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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간단히 알아보는 중국야사(1)-왕소군
게시물ID : history_110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niTells
추천 : 13
조회수 : 194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8/11 01:40:01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AzlYq

블레이드앤 소울하다가 우연히 남쪽에 핀 슬픈꽃퀘스트를 하다보니 왕소군이 생각나서 쓰려고 합니다. 문제는 내용은 그 퀘스트하고 전혀 관계 없습니다. ㅋㅋ


고대시대 흉노(匈奴)


흉노는 하나라 후손이다 뭐다라는 설이 있지만 잘은 모르고 흉노족이 등장하는 것은 전국시대입니다. 흉노는 제,,,,한 연합군과 진나라하고 붙었지만 싸웠지만 패했고 조나라 효성왕때 이목(李牧)을 시켜서 흉노군 10만명을 격파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나라 통일한 후에 진시황제 영정은 몽염을 시켜 흉노의 오르도스 지방을 점령한 후 거대한 장성을 쌓게 하는데 그것이 만리장성(萬里長城)입니다. 만리장성을 쌓은 후 흉노는 잠시 쇠퇴했지만 초와 한나라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고 묵특1)이라는 선우등장해서 흉노가 거대한 힘을 쌓은 후 월지국을 서쪽 사마르칸트 넘어로 쫓아낸 후 강성해지고 초한전투에 승리했던 유방의 군대를 작살냅니다. 그리고 굴욕의 화친을 맺게 되는데 대강 내용은

1. 한의 공주를 흉노 선우에게 의무적으로 출가시킨다.

2. 한이 매년 술 비단 곡물을 포함한 일정량의 공물을 바친다.

3. 한과 흉노가 형제맹약(兄弟盟約)을 맺는다.

4. 만리장성을 경계로 양국이 서로 상대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다.

1번 내용을 요약하면 화번공주(和蕃公主)2)라는 합니다. 기억해두시기 바라고 아무튼 한나라에게 굴욕을 주는 화친까지 맺은 흉노는 미쳐 날뛰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악녀 여태후(呂太后)가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여태후에게 한 선우는 당신은 과부고 나는 홀아비니 우리 각자의 것을 서로 결합하지 않겠소?”라고 섹드립을 칩니다.


한무제의 등장과 흉노


문경지치(文景之治)3)가 끝나고 한무제(漢武帝)가 즉위 합니다

한무제.jpg 
한무제
는 장건을 시켜서 실크로드 개척,소금과 철의 전매제와 균수법(均輸法)과 평준법(平準法)를 하여 전비를 확충하였고 위청,이광,곽거병을 시켜서 흉노를 작살냅니다. 작살낸 후 한나라는 실크로드까지 점령해버려서 흉노는 피해도 컸을 뿐만아니라 흉노의 세력이 위축되었고 흉노의 세력이 분열되는 바람에 호한야(呼韓邪 單于)선우가 한 황실에 입조한 뒤 흉노를 재통일하였고 흉노와 한나라 사이에 화해무드가 생겨납니다.


화가개색휘야


서경잡기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나라 황제였던 원제(元帝)가 대단한 생각을 합니다. 궁녀를 화가보고 그리도록하고 그것을 도감으로 만들어서 자신은 누굴 픽업할까? 라는 참으로도 똑똑한 생각입니다. 원제의 명령에 이런 잉여로운(?)생각을 즉각 실행하면서 화가색휘가 그림을 그리는데 돈을 받습니다. 즉 예쁘게 그려주는 대신 궁녀들에게 돈을 받는 비리(?)를 저지릅니다. 그때 왕소군(王昭君)은 궁녀는 돈은 없었고 화가는 열받아서 왕소군을 추녀로 그려주게 됩니다. 몇 년후 호한야 선우가 중국 황실에 옵니다. 원제에게 결혼을 하고싶은데 한족여자 한명만이라고 부탁을 받습니다. 원제는 호한야에게 고깝게 여기고 궁녀들중 못생긴 궁녀를 보내려고 하는데 마침 못생기게 그린 왕소군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왕소군을 보내기로 하였고 호한야에게 팔려 나가기 하루 전 왕소군의 모습을 본 원제는 원통하기 시작했고 호한야는 호호 하면서 왕소군을 데리고 흉노땅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원제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화가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해놓습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왕소군.jpg

왕소군


호한야선우하고 알콩달콩하게 살지만 호한야 선우가 죽은 후 흉노의 관습에 따라서 아들 복주누약제 선우의 처가 되어 둘째 딸을 낳았다. 한족은 부친의 처첩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을 꺼려하여, 이것이 왕소군의 비극으로 민간에 전승되었다고 합니다. 흉노의 초원지대가 대부분이었던 흉노의 땅에서, 왕소군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땅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동방규의 '소군원'이라는 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시구가 오랑캐의 땅에 꽃과 풀이 없어서 봄은 왔으나(胡地無花草)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라고 하였고 흉노 땅의 봄을 맞이했음에도 고향 땅의 봄같지 않아 더욱 사무치게 고향이 그립다는 그녀의 애절한 심정이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후 72세가 되던 해에 병을 얻어 돌무덤에 안장되었는데, 사람들은 그 무덤을 일컬어 소군묘(昭君墓) 혹은 무덤이 지형에 맞지 않게 푸른풀이 많이 돋아나서 흔히 청총(靑塚)이라고 부른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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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묵돌또는 모돈선우라고 불립니다.

2)황실의 딸이나 황족의 부녀자를 칭합니다.

3)문제와 경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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