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5월7일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고덕국제화계획지구 내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최순실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까지 ‘승마 지원 뇌물’을 주기로 합의한 사실을 법원이 처음 인정했다. ‘삼성 뇌물’ 사건에서 ‘뇌물수수 약속’이 인정된 사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항소심이 처음이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는 지난 24일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선고를 하며 “용역계약 체결 무렵 최씨와 이 부회장 등 사이에서 뇌물이 마지막으로 수수된 2016년 7월26일 이후에도 적어도 당초 합의한 2018년 아시안게임 때까지는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을 목적으로 액수 미상의 뇌물을 수수하겠다는 확정적인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앞서 삼성전자와 최씨의 1인 회사인 코어스포츠는 2015년 8월26일 213억원(실지급 제외 135억원)의 용역계약을 맺었는데, 특검과 검찰은 이를 뇌물 약속으로 보고 기소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1심과 이 부회장의 1·2심 재판부는 모두 이를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는 “213억원을 뇌물로 수수하겠다는 의사가 확정적으로 합치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액수 미상’의 뇌물수수는 약속한 게 맞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2015년 7월 독일에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만나 정씨 승마 지원을 논의하면서, 2020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되 우선 1단계로서 아시안게임 때까지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이 부회장 등은 최씨와 용역계약을 뇌물수수 수단으로 이용했는데, 최씨가 청구한 금액 그대로 2015년 9월~2016년 7월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2016년 10월 삼성의 정씨 승마 지원이 언론에서 논란이 된 뒤에도 삼성은 최씨의 요구대로 용역대금 명목의 돈을 지급하려고 했다. 최씨는 의혹 확대로 삼성과 연락이 어렵게 되자 장시호씨를 통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게 삼성 쪽이 언제까지 승마 지원을 할 것인지 물어봤다”는 점도 근거로 삼았다.
뇌물수수 약속이 처음 인정됐지만, 액수가 산정되지 않아 양형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검은 거래’가 단독면담을 거치며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계속됐다는 특검과 검찰의 주장이 처음으로 인정됐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삼성 쪽은 그동안 “뇌물 약속이 아니고 구속력 없는 예상 견적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다.
한편, 4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심판 편파판정 등으로 정유라씨에게 밀려 대표 선발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진 김혁 선수는 이번 자카르타·팜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단체전 은메달과 마장마술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