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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소설]디지털 카메라
게시물ID : humordata_1101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소빡디제乃
추천 : 4
조회수 : 655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04/04/02 20:02:33
추천 해주면 안 잡아 먹지~ *-ㅅ-* 고고빡디제乃아이디 도용 -_-+ 다음 카페 붉은 벽돌 무당집 펌 mypre 지음 단편 - 디지털 카메라 1. 선물 '딩동~' "누구세요?" "김근수씨댁 맞죠? 택배왔습니다~." "네...잠시만요.." ..끼익.. 문을 열자 택배 배달인이 책 네권정도를 겹쳐둔 크기의 박스를 들고 서있다. "안녕하세요? 이거 받으시구요. 택배비 3000원입니다." "네...여기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택배인을 보내고 문영은 박스를 들고 거실 쇼파에 앉아 박스의 테이프를 뜯기 시작했다. 박스를 뜯고 내부포장을 푸는 문영의 눈이 기대에 빛난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의 약속과 함께 기대에 가득차 기다리고 있었던 물건이 드디어 도착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될 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내일부터 시작될 수학여행을 신나게 만들어 줄 것은 확실한 물건...포장을 다 뜯은 문영의 표정에 기쁨의 미소가 번진다. "와아~!" sony dsc u-20...최근에 제일 잘나가는 소니의 제품 중 하나였다. 중고임에도 거의 새것같이 반짝거리는 귀여운 디지털 카메라...소니사의 제품 중 중저가대의 보급형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수학여행의 추억을 담아오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선물이 이거였구나. 문영은 핸드폰을 꺼내 회사에 계실 아버지 근수에게 전화를 건다. 띠리리리리~ "네. 삼신 전자 기술개발부 부장 김근수입니다." "에이.. 아빠 딸인거 알면서 뭘 그렇게 딱딱하게 받아요." "아...일하느라 번호를 못봤네. 어디니?" "집이에요. 오늘 택배 오는 날이라고 해서 주말인데 안나가고 기다렸잖아요." "후후...너 없으면 관리실에 맡겨두라고 했는데..택배는 왔니?" "네! 왔어요. 아빠 너무 멋있는거 아니에요? 꺄...디카 필요한건 어떻게 알고?" "하하...딸마음을 아빠가 몰라주면 누가 알겠어? 얼마 전부터 니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디지털 카메라만 보고 있는거 다 봤지. 어때 맘에 드니? 새걸로 사줬어야 하는데 말이지." "뭘요. 새거같은데..아빠 고마워요. 사랑해요! 헤헤.." "하하...역시 딸밖에 없다. 그런데 미안해서 어떻하지? 오늘 아빠 야근이라 내일 수학여행 가는거 못바래다 주겠네...혼자 갈 수 있지? 엄마라도 있었으면 좋았을걸.." "..아니에요. 아빠 일하느라 바쁘신거 다 아는데요 뭐. 무리하시지 말고 밥 꼬박꼬박 챙겨드세요. 제주도가서 전화할께요." "그래...미안하다....아...이대리.. 잠깐만!.아..문영아?...아빠가 지금 좀 정신이 없는데?" "네...일 하세요. 잘다녀올께요!" 딸깍.. "휴우..." 한숨을 쉬며 핸드폰 폴더를 닫은 문영은 시선을 테이블로 돌렸다. 그대로 그자리에 놓여있는 디지탈카메라...아까까지 그렇게 예뻐보이기만 하던 게 전화를 끊고 보니 웬지 모르게 넓은 집안에서 상당히 왜소해 보인다. 그렇지만 다시 문영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아버지의 선물... 바쁘지만 언제나 자상한 아버지의 딸은 그 아버지가 자신이 수학여행 가는 전날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금방 잊어버린 채 계속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내일 수학여행 준비를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짐을 싸러 방에 들어간다. 2. 5월 4일 근수는 일찍 들어와 있었다. 수학여행 가는 문영을 바래다주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날인 오늘이라도 집에 일찍 들어와서 딸을 맞을 생각이었다. 아내와 이혼한 뒤 아내가 데리고 있다가 원인모를 병으로 아내가 사망하면서 자신이 양육을 맡은 딸이었다. 여러 모로 불화가 생길 소지가 많은 가정이었지만 그들 내부적으로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아버지와 딸로 이루어진 가정은 화목했다. 문제가 있다면 근수가 불황으로 여러가지 회사일이 겹치면서 좀 바쁜 것이었지만 그런 만큼 시간이 빌 때마다 근수는 딸에게 최선을 다했고 딸도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시간이 점점 늦어가고 있다. 딸이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났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는 근수의 입에서 불안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온다. "아침에 전화할 때 11시 비행기라고 했는데...왜이렇게 안도착하지?" 다시한번 시계를 보는 그의 얼굴에 딸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음에 대한 초조함이 묻어난다. 