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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직장인의 정리해고 3
게시물ID : emigration_5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캐나다소시민
추천 : 14
조회수 : 2080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5/10/06 10: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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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이야기는 밑에 있습니다. 

점심 먹고 나서 슬슬 졸음이 몰려오는 나른한 오후입니다.
그날도 열심히 일하는 척 하다가 도저히 졸음을 이길 수 없어서 잠시 잠을 깨자는 생각으로 삶의 활력소, 소녀시대 태연 기사를 찾아 나섭니다.
이리저리 찾아다니면서 태연의 최근동정을 정리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얼굴도 잘 모르는 IT짱이 제 책상으로 서서히 다가서는 게 보입니다.
왜 그 얼굴을 보자마자 IT짱이라는 직감이 들었는 지... 어쨌든 평소 연습한대로, 임요환 드랍쉽 콘트롤하는 양, 여유있게 알트+탭을 누릅니다. 
 
그런데... 
 
키가 먹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눌러도 화면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IT짱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키보드를 아무리 눌러도 여전히 태연 얼굴은 없어지지 않고, 마우스를 미친 듯이 클릭해도 모니터는 멈춘 듯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식은 땀이 등 뒤로 떨어지고, 입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드이어 IT짱이 제 책상으로 오더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흑인식 영어로 쏘아붙입니다. "왓더... 왓더헬 아유 두잉 나우?"
미친 듯이 알트+탭을 눌렀더니 이제는 제가 지금까지 찾아다녔던 걸그룹 사진들이 자꾸 뜹니다. 
민아, 다솜, 지윤, 수지... 컴퓨터가 미친 것 같습니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IT짱의 눈꼬리가 점점 올라가서 천장을 찌를 듯 합니다. 
다급했던 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소리 지릅니다. 

"아유 크래이지? 내가 시방 보고 있는데도 이 짓거리냐?"
"어버버버... 에이비씨디..." 

아... 간단한 영어조차도 나오지 않습니다. 
얼굴을 터질 듯이 붉어지고, 심장을 쿵닥쿵닥, 식은땀으로 목욕을 합니다.
IT짱이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더니 큰소리로 외칩니다. 
 
"왓더... 유아 파이어드!!!"
 
"으~~악~~"
 
외마디비명과 함께 잠을 깹니다. 다행히 옆에서 아내가 쌔근... 아니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곤히 자고 있습니다. 
아... 악몽도 무슨 이런 악몽을...
비명소리에 뒤척거리던 아내가 잠결에 뭔 일이냐고 물어봅니다.
"어... 아니야... 별 이상한 꿈을... 나 회사에서 짤리는 꿈 꿨어...참 별 개꿈을 다 꾸네..."
아내가 졸린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한마디 합니다.
"자기야... 자기 짤렸거든... 잠이나 더 자..."
 
헉.... 그렇구나...
 
갑자기 현실로 돌아옵니다. 새벽마다 비슷한 꿈과 함께 잠을 깬 지 벌써 일주일째...
어스름히 밝아오는 거실로 터벅터벅 걸어가서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벽을 쳐다봅니다. 
일주일동안 복잡한 머릿속도 비우고, 스산했던 마음도 비우고, 심지어는 매일 술과 함께 아침마다 속도 비우고... 그렇게 비움의 삶을 실천합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멍~~합니다. 
뭘 해야 할 지... 다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 지... 아니면 장사를 해야할 지... 지렁이잡이를 알아봐야 할 지... 
그저 멍~~합니다. 
담배를 끊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하루에 한보루씩 담배가 없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리해고 이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보험 챙기는 것... 
일단 8주 동안은 보험이 지속되기 때문에 처방약이라든지, 안경이라든지, 치과라든지.. 여하간 써먹을 수 있는 보험은 다시 잘 챙겨봅니다. 
특히 약 같은 경우는 보험없이 약을 살 경우에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무좀같은 불치의 지병이 있어서 약이 계속 필요한 경우에는 미리 다 받아놔야 합니다.
다른 서비스도 철저히 챙겨서 쉬는 동안 마사지를 거의 2주에 한번씩 받은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EI, 즉 실업급여 신청...
실업급여 신청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그저 인터넷으로 폼만 작성하면 끝...
그러나, 역시 명불허전 캐나다... 신청은 간단하지만, 결과는 장고의 시간입니다... 약 한달 후에 결과를 통지 받습니다.
 
'난 니가 지난 여름에... 아니 짤릴 때 퇴직금조로 돈 받은 걸 알고 있다. 실업급여는 그 돈 다 쓰면 나온다. 내가 그렇게 쉽게 돈 내줄 줄 알았냐?'
 
