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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메스 6화
게시물ID : readers_109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떠돌이참견꾼
추천 : 0
조회수 : 24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16 19:37:55
소년의 눈가엔 아직 송골송골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눈이 머지않아 감기는 순간에는 맺혀있던 눈물들이 왈칵하고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이 위태로운 형상이었다. 


‘혹시 저것이 터져버리면 다시 울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소녀에겐 이것이 일촉즉발의 상황과도 같았다. 


‘어쩐다.. 도대체 이런 아이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거야!’


소녀는 고민하다가 한가지 흔하고 보편적인 고육지책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소년을 달래는 것이었다.


"아~ 착하다. 누나 말 잘 듣네. 그래 착하지~"


머리를 쓰다듬고 다정스럽게 눈을 마주치니 소년도 금새 평온을 되찾는 기색이었다. 소녀의 방법이라는 것이 어린 애들이라기 보다는 길거리 똥강아지들을 상대하기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말고는 모든 상황전개는 소녀의 계산대로 완벽했다. 


'역시 애는 애구나.. 훗, 네가 별 수 있겠어?'


"우리 애기 이름이 뭐야?"


"나 애기 아니야. 난 이현이야."


"이현? 송씨가 아니네? 음.. 여긴 어떻게 하다 오게 된거니?"


"몰라."


'하긴 어린애가 그걸 알리가 없지.. 부모가 이곳에 볼 일이 있었나 보군. 그나저나 외자 이름은 정말 오랜만이네..'


"누나 이름은 뭔데?"


"아! 내 소개를 안했구나~ 난 송은주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소녀가 자기 소개를 하며 환하게 웃자 소년의 얼굴은 웬일인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소녀도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색이었다. 


'애들은 참 솔직하구나. 금방금방 눈에 딱딱 보이고.. 우리 부모님이 나를 볼 때도 이런 느낌일까? 그나저나.. 자식 귀엽네.'


"난 명절 때마다 이곳에 와. 누난 여기 살어?"


"아니 난 여기 처음이야. 나는 종가집 찾아 온 거야."


"그럼 어디 살어? 서울? 평양?"


"아.. 개성에 살긴 하는데 이 마을은 처음이란 뜻이야. 근데 난 이렇게 오래된 건물들이 있는 곳은 처음 봤네.."


"오래된 건물? 음.. 이거 오래된 건물들이구나.."


"넌 어디 사니?"


"난 서울 살어. 여기까지 한 두시간은 걸렸어."


"그렇구나~ 지루했겠네.. 뭐 하면서 왔어?"


은주는 현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말꼬리를 늘이며 물었다. 물론 누가봐도 상냥하다 말할 미소도 가미했다.


'아, 애들이랑 놀아주기 참 힘들다..'


"그냥 책 읽으면서 왔어. 난 심심할 땐 책 읽어."


"맞다! 너 아까 나무 아래에서도 책을 읽고 있었지. 그거 무슨 책이야? 꽤 두껍던데.."


"아 그거? 잠깐만!"


현은 잽싸게 나무로 달려가 읽던 책을 두 손에 들고는 다시 은주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책은 현이 들기 조금 버거워 보일 정도로 꽤 무거워 보였다.


"에?"


현이 들고 온 책은 영어와 온갖 인체그림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책이래.."


"아 누나 영어 못하는구나? 'Principles of Anatomy and Physiology'라고 사람 몸에 대해서, 그리고 그 몸에서 일어나는 event들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야."


"헐.. 네가 이걸 읽는다고? 이해해?"


"전부 이해하는 건 아니야. 그냥 재밌어서 보는 거지. 심심할 때 이거 읽으면 시간이 금방 가."


"심심할 때 이걸 읽는다고?"


'난 심심할 때 자는데.. 이 녀석.. 설마 천..재?'


"영어 못하는 건 죄가 아니야. 그니까 너무 자존심 상해하지 마."


"야.. 야! 누가 자존심 상했다고 그러냐. 암튼 너 그거 알어? 이 책 나무로 만든거다! 이렇게 두꺼운 책이면 나무 한 그루는 통째로 들어갔겠네. 나무를 막 톱질해가지고 이렇게 슥슥 아주 그냥 가지를 짤라버리고! 음.. 또.. 암튼 나무가 엄~청 괴로웠을.."