시간은 벌써 저녁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근수가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집어들고 딸의 번호를 누르는 사이 현관 벨소리가 울린다. "문영이니?" "...아빠....." "왜이렇게 늦었어~? 아빠 걱정했잖아." "...잠깐 뭐 좀 급하게 빌릴 거 있어서 혜숙이네 집좀 들렸다 왔어요...죄송해요..." 근수는 문을 열며 딸을 살폈다. 지친 모습의 딸이 힘없이 들어온다. 무거운 여행가방을 짊어진 채 집안으로 들어오는 문영의 표정이 자기가 들고 있는 가방만큼이나 무거워 보인다. 항상 명랑하던 딸의 모습이 아니다. "음? 우리딸이 왜이래? 수학여행 재미없었니?" "...." 대답이 없는 딸.. "문영아 왜그래...무슨 일 있었어?" 가방을 내린 문영은 여전히 고개를 수그린 채 말이 없다. 그녀의 숙인 목에 걸려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근수의 눈에 비치지만 이상한 느낌을 직감한 근수의 눈에 그런 것은 들어오지 않는다. "...." "무슨일 있구나! 무슨일이야? 누가 나쁜짓했어?" "흑...흐흑..." 고개를 숙이고 있던 문영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근수는 말없이 울기만 하는 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어깨를 토닥여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침착하게 물었다. 잠시 후 진정된 문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수학여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3. 문영의 회상 ...수학여행에서 뭔일 있었냐구요? 없었다면 거짓말이에요. 첫날 제주도에 도착했는데 예약해놓은 버스가 사고로 못오게 돼서 선생님들은 정신없이 여기저기 교통편만 알아보고 다닐 수밖에 없었거든요. 어떻게 어떻게 차편을 구해서 예정된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벌써 열한 시였죠. 어쩔 수 없이 그날은 그냥 숙소에서 잠이나 자야 했어요. 한참 시간이 지나자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던 애들은 거의 다 뻗었지만 저랑 몇몇 친구들은 앉아서 진실게임 하고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지나간다 싶으면 자는 척했지만 한시가 넘으니까 선생님들도 피곤했는지 아니면 자기들끼리 고스톱이라도 치는지 아무 소리가 없더라구요. 그때쯤에 우리는 물통에 숨겨온 소주를 꺼냈어요. 한참 술자리가 무르익고 진실게임에서 별 이야기가 다 나올 때쯤에 문득 아빠가 선물해 주신 디카가 떠올랐어요. 하루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디카를 찍을 생각도 못하고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놓기만 한 거에요. 가방에서 꺼내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어요. 우리반에서 디카 갖고있는 애 몇 안되거든요. 그리고 우리방에 있는 애중에 디카 갖고 있는 애는 나밖에 없었나봐요. 술기운에 별 사진을 다 찍었죠. 찍은 사진을 보자고 애들이 몰려드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렸어요....선생님인가 하고 놀란 애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애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는 거에요. "아아악!" "꺄악!" 찍은 사진을 볼려니까 불빛 아래서는 찍은 사진이 잘 안보여서 불을 껐었거든요. 그 상황에서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누가 비명을 질러대는데 안놀랄 사람이 어딨겠어요? 덩달아서 우리도 같이 비명을 질러댔어요. 문에는 4반 미영이가 서있었어요. 귀신붙은 애라고 친구가 거의 없는 애인데...왜 아무 말도 없이 우리방에 들어와서 비명을 질러대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때 미영이가 다시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거에요. "아아악!" "야! 너 뭐야?" 나를 향해서 눈을 거의 까뒤집고 비명을 지르는 여자애를 눈앞에서 보니까 섬뜩하더라구요. 옆에 있던 친구가 미영이한테 뭐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랑곳없이 미영이는 더 큰 비명을 질렀어요. "아아아아아아..아악!" "아잇 저년이 미쳤나.." 기분이 나빠진 친구들이 미영이를 내쫓으려고 일어나서 미영이한테 달려들었죠. 그때 미영이가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저거 좀 치워줘...저것때문에 잠을 잘수가 없어...흑..." 미영이가 비명을 지르다 흐느끼면서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면서 한 말이에요. 처음엔 나를 가리키는 줄 알고 저게 미쳤나 했는데...다시보니 날 가리키는 건 아니었어요. 걔의 손끝은 정확히는 나의 손에 들려있는 디카를 향해 있었죠... "미영아 무슨소리야..? 왜 내 디카때문에 잠을 못자. 오디오도 아니고..." "으흑...저게 자꾸..자꾸 날 불러...그러면서 자꾸 이상한 소리로 낄낄대...아앗...지금도 날 보면서 낄낄댄단 말이야...무서워...무서워...제발 저것좀 어디다 치워줘..." 친구들과 나는 잠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걸 느꼈어요. 디카가 사람을 부른다니...