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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란 무엇인가?"
게시물ID : history_235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ckk
추천 : 3/7
조회수 : 61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0/04 10: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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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절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 덕에 조금이라도 더 발전했다..
일제시절 일본식민지배는 한민족의축복이었다..
등의 뉴라이트 의견은 완전히 일본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입장에서야 자기들이 강도짓하기 편하게 뜯어가기 위해서 하는 투자를
한국인입장에서   그래도 좀이라도 성장했으니 결과적으론  우리를 근대화 시켜주었다..
이런건 정신병적인 자기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착각속에 하는 망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건  일본인 관점으로나 가능한 소리지
한국인 입장에서는 개풀뜯어먹는 일본의 망언과 같은 부류하고 생각듭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0446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란 무엇인가?"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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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 평균 3.6%가 높은 성장률이었다고?"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뉴라이트 측이 많이 활용하는 수법 하나를 미리 지적하고 싶다. 통념을 벗어나는 새로운 관점을 통계 수치로 포장하는 수법이다. 안병직 씨와 이영훈 씨가 경제사 분야를 연구했기 때문에 주류 역사학자들에 비해 통계 수치를 많이 활용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다. 숫자를 들이대면 뭔가 '과학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숫자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엄정한 태도가 아쉽게 느껴진다.
   
  191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3.6%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30년간 그만한 성장률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것은 한국경제가 그 기간에 꽤 활기찬 발전을 이뤘다는 인상을 주려고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 성장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거의 아무런 산업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던 1910년도다. 오늘날처럼 산업화가 이뤄질 만큼 이뤄진 상황에서도 연 5% 이하로 성장률 목표 낮추는 것을 놓고 온 국민이 서운해 하는 판인데, 아무것 없던 출발점에서 연 3.6%가 높은 성장률이라고?
   
  1960년대 이후 20여 년간 한국경제가 이룩하던 연평균 7~8%보다도 높은 성장률이 근대화 출범 시점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일본인의 손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근대 기술은 어떻게든 들어오게 되어있었고 근대화는 진행되게 되어있었다.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산업화가 수십 년간 연 4% 미만의 성장률에 머물렀다는 것은 일제 통치가 도와준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억누르고 가로막은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 계량적 자료에 중점을 두고 한국경제사 분야에서 쌓아온 연구업적 중에는 높이 평가할 것이 많다. 그러나 안병직 전 소장과 이영훈 소장이 학계 외부를 상대로 이 업적을 포장해 보여주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 연 3.6% 성장률을 밝혀낸 것은 훌륭한 연구 업적이지만, 이것이 마치 높은 성장률이었던 것처럼 들이대는 데 정략적 의도가 엿보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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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수탈하려면 닭에게 모이를 준다" 
  
▲ 순간을 포착한 사진만 보고 마음 불편해 하는 것은 그 인물의 마음가짐을 지나치게 예단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좀 너무 많이 굽히는 것 같다. ⓒ한국방송

  뉴라이트 측은 수탈론에 반대하면서 일본 식민 통치는 16~17세기에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있었던 것처럼 악랄한 착취 체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다수 수탈론자들도 그런 맹목적 착취 체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성장의 수준과 방향을 결정하는 데 수탈 의도가 중점적으로 작용한, '합리적' 수탈 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달걀을 수탈하기 위해 닭에게 모이를 줄줄은 아는 체제.
  
  허수열 씨가 근대화론 비판서를 "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제목으로 냈지만, 식민지 경제체제와 관련해 더 널리 쓰이는 말은 "발전 없는 성장(growth without development)"이다. 식민지 경제가 성장한다고는 해도 덩치가 클 뿐이지, 발전의 주체로 자라날 길이 열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본국 경제체제의 부속품으로 식민지의 역할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합병 이전부터 대량의 한국 쌀을 수입하고 있었다.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쌀 공급은 극히 예민한 과제였다. 일본의 한국 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이 쌀 증산이었다. 해방 무렵까지 논의 70% 이상을 소수 지주가 소유하게 된 기형적 토지 소유 구조도 이 정책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농지 소유를 집중하고 농업 노동을 저임금에 묶어놓는 것이 쌀의 대량 반출에 편리했기 때문에 조세를 비롯한 모든 정책을 꾸준히 지주층에 유리하게 펼친 결과였다. 
   
  쌀의 생산도 수출도 늘어났다. 그러나 그 이익을 거둔 것은 상당수 일본인을 포함하는 소수 지주층이었고 그들은 일본제 공산품을 수입해서 썼다. 민중의 소비 수준은 별로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내의 공업 생산에 큰 자극을 주지 못했다. 

   
  1930년대 들어 북한 지역에 중공업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일본이 괴뢰 만주국을 세우고 '대동아' 건설에 나서면서 세운 입체적 개발 전략의 일환이었다.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주요 시설을 중국과의 분쟁 소지가 있고 통치 전망이 아직 불안정한 만주 땅보다 식민지 체제를 확립해 놓은 한국 땅에 배치한 것이다.
   
  여러 개 대형 공장이 세워지고 이에 따라 한국의 공업 인구와 공업 생산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제국의 산업 구조 안에서 부속적 역할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내적 재생산 구조를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한국인의 소득 증대는 하급 인력의 노임에 그쳤고, 연관 산업의 발전 여지도 극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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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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