은주는 흥분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현이 또 다시 수상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 얘 또 울라 그러네? 으.. 으악!'


은주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귀를 꼬옥 틀어막았다. 그리고 곧 있을 3차 공습을 겸허히 기다렸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에 식은 땀이 다 날 정도였다. 그정도로 현의 소리통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이때 현실의 은주는 오랜 추억의 터널 속에서 막 빠져나왔다. 하필이면 그때의 그녀처럼 눈을 감고 귀를 막은 그 상태로.


"의.. 의원님?"


마을의 전경을 감상에 젖은 듯 찬찬히 바라보고 있다가 갑작스레 이상행동을 취하는 여자가 당황스러워 만복이 은주의 어깨에 손을 대며 물었다. 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스레 눈을 뜨고 귀를 막았던 손을 풀고는 그네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아... 아웅~ 좋네. 오.. 오랜만에 여기 오니까. 하하.. 하하.."


"의원님이 웃으시니까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네요. 자 이제 가실까요? 지금쯤 출발하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은데"


"그래.."


은주는 이곳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말끝을 흐렸다. 만복은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 이곳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당 회합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자리였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도 무시한 체 할 수 밖에 없었다. 만복과 은주 모두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이내 차는 어김없이 출발했고, 머잖아 서울에 위치한 고려호텔에 도착했다. 여의도에 위치한 고려호텔은 대한민국 최고의 호텔 중 하나로써 정치인들의 만남 장소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얼마전 있었던 G20 정상회담도 이곳에서 열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야 찍어찍어! 송은주 의원이다."


"우와.. 그나저나 오늘 대박인데? 고려그룹은 물론이고, 진성그룹, 신라그룹, 태산그룹 임원들이 다 모였네."


"그 뿐인 줄 아냐.. 폴&맥 파이낸스 같은 외국계 기업 임원들도 꽤 많이 참석했어. 이 정도 규모면 여기서 제일 큰 방 잡았다는 소린데.."


"아니 자민당이 언제 이렇게 커졌지? 기껏해야 메이저리그 벤치급에 불과한 정당인데.."


"어이 초짜들. 보면 모르겠어? 자민당이 곧 정권을 잡는다는 징후지 뭐야. 괜히 쟤네들이 냄새맡고 줄 서러 왔겠냐?"


가죽자켓에 담배를 꼬나물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던 한 기자가 파릇파릇한 후배 기자들의 만담에 끼어들며 말했다. 그가 입을 열자 그의 얼굴에 지저분하게 나있는 까끌까끌한 갈색빛의 수염도 함께 요동치듯 움직였다. 그의 얼굴 1/3 정도를 아마존 숲마냥 수염이 뒤덮고 있었다.


"에이.. 선배님 설마요! 대한민국에서 우파들은 아직 정권 잡은 역사도 없는데.. 거기다 우파 중에서도 2인자에 불과한 자민당이 정권을 잡는다구요?"


"쯧쯧쯧, 네 머리로 세상의 모든 일이 해석되진 않는다 애송아. 자민당 꼬리 쫓아 다니면서 뉴스 거리 한 줄이라도 더 찾으려 고군분투하는게 앞으로의 네 신상에 좋을거다. 봐, 내 말이 틀렸나." 


"선배님 그러지 마시고..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대한독립당 뉴스거리 독점하시려고 지금 수 쓰시는 거죠?"


"에휴. 듣기 싫음 말아라 이 놈아. 선배가 충고를 해줘도 못 알아 먹어요.. 사진이나 찍자."


그의 사진기엔 '노튼통신'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고려호텔 앞에는 자민당의 당 회합 소식을 미리 알고 몰려든 기자들로 매우 혼잡했다. 하지만 오늘 모임은 비공개로 진행되는 터라 호텔 직원들이 기자들을 일정 반경 밖으로 힘겹게 밀어내고 있었다. 고려호텔로 향하는 검은 중대형 세단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고 이 현장을 호텔 주위에 진치고 있는 기자들과 호텔 부근 다른 건물들의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 포착했다. 사진에 찍힌 번호판을 통해 기자들은 기사로 누가 이 모임에 참석했는지 일일히 언급할 터였다. 물론 자민당의 회합이기 때문에 자민당 의원들이 참석했음이 분명하지만 기자들은 기사의 분량을 늘이기 위해 당연한 얘기도 얼마든지 뻔뻔하게 떠들어 댈 수 있는 강력한 철판을 얼굴에 소지하고 있었다. 또 이런 비공식 회합에는 당과 관련없는 줄 알았던 뜻밖의 인물들의 등장이 포착되기도 하는데 이런 행운의 대어를 낚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통제된 호텔 지하 주차장에 한 차가 멈춰섰고 만복과 은주가 그 차에서 내렸다. 만복이 언제나처럼 은주의 정갈한 복장을 위해 그녀의 요란스러운 모피코트와 귀걸이를 빠짐없이 받아 챙겼다.