퇴직금조로 받은 급여와 실업급여를 합치면 그래도 어느정도 버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입니다. 
쓸데없이 부지런한 전 회사는 이미 퇴직금분을 신고했고, 실업급여 오피스는 그 돈 다 떨어질 때까지 나 몰라... 입니다.
여하간 38주동안 501불 - 62불(망할 놈의 세금... 벼룩의 간을 빼 먹어라)를 1주당 받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은 가족여행... 이왕 이렇게 된 거 시간있을 때 여행이나 가자... 그렇게 생각해서 여기저기 다닙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도 가고, 원더랜드도 가고, 토론토도 가고...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그래도 딸내미가 아빠랑 여행간다고 헤헤... 거리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좀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바쁘게 보내니 이제 슬슬 다시 X줄이 타기 시작합니다. 
마음 한 켠으로 살짝 미루어놓았던 장래에 대해서 걱정해야 할 때가 온 겁니다.
다시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뭘해도 한숨만 나오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그래도 정신차리고 다시 열심히 노력하기로 결심한 터... 마침 재취업센터에서 첫번째 세미나가 있어서 갑니다.
세미나 장소에 도착했더니, 약 8~9명의 인원이 있었는데, 2~3명 빼놓고는 머리 희끗희끗하신 어느정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
내 코가 석자이지만, 그 분들을 보니, 과연 그 분들을 뽑아갈 회사가 있을까.. 하고 제가 걱정이 됩니다.
 
첫시간이니 전체적인 재취업센터에 대한 개요,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등등에 대해서 강사가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이 스트레스를 대처해야 하나.. 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전 회사 성토의 장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그 장소에서 IT짱이 그 자리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저씨... 그 때 하시지 그랬어요?
그렇게 별 의미없고, 재미없고, 따분한 3시간 정도의 세미나가 끝나고, 취업관련 주요웹사이트 등을 알려줍니다.
정말 별의 별 사이트가 다 있습니다. 내용만 입력하면 이력서, 커버레터 자동 포맷에 맞추어주는 사이트도 있고, 정부기준에 맞춘 구직사이트도 있고...
계속해서 이력서/커버레터 세미나, 인터뷰 세미나 등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웬지 부정의 기운이 엄습하는 것 같아서 다음의 세미나는 다 캔슬하고 혼자서 열심히 찾아보기로 합니다. 
 
이제 다시 한번 졸업 후의 구직하던 시절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우선 하루종일 열과 성을 다해, 혹시라도 요즘 추세에 맞지 않는 포맷이 없는가, 빼먹은 건 없는가 등등을 꼼꼼히 따져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수정합니다.
그리고 큰 구직사이트마다 이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검색 가능하도록 올려놓습니다.
또한, 주요 회사 career 페이지를 즐겨찾기 해 놓고, 아침마다 새로운 일자리가 없는 지 확인하고, 일자리 나오면 다시한번 제 스펙과 맞는 지 따져봅니다.
그리고 맞는 일자리가 나오면 Job Description에 최대한 기초하여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수정한 후 지원합니다. 
 
이상이 졸업 후의 일상이었다면, 지금은 추가된 게 조금 더 있습니다.
일단 그동안 회사 다니면서 알아놨던 동료, 메니저들과 네트웍을 만듭니다.  
몇몇에게는 제 사정을 이야기하고 혹시라도 회사 내에 일자리가 나오면, 즉 내부 레퍼런스를 통해 알려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혹시라도 모를 비지니스에 대해서도 준비합니다.  
바지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서 지금 얼마 있는 지, 가능한 사업인 지, 비지니스를 위해서 뭘 알아야 하는 지... 혼자서 이것저것 궁리도 해 보고, 다른 분에게 자문도 구해보고... 그렇게 머리 지끈지끈한 바쁜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의외로 이력서를 올려놓은 후에 많은 연락이 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헤드헌터들...
물론 이 헤드헌터 회사를 통해서 취업이 되신 분들도 많지만, 보통은 실속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라도 더 데이타를 만들어 놓아서 일을 성사시키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인력이 나오면 무조건 연락을 합니다. 
어떨 때는 택도 없는, 저와 별로 관련도 없는 일을 연결시키려고도 합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지역도 다 미시사가나 토론토 등의 대도시들... 저는 되도록이면 이 도시에 머물고 싶은데 자꾸 타도시로 밀어내려 합니다.
특히... 미국 헤드헌터들... 미국이 요즘 IT시장이 활황인가요? 거의 2~3일에 1번씩 메일이 옵니다. 그것도 미국 전역에서...  
 
처음에는 이런 타도시의 제안은 아직 도시를 옮길 생각이 없다는 이유로 밀어내고, 거부하곤 했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도시 내에 일자리가 나올 기미가 안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번에 100여명의 IT계열에서 날고 기었던 만만치 않은 수의 인력이 풀렸는데, 굳이 저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거의 일주일 단위로 조금씩 조금씩 범위가 넓혀집니다.
처음에는 우리 동네만 고집했다가, 그 다음에는 운전으로 1시간 거리, 그리고 운전으로 2시간 거리... 나중에는 운전 몇 시간이면 어떻냐? 취업만 시켜다오... 하는 심정으로 다 집어넣습니다. 
출퇴근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지만, 일단은 시작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좀 더 있으면 미국까지 고려를 해야하나... 그럼 정말 이사를 해야하나... 
정착지를 떠난다는 건, 한국이나 캐나다나 다 스트레스 받고 힘든 일이지만, 저희같은 이방인 특성상 도시를 옮긴다는 건 거의 또 하나의 이민이죠... 
나야 괜찮다지만, 딸내미 학교는 어떡하고, 그 어려운 집 사고, 차 사고... 그런 과정을 또 겪어야 하나? 그렇게 수많은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던 그 때에...  
 
지역에 있는 주요보험회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출처 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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