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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인 친구 이야기
게시물ID : humorbest_10986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105
조회수 : 7464회
댓글수 : 5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7/23 16:12:25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7/23 14: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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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내 친구는 노안이다.
신입생 때 녀석을 처음 봤을 때 이건 재수, 삼수 개념이 아니고 갑오경장 때 태어나신 분이 대학에 입학한 줄 알았다.
오리엔테이션 때 주목을 받던 인물은 동남아 혼혈일 것이라 의심받던 나와, 조선 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외모의 녀석이었다.
선배들이 오리엔테이션에서 녀석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저기 혹시 올해 연세가?"
 
"올해 19살인데요. 제가 빠른 생일이라."
 
심지어 녀석은 우리보다 한 살 어렸다. 주변에서 그 말을 들은 선배들은 믿을 수 없다며 불심검문에 나서는 경찰처럼 녀석에게 신분증을 요구했고
신분증에는 아들의 교복을 입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아버지 모습의 녀석이 있었다.
주목받는 인물끼리 친해진다더니 녀석과 나는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너 교복 입고 성인나이트 앞에서 잡혀 본 적 있어?"
 
"당연히 없지. 난 외국인이라고 생각해서 안 잡았을거야. 아마."
 
"난 있어. 고2 때 한국관 앞에서 모르는 아저씨들 옆에 서 있는데, 삐끼가 오더니 나를 잡더라고 일행인 줄 알고."
 
"나는 서울에서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저기요~!" 라고 안 하고 '익스큐즈미~'라고 해."
 
우리는 그날 서로를 부둥켜안고 '너는 늙지 않았어. 단지 남들보다 조금 나이에 비해 연륜 있어 보일 뿐이야.",
"너는 한국인이야. 단지 입술이 남들보다 조금 두껍고 피부가 구릿빛일 뿐이야." 라며 서로를 위로 했다.
그리고 녀석의 집에 놀러 가서 방에 걸린 유치원 졸업사진을 본 뒤, '어떻게 7살 아이의 얼굴에서 술과 담배 그리고 피곤함에 절은 40대 월급쟁이
김 과장의 얼굴이 나올 수 있지' 라고 생각하며 녀석은 분명 시공을 초월한 뱀파이어 또는 못생긴 키아누 리브스라고 생각했다.
 
녀석은 노안이라는 콤플렉스 극복을 위해 항상 최신 유행하는 옷과 헤어 스타일을 했다. 하지만 주변 반응은 아들의 힙합바지를 몰래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평이었다. 오히려 녀석이 점잖게 정장을 입은 날 나이답게 옷을 입었다며 호평을 받고는 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별명도 이등병 때는 김상사, 그리고 제대할 때는 주임원사였다.
 
제대 후 녀석과 함께 2대2 미팅을 나간 적이 있다. 원래 녀석의 파트너는 내가 아니었는데, 함께 나가기로 한 파트너가 법정 전염병인 풍진에 걸려
사람을 찾고 찾다가 자취방에서 할 일 없이'6시 내 고향'을 보고 있던 내가 대타로 나가게 되었다. 그날 주선자 녀석은 핵폭탄 2기를 앞세우고
소개팅 자리에 나가는 김정은 같았다. 다행히도 그날 뵌 여성 분들의 매너는 아주 좋았다.
우리는 치명적 단점인 외모를 이용해 분위기를 리드했다.
 
"안녕하쎄요. 똥남아에서 온 똥짜이 씨 임미다. 한꾹사람 예뻐요. 아주 예뻐요. 감쏴합니다." 내가 먼저 동남아 외모를 이용해 선방을 날렸다.
 
녀석도 지지 않고 외모를 이용해 여성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아.. 저는 사실 **이 애비되는 사람인데, **이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제가 58년 왕십리에서 태어난 58년 개띠입니다. 허허허"
 
그날 커피숍부터 간단하게 맥주 한 잔 마실 때까지 그날 밤 우리의 외모를 이용한 자학 개그는 계속됐다.
아들을 대신해 나온 아버지와 동남아 유학생의 머릿속에 '로맨틱', '성공적' 이라는 단어를 되뇌며 헤어질 때 전화번호를 주고받았지만,
그 뒤 그녀와 통화할 기회는 없었다.
그녀는 아마 그 이후로 이성에 대한 관심을 끊고 독하게 학업에 전념해 아마 좋은 직장에 취직했을 거라 생각된다.
두 여성의 인생을 긍정적 방향으로 인도했다는 생각에 지금도 뿌듯하다.
아니면 그날의 충격으로 속세의 미련을 벗어버리고 비구니가 되었을 수도....
 
그리고 우리는 며칠 뒤 매너 좋은 여성분들에게 안구 테러를 저지른 대가인지 둘 다 법정 전염병인 풍진에 걸려 세상에 격리되었다.
 
최근 40대를 앞둔 녀석은 드디어 외모가 자기 나이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얼마 전 녀석과 함께 술을 마시다 핸드폰 케이스에 끼워진
녀석의 운전면허증 사진을 봤다.
 
"야.. 너 설마 면허증 사진 뽀샵했냐?"
 
"아니 그런걸 왜 해. 그냥 사진관에서 해준 대로 한 거야."
 
2살 정도 어려 보이는 사진은 뽀샵질 한게 분명했다. 하지만 녀석은 끝까지 아니라고 발뺌했지만  2살 정도 어려 보인다고 하니
녀석은 기뻐하고 있었다. 아마도 인생에서 처음 듣는 말이 아니었을까. 물론 녀석도 내게
 
"너 요즘 한국사람 같이 보여서 큰일이다. 너만의 개성이 없어지는 느낌이야." 라고 칭찬해줬다.
 
이거 기분 나빠야 되는데 왜 기분이 좋은거지...
 
 
 
출처 남들보다 20년 앞서가는 외모를 가진 친구 이야기입니다.

어리다고 놀리지 마세요.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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