있어."
 
"오!!! 지식인이네, 지식인! 하긴 너는 고등학교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먹물 뿌리는 일을 할 줄 알았지."
 
"너는 뭐하는데?"
 
"난 지금 작은 세탁소 하나 하고 있어. 너 여기 살았으면 내가 네 빨래는 평생 공짜로 해주는 데."
 
"왜. 돈 주고 해야지. 공짜로 해주냐.."
 
"내가 너 고등학교 때 많이 괴롭혔잖아. 다 크고 생각하니 미안하더라고 근데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거 밖에 없잖아. 하하핫."
 
"뭐.. 얼마나 네가 나를 괴롭혔다고, 그래도 나이 들어 철들어서 다행이다."

녀석은 그렇게 나와 술을 함께 마시며, 서로 사는 이야기 그리고 고등학교 때의 낫 사건 등을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녀석은 갑자기
 
"야 **아! 너 거기 있지 말고 이리 와봐. 서울에서 성성이 왔다!"
 
녀석이 부른 건 녀석과 함께 나를 괴롭혔던 일진 중 한 놈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넥타이까지 맨 녀석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내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오 허수아비!! 왔어!!!"
 
녀석은 덥석 뒤에서 나를 안았다. 순간 이 자식이 왜 이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녀석이 나를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야 너 왜 그동안 한 번도 안 내려왔냐. 우리 가끔 네 이야기도 하고 뭐 먹고 사나 생각 자주 했는데."
 
"그냥 살다 보니 바빠서 내려올 기회가 잘 안 생기네. 그래 넌 뭐 하고 사냐?"
 
"너 돈 필요하냐?"
 
대뜸 녀석은 내게 돈이 필요하냐며 물었다. 고등학교 때의 삐딱한 전공을 살려서 사채업에 뛰어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미 은행의 대출 노예라 더 빌릴 수도 없어."
 
"너라면 내가 확 땡겨줄께. 걱정하지 말고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 만해."
 
"괜찮아. 그런데 너 대부업 하나 보구나?"
 
"하하핫. 무슨 내가 그런. 그냥 새마을 금고 다녀. 올해 대출계로 옮겼다. 근데 아무도 나한테 대출 상담을 안 해."
 
'너라면 대부업의 대부같이 생긴 계약서보다 신체 포기 각서를 먼저 내밀 거 같이 생긴 너하고 대출문제를 상담하고 싶겠냐' 하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와이셔츠 사이로 삐져나오는 녀석의 근육인지 살덩이인지 모를 그것에 위축되어 차마 말을 하지는 못했다.
 
"야. 너 명함이나 한 장 줘라. 나중에 나 교육이나 일 생겨서 서울 가면 연락이나 하게."
 
명함이 없다고 하고 싶었지만, 명함을 주지 않으면 녀석이 또 뒤에서 목을 조를 것 같아 명함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 뒤 녀석들을 포함한 다른 녀석들과 함께 옛날 추억과 지금 하는 일들을 이야기하며 술을 마신뒤 자리를 끝냈다.
 
명절이 지난 후 서울로 돌아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떤 막무가내 아저씨의 전화가 왔다고 한다.
 
"내 친구가 성성2인데, 책 좀 사려고요."  라는 내용으로 전화한 아저씨는 돌고 돌아 나에게까지 전화가 돌려 왔다.
 
새마을 금고에 다니는 녀석이었다.
"성성아 내가 우리 지점 직원들에게 책 선물을 하려고 하는데, 네가 만든 책으로 한 스무 권 보내봐. 그리고 문자로 계좌번호 찍으면
내가 5분 안에 입금할게."
 
"**아. 그런데 지금 내가 만든 책이 철학책이어서, 직원들에게 선물하기는 좀 그럴 거 같은데, 그리고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철학책 딱이네! 딱이야! 우리 직원들 생각이 부족해. 창조성이 없어. 그리고 너한테 책 사야지 네 실적이 올라 회사에서 기피고 다닐 거 아냐."
 
녀석이 20권의 책을 사준다고 해서 회사에서 내가 기를 피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잊지 않고 연락해 준 녀석이 고마웠다.
결국 녀석에게 공자, 맹자 등 중국 고전을 내용으로 한 책 20권을 보내주었고, 며칠 뒤 녀석에게 좋은 책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엔 세탁소를 운영하는 친구 녀석이 전화해서 단골손님들에게 선물한다며 같은 책을 30권 사겠다고 했다.
 
"야.. **이는 20권 샀는데, 너도 20권 만 사는게.... 그리고 이 책 좀 어려운 책이라..."
 
"그 새끼가 20권 샀으니까, 나는 30권 사야지! 월급쟁이하고 회사 오너랑 같냐! 그리고 친구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
 
결국, 녀석은 단골손님 선물용으로 한글보다 한자가 많은 중국 고전을 30권 구매했다. 아마도 녀석은 전국에서 가장 지적인 세탁소 사장님으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지금까지 가끔 한 번씩 녀석들은 회사에 내 이름을 크게 외치며 책을 주문한다. 고마운 녀석들.
오랜만에 만난 그 날 녀석들과 이야기를 하며, 어린 시절 우리는 서로 친해지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시간 때 아령을 들고 삼두박근 이두박근을 따지던 녀석들은 이제 다리미로 근육 단련을 하고 고객들과 대화로 목젖의 근육을 단련시키며 
자신들의 삶 속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에 나도 녀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친구'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처 철 없는 고등학생에서 이제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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