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용수비대(獨島義勇守備隊)는 1950년대에 독도를 수비하기 위해 결성된 민간의용대이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활동하였다. 울릉도 동남쪽 87.4Km에 있는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에 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이 자주 와서 한국 표지판을 없애고 일본 표지판을 세우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자, 을릉도의 주민은 대책을 세우기에 바뻤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아직 한국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군이나 경찰에서 도와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던 을릉도민들이 홍순칠 대장을 중심으로 하여 33명의 대원이 모여 1953년 의용군인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게 되었다. 대부분이 상이군인이나 경찰관이었지만, 순민간인 4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1953년 4월 20일 : 독도 수비대가 2진에 걸쳐서 독도에 상륙했다. 1953년 6월 27일 : 일본의 순시선 2척이 상륙하고 6명 수비 대원을 섬으로부터 내쫓아, 일본령이라는 표지를 세웠다.그러나, 순시선은 그대로 철수했고, 의용 수비대가 다시 섬에 돌아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경상북도 경찰에 지시해 박격포 1문과 총알 100발을 의용대에게 지급시켰다. 1953년 7월 12일 : 독도 수비대가 일본 해상 보안청 소속 순시선PS9함을 경기관총으로 공격 1954년 4월 21일 : 일본 순시선 공격 1954년 8월 23일 : 일본 순시선 공격 1954년 11월 21일 : 1000t급일본 순시선 항공기1대공격 일본 16명 사상자 발생 1954년 11월 30일 : 일본 순시선 공격 1956년 12월 25일 : 독도의 수비를 경찰에 넘기고 해산
독도의용수비대 생존대원의 모임인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는 33명과 3년8개월의 활동기간이 왜곡되었다며 진실규명활동을 하고있다. 1950년대 울릉경찰서에 근무했던 전직 경찰관들도 홍순칠 대장이 독도경비사를 개인사 위주로 왜곡하였다면 진실규명활동을 하고있다. 2007년 4월 감사원은 국가보훈처가 1996년 서훈당시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33명에 대한 공적재조사 결정을 하였다.[출처 필요]
홍순칠 대장의 수기는 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에 참전중이던 대원들이 1953년 4월에 독도에 입도하고, 1953년 7월에 창설된 민병대를 1952년의 사실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1956년 12월 31일자로 울릉경찰서 경찰관으로 특채되며 독도의용수비대는 해체되었는데, 55년부터 56년까지 2년동안 민간인이 자신이 경찰관과 무기를 지휘감독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독도의용수비대 활동기간 3년 8개월은 홍순칠과 가짜대원의 주장일뿐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3년 8개월이 불가능하다는 근거는 경찰청 인사기록, 국방부 병적기록, 외무부 비밀해제 문서등에서 확인되고 있다.[출처 필요]
1954년 5월 20일 : 이후 독도 첫 입도[2] 1954년 12월 25일 : 독도의 수비를 경찰에 넘기고 해산[3]
홍순칠 출생 1929년 1월 23일 대한민국 사망 1986년 2월 7일 대한민국 사인 지병으로 인한 별세 거주지 대한민국 국적 대한민국 직업 군인,독도의용수비대 대장
홍순칠(1929년 1월 23일 ~ 1986년 2월 7일)은 민간의용대였던 독도의용수비대의 대장이었다.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기 전까지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독도를 지키기 위해 1953년 4월 20일에 만들어진 독도의용수비대는 3년여 동안 독도를 지킨 뒤, 1956년 12월 25일 독도의 수비를 대한민국 경찰에 넘겼다. 해산한 뒤에도 꾸준히 독도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홍순칠은 1986년 2월 7일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홍순칠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에게 독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승만은 거절하였다. 이후 1953년 4월 20일에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여 일본군과 싸우는 등 3년여 동안 독도를 지켜왔다.
홍순칠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중앙정보부는 그를 고문하면서 '독도에 대해 더 이상 입을 놀리면 좋지 않다'며 '다시는 독도를 우리땅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말라'고 협박했다. 그리고 다시는 글을 못 쓰도록 만들겠다고 오른손을 부러뜨렸다. 1974년 12월의 일이었다. 80년대 초, 정부는 그가 북한 방송에서 소개되었다는 이유로 홍순칠을 다시 고문하였고 1986년 고문후유증으로 숨졌다. 2005년 열린우리당 전병헌 의원 등이 특별법을 제정하여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다. 또한 홍순칠을 비롯한 독도의용수비대의 다른 유공자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게 되었고 지원금도 받게 되었다.
지금 명박이 후장 빨고있는 연합뉴스 기사 인용 http://media.daum.net/press/view.html?cateid=1065&newsid=20060503172315246&p=yonhappr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다. 역사는 미래를 반영한다. 그들은 자국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독도를 팔아넘기는데 방해되는 인물까지 이렇게 해를 끼쳤다. 지금도 한국은, 지금도 그러는 그들의 보살핌(?) 속에서 살고 있다. 지하에 계시는 투사, 의사, 그리고 나라를 지켰던 모든 위인들에게 면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