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로 줄이면
이병도나 쓰다 소키치의 결론은 1줄로 하면
"조선사는 주체성이 없어 주변 민족의 지배와 간섭, 침략에 의해 전개되어왔다.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타율성에서 벗어나 발전한다"
쓰다 소키치나 스에마끼 야스카즈 등 황국사학을 신봉한 일본인 학자들이 전파한 식민사관의 핵심을
3가지로 쓰면
1.'일선동조론'으로, 일본 민족의 조상과 한민족의 조상은 애초에 하나였으니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
2.'만선사관'으로 한반도는 대륙에서 실패한 정치 세력이 옮겨 자리잡은 곳으로 만주와 하나로 묶어야만 역사나 문화가 체계화된다.
3.'정체성론'으로 한반도는 발전이 정체돼 있었고, 일본 때문에 고대적인 것에서 근대적인 것으로 도약했다.
이렇게되네요
1번은 이제 극복했지만 나머진흠..ㅡ
암튼 전 전에도 삭제된 글...에서 물어본것처럼
왜 이병도는 중국도 주장안한 만리장성끝자락이 한반도내 황해도에있다고 주장하는지...
밑도끝도없이 그것이 이병도가 주장했다고 무조건 옮다고 하는 분들...
이해가 안됩니다...
"독립 능력 없어"..문창극 통해 부활한 日 세뇌작업
[임기상의 역사산책 42]조선독립을 둘러싼 경성제대 교수들의 엇갈린 행보노컷뉴스 | 입력 2014.06.12. 10:57 | 수정 2014.06.12. 15:24
◈ 아직도 총독부 아래에 있는 경성제대의 후신 '서울대 국사학과'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있다가 연세대로 자리를 옮긴 민족사학자 김용섭 교수가 최근에 회고록을 펴냈다.
이 회고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분명치는 않은데 민족주의 역사학인가, 실증주의 역사학인가를 강의하는 시간 같은데, 교학부장 고윤석 교수를 포함한 네댓 명의 중년. 노년 교수가 내방했다. 노크를 하길래 문을 열었더니, 김원룡 교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제 때 경성제국대학에서 내가 배운 스에마끼 야스카즈 선생님인데, 김선생 강의를 참관하기 위해 모시고 왔어요. 김선생, 되겠지?"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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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섭 교수는 회고록에서 "식민사관 청산을 둘러싼 논쟁 때문에 서울대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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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마끼 야스카즈가 누구인가?그는 "고대부터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황국사관의 선봉장이었다.그는 대표작 < 임나흥망사 > 에서 "일본의 한반도 영유(임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의 자랑이며, 구한말 일본에 의한 조선 병합은 고대의 복현이다"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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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에는 또 동료였던 김철준 교수가 "김 선생 민족주의는 내 민족주의와 다른 것 같아"라고 얘기하는 장면과 "이병도 선생에 대해 무슨 글을 그렇게 써!"하고 질책하는 얘기도 나온다.
자기들의 스승인 대표적인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제자다운 처신이다.
한우근 교수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 선생~ 우리 민족사학 그만 하자"고 조롱하는 소리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급기야는 황국사관의 영수까지 모시고 와서 수업을 지켜보겠다는 것을 김용섭 교수는 '나가달라는 은밀한 압박'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김용섭 교수는 "여기 서울대 국사학과는 아직도 총독부 아래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서울대를 떠난다.
◈ 쓰다 소키치 등의 황국사관~이병도 등의 식민사학~서울대 국사학과~문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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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도 등 식민사학자들의 정신적 스승 쓰다 소키치. 수제자 이병도를 통해 뿌린 식민사관이 서울대 국사학과를 통해 전파됐다. |
쓰다 소키치나 스에마끼 야스카즈 등 황국사학을 신봉한 일본인 학자들이 전파한 식민사관의 핵심은 3가지다.
1.'일선동조론'으로, 일본 민족의 조상과 한민족의 조상은 애초에 하나였으니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
2.'만선사관'으로 한반도는 대륙에서 실패한 정치 세력이 옮겨 자리잡은 곳으로 만주와 하나로 묶어야만 역사나 문화가 체계화된다.
3.'정체성론'으로 한반도는 발전이 정체돼 있었고, 일본 때문에 고대적인 것에서 근대적인 것으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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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40610120004531 "우리 친일 사학자들이 독립유공자를 심사하겠습니다"
[임기상의 역사산책 41]친일파 신석호,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영화 누리다노컷뉴스 | 입력 2014.06.10. 12:00 | 수정 2014.06.10. 13:30
◈ 친일파 신석호, 이병도와 함께 독립유공자 심사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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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사관 확산에 광분했던 조선총독부 건물. 한민족의 맥을 끊기 위해 정문인 광화문을 앞으로 밀어내고 많은 궁궐의 건물을 허문 자리에 세웠다.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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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직후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 선생이 중국에서 저술한 < 한국통사 > 와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가 국내에 유입되자 일본총독부는 당황했다.이에 따라 부랴부랴 준비작업을 거쳐 1925년 조선사편수회를 발족했다.총독부가 노린 것은 한국인이 독립할 능력이 없는 민족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한국사 전체를 재조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한반도 남쪽은 일본의 식민지, 북쪽은 중국의 식민지로 출발했다는 허구를 도입했다.처음에는 일본인 학자들로만 출발한 조선사편수회에 경성제국대학을 갓 졸업한 식민사학자들이 한명씩 두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바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5명, 최남선. 이능화. 이병도. 신석호. 홍희 등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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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사학의 요람 경성제국대학의 전경. 조선사편수회의 손과 발 역할을 할 친일사학자를 꾸준히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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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도 1929년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선배 이병도를 따라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갔다.거기서 열심히 충성을 다한 결과로 촉탁에서 시작해 1930년 수사관보, 1937년 수사관으로 착실히 승진했다.황국사관 학자들과 식민사학자들은 드디어 1938년 < 조선사 > 총 35권을 완간했다.이 방대한 저서의 골자는 간단하다."조선사는 주체성이 없어 주변 민족의 지배와 간섭, 침략에 의해 전개되어왔다.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타율성에서 벗어나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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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과 함께 고물상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우리 교과서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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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패망과 함께 이 역사관은 용도폐기되고, 조선사편수회에 가담한 친일파는 다 처단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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