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군대에서 끄적인 글들
게시물ID : freeboard_10992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쫓는개
추천 : 2
조회수 : 16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0/11 10:38:03

전역을 5개월 남기고 있는 군인입니다... 

휴가 나와도 만날 친구도 없고, 갈이 놀 사람도 없어서 그냥 군대에서 썼던 글이나 올려봅니다. 

 

짧은 문장도 있고, 그냥 조금 긴 글도 있습니다. 

------------------------------------------------------------------------------------

 

- 순수한 것들은 대개 목적이 없다. 

 

- 배운 자들에게서 못 배운 티가 나고, 못 배운자들에게서 또 하나를 배운다. 

 

- 언제까지 주기만 하다 끌날까. 나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늘 엇나간다. 사람 만나는 건 진짜로 힘들다. 

 

- 머릿 속은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더 많다. 나이를 먹는다고 느낌표가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 아무 것에도 슬퍼할 수 없는 순간이 가끔 있다. 그렇게 구슬프던 음악도, 감동적인 영화도, 그냥 들리는 소리고 빛이다. 

아무 것도 슬퍼할 수 없는 그 순간이, 가장 슬프다. 

 

- TV 속의 가볍고 발칙한 연애 감정들이 브라운관을 뚫고 나오지만, 내 방의 축축한 공기를 머금고 가라앉더니 이내 내 발 앞에 쿵 떨어진다. 
결국 닿는 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관계의 무게다. 내게 관계는, 너무 무겁다. 나는 무게를 견딜 힘이 없다. 

 

- '할 게 없다'는 순간이 가장 두렵다. 도저히 할 게 없어서 텅 빈 침대에 누워 있노라면,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일어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어떤 학자가 '인간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것은 원초적인 '백색 공포'에서 기인한 것이다' 라고 주장했었다고 한다. 
내 두려움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시간이란 붓에다 아무 것도 칠하지 않은 체로 하루라는 캔버스를 훑고 지나 갔을 때, 
그 텅 빈 캔버스가 나를 미치게 한다. 


------------------------------------------------------------------------------------


 

<열등감>

나에겐 열등감이란 감정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너무나도 뜨겁다항상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어쩌면 TV 속의 너무나도 잘 나가는수려한 외모에 명석한 두뇌까지 겸비한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이를 앙다물었던 것은 

끓어오르는 열등감의 증기를 참아내느라 어쩔 수 없이 해야했던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열등감을 쉬쉬하고 덮어두려는 짓은 하지 않는다

무엇으로 덮어두던 간에열등감은 결국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열등감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그것이 너무 뜨거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뜨겁게 타오르는 데도 정작 게으름과 나태함을 뜨겁게 달궈놓는 데에는 써먹을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 뜨거운 원동력이 날 움직였다면과연 내가 지금 방에 몇 시간째 붙여놓고 있는 이 궁둥이를 

오늘 하루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었을까?

책장에 고이 잠든 저 두툼한 책들이 여전히 해가 중천인 줄도 모르고 잠잘 수 있었을까

 

열등감은 문제가 아니다아무 것도 태우지 못하고 열등감이 사라지는 것이 진짜 문제다

 

 

 

<외로움>

고작 눈물 한 번 시원하게 흘려버리는 것 가지고는 외로움에서 해방될 수 없다

외로움은 눈물에 섞일만큼 옅고 묽지 않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끈적끈적하고그러면서도 메말라서 쩍쩍 갈라진다

그 쩍쩍 갈라진 빈틈의 공허함에서 다시 외로움은 피어나고피어난 외로움은 자신을 녹이려던 눈물까지 빨아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외로운 사람들은 눈물조차 흘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눈물 흘릴 수있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만 봐야할 뿐이다

그 누구도 그들을 눈물 흘리게 할만큼 촉촉하게 적셔줄 수가 없으니까

 

정말이지오늘도 외롭다

 

 

<자기혐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서부터나는 늘 나를 괴롭히는 자기혐오에 시달려야 했다

도대체 거울 속에 저 인간은 누굴까누구길래 저렇게 볼품없는 꼬락서니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걸까

그러다가 내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도 저렇게 비춰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가슴 한편에서 소용돌이가 일면서 나 자신을 몽땅 삼켜버리는 듯했다

정말로 나 같은 인간을 누가 사랑해줄 수 있다는 걸까어떻게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용기 있는 자만이 사랑을 쟁취한다.맞는 말이다용기가 있어야 사랑을 얻는다그런데 용기는 어떻게 얻는 건데

사랑을 쟁취한 자들은 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나에게 그저 이 악물고 용기를 내보라는 식의 말들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서 숨을 헐떡거리며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이미 용기가 있는 자들은 늪 밖의 땅을 밟고서 사랑하는 연인을 제 팔에 두른 채, 

용기를 내보라며 씨익 미소를 보이고는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를 맡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을 경멸의 눈으로 노려보다가이내 깊이깊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내가 그들에게 품는 적의와 내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내 안에 내재된 자기 사랑을 확인할 수 있지는 않을까?

모든 좌절과 실패를 나의 비루함과 모자람의 탓으로 돌리는 세상에다가 그렇게도 증오를 느꼈던 것은,

사실 내 상처를 덮어주고 막아주려는내가 가진 나르시즘의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한 맥 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어쩌면 내가 가진 나의 도려내고픈 결점들을

누군가가 채워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조그마한 희망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마다 겪는 속절없는 상사병은

자기혐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내 자아의 성장통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내가 볼품없는 찌질이든 땅딸보에 성격파탄자이든

결국 그런 내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내 자신에게 살아갈 또 한 번의 기회를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기회를 잡는 순간 '다음 기회에라는 메시지를 받게 될 지도 모르지만다음 기회조차 기대하지 않는다면 

나는 머지않아 자기혐오의 늪에서 등가죽을 하늘로 향한 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지도 모른다

 

 

------------------------------------------------------------------------------------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