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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탄 프로젝트 - vuelvo al sur, difer..
게시물ID : music_1097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올라쿠바
추천 : 4
조회수 : 21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10 20:23:18
 
라보카.jpg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흔히 볼수있는 에바페론, 마라도나, 카를로스 가르델(국민탱고가수)의 조형물*
 
 
20세기초, 부웨노스 아이레스..가난한 부둣가 라보카 지역에서 피어오른 탱고..
가난한 이들의 선술집, 홍등가에서 피어난 이 음악을 아르헨티나의 부자들은 탐탁찮게 여겼다고 합니다.
처음에 탱고가 피어올랐을때, 탱고는 라보카 지역, 가난한 이들의 음악일 뿐이었습니다.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당시, 라보카 부두를 통해 우연한 기회에 탱고는 프랑스에 소개되었습니다.
외래문물의 수입에 적극적이었고, 문화개방에도 호의적이었던 프랑스의 지식인, 귀족들은 아르헨티나에서넘어온 이 독특한 음악에 호감을 가졌고,
탱고는 프랑스 귀족들의 연회장에서 가난한 누더기를 벗고 좀 더 틀을 갖추고, 풍성한 모습을 한채 자라납니다.
 
프랑스의 탱고는 다시 아르헨티나로 소개되었죠.
가난한 이들의 음악이라고 배척당하고 무시됐던 탱고는..파리에서 귀족들의 친구가 되어 아르헨티나로 금의환향 합니다.
프랑스 귀족풍의 문화에 사족을 못쓰던 아르헨티나 부유층들은 금의환향한 탱고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게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국민음악으로 자리잡아 갑니다.
 
어쨌든 탱고는 가난한 이들, 고향을 떠날수 밖에 없었던 외로운 이들의 음악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겐 어머니로, 부자들에겐 창녀로 불렸던 아르헨티나의 어머니 '에바페론(에비타)'과 페론의 집권시절에 탱고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페론정부 이후 군부독재가 시작된후 탱고역시 침체기를 맞기도 합니다.
에비타가 세상을 떠날때..아르헨티나 전역에서는 탱고 음악이 흘러나왔고..사람들은 부둥켜안고 흐느끼며 탱고를 췄다는군요.
 
음악은 프랑스출신과 아르헨티나출신이 함께 구성된, 현대프랑스탱고를 대표하는 고탄프로젝트의 음악입니다.고탄프로젝트는 전통탱고와 누에보탱고(피아졸라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탱고)를 지나 누에보탱고에 일렉트로닉스를 더하고, 누에보탱고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탱고3.0 을 주창하는, 아르헨티나의 바호폰도탱고클럽과 함께 일렉트로닉탱고를 대표하는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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