"아우, 진짜 마음에 안들어. 도대체 사람들은 남의 패션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거야. 짜증나 죽겠네. 아니 내가 뭘 입던 그게 뭔 상관이야. 지들한테."


고려호텔에서 가장 높은 층수인 33층 Grand Ball Room 대문 위에는 '축) 자민당 2013 송년회'라고 적힌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여러명의 보디가드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고 고려호텔의 사장과 그의 비서가 문 앞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인사했다. 은주와 만복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고려호텔의 사장은 반색하며 은주를 반갑게 맞았다.


"아이구, 우리 송의원 왔어?"


"네 금 사장님 오랜만이시네요. 그간 무탈하셨죠?"


"물론이지. 회장님께서는 건강 괜찮고?"


"아버지는 언제나 정정하시죠."


"그래 들어가 봐. 최고로 준비했으니까 기대하고!"


은주는 그와의 짧은 인사를 끝으로 회합 장소에 들어섰다. 만복은 은주의 뒷 모습을 향해 허리굽혀 인사하고는 담배 한 대 피기 위해 호텔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발코니를 향해 갔다. 그곳에는 룸에 들어가지 못하는 많은 수의 보좌관들과 비서들이 담배꽁초를 물며 한가롭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회합장소에서 은주는 여러 의원들 그리고 각계 고위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룸에는 여러개의 원형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각 자리엔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룸 한 가운데엔 얼음으로 조각된 날개 펼친 호랑이 상이 있었다. 날개 달린 호랑이는 자민당의 상징이다. 룸 전체가 사람들의 웃음과 얘기 소리로 한창 가득할 때 한 사람이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마이크테스트 원 투 쓰리, 아아."


모두가 그를 주목했고 그는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한동안의 혼잡했던 분위기는 일순간에 온데간데 없이 정리되었다. 


"안녕하세요. 자민당 2013 송년회에 참석하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행사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는 배꼽에 손을 올리고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고 참석자들은 교양있게 박수를 쳤다.


"저는 이번 행사 사회자를 맡게 된 자민당 초선의원 유인혁이라고 합니다. 요즘 안녕들하시죠? 
2013년, 저희 자민당에게 아주 뜻 깊은 한 해였습니다.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 많은 국민 여러분들의 지지로 의회에서 무려 30석을 차지하고 또 이를 무사히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국민 여러분들의 열성적인 지지에 화답하여 저희 자민당은 최근의 어지러운 국제 정세에 대항하여 열심히 대한민국의 힘을 쌓아 나갈 것을 굳게 선언하는 바입니다!"


사회자는 한껏 격앙된 발언과 함께 오른손을 불끈 쥐어 위로 올려보였고 참석자 중 자민당 소속 의원들은 함께 주먹을 올리며 구호를 외쳤다. 


"경제강국! 군사강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다소 오그라드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룸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고 참석자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우렁찬 박수소리로 건물 전체가 진동케했다. 어떤 사람들은 휘파람 소리를 내기도 했다. 여세를 모아 사회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지금 우리들의 수장, 최진우 자민당 대표님께서 연단에 오르고 계십니다. 모두들 우뢰와 같은 박수로 대표님을 맞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


당 대표는 의외로 젊은 사람이었다. 40대 중반 쯤 되어보이는 인상으로 대한민국 정당 대표들 중 가장 젊은 인물이 아닐까 짐작될 정도였다. 훤칠한 키에 수트를 입어도 감춰지지 않는 근육질의 몸을 소유한 그는 강철과 같은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내며 연단 위에 올라섰다. 참석자들은 사회자의 요청대로 아낌없는 박수로 그의 등장을 축하했다. 혼신을 다한 환호에 그들의 손이 불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감사합니다 ^^
항상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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