우리의 머릿속엔 하나같이 '귀신'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죠. 그렇지만 곧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게 불렀다면 그럴듯도 하지만 웬지 디지털카메라랑 귀신은 거리가 멀잖아요...이상한 소리 때문에 흥이 깨진 우리는 미영일 강제로 방에서 끌어냈어요. "박미영! 진짜 이년이 귀신붙었다고 그러더니 돌았나보네...왜 들어와서 기분잡치고 난리야? 빨리 안나가?" "안돼...안돼...저것 좀 제발 치워달란말이야...나 죽을지도 몰라..흑..." 친구들이 애원하는 미영이를 끌고 나가는 중에 웬지 기분이 나빠진 나는 디카를 다시 가방 앞주머니에 집어넣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선물해 주신 디카에 귀신붙은 애가 이상한 소리하는 게 맘에 걸렸나봐요. 미영이가 끌려나가면서 문이 닫힐 때쯤 비명과도 같이 말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어요. "아앗..안돼요...살려줘요...살려줘! 왜 나한테 이러는 거에요...흐흑..." 정신없이 술을 마시다 보니 그날 저녁은 더이상 기억이 없어요. 그러고 나서 다음날 오후가 되서야 숙소에서 일어났어요. 나를 아무리 깨워도 안일어났는지 친구들은 모두 날 숙소에 남겨두고 그날 일정을 떠난 상태였죠. 어질어질한 머리를 흔들면서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토를 좀 했어요. 배가 고파서 숙소 식당에 내려가봤는데 아직 저녁식사를 준비하려면 한참 멀었더라구요. 가방에 뭐 먹을 거 챙겨온거 없나 뒤져보는데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둔 디카가 눈에 띄었어요. 미영이의 어제 말이 떠올랐어요. 나도 모르게 다시한번 '미친년' 이란 말이 입에서 새어나오더군요. 그러고 나자 어제 재미있게 찍었던 사진들이 생각났죠. 디카를 꺼내서 사진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술들에 취해서 난리들이 아니었어요. 계속 사진들을 보는데...수연이랑 명숙이가 두손으로 하트를 만든 사진 왼쪽 하단부분에 뭔가 희미하게 눈에 띄었어요. 처음엔 벽에 붙은 흠같은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벽지는 깨끗했거든요. 고개를 기울이고 그게 뭔지 보는데...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제가 원래 심장이 좀 약하잖아요... 사진 구석의 흐릿한 형상은 여자의 얼굴이었어요.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뒤로 흩날린 채 뭔가를 잡아먹을 듯 쏘아보고 있는...창백하다 못해 시퍼런 여자의 얼굴...순간 무서워서 다음 사진으로 돌려버렸어요. 손은 디카의 버튼을 누르면서도 왼쪽 하단을 지켜보고 있던 눈은 계속 그쪽을 보고 있었죠. 그런데 거기에 그 얼굴이 또 있는 거예요. 혹시나 해서 다음 사진으로 돌렸는데 그 사진에도 있었어요. 계속 사진을 돌려봤더니..어제 찍었던 모든 사진 속에 그 얼굴이 찍혀 있었던 거예요. 혼자 있었음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와 함께 기절해버렸죠...그땐 정말 심장이 마비되는 것 같았어요. 깨어나보니 친구들이 나를 한심스럽단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직까지 술이 안깨서 뻗어 있었던 걸로 생각했던 거에요. 내가 디카를 떨어뜨리고 기절했을 텐데...디카는 가방 앞주머니에 잘 넣어져 있었어요. 그새 배터리가 다돼서 꺼져 있는 걸 친구가 주워서 넣어뒀더군요. 저녁을 먹으러 숙소 지하식당으로 내려가는데 수연이가 머뭇거리다...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문영아..오늘...미영이가..." 섬바위를 구경하다가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죽진 않았는데 중상이라서 바로 병원으로 이송돼서 응급처치를 한 다음에 서울로 옮겨졌다는 거에요. 이상했던 것은 미영이가 뛰어내리면서 크게 웃어댔대요...낄낄거리면서...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갑자기 웃기 시작하더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눈앞에서 갑자기 밑으로 뛰어내리고..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 그렇게 낄낄거리면서 웃어댔대요. 이리와! 이리와! 하면서... "너...너말이야...그 디카 중고로 샀다고..그랬지?" "응? 으..응..." "어...어쩌면..말이야..." 말을 듣고...카메라의 사진 때문에 멍해져 있던 머릿속에 또다른 충격이 몇 번이고 가해지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또 기절했고...일어나고도 정상적으로 걷기가 힘들어서 그렇게 숙소에 계속 남아서 돌봐주는 친구 몇명이랑만 수학여행을 보내야 했어요. 디카는 너무 무서워서 건드릴 수도 없었구요. "생각해 보니까 나...얼마전에 인터넷 괴담사이트에서 귀신붙은 디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거 같애...유명한 얘기거든...그냥...미영이가 한 말이...걸려서....물론 별일이야 없겠지만...그거..말이야...꼭 카메라 주인 주변사람 중에 한명을 죽인대...그 다음에 디카 주인도 언젠가는 꼭 죽는다는 거야..." 4. 카메라 문영의 이야기를 듣는 근수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찡그려진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혀 있다. 도대체 딸에게 어떤 일이 생긴 것인가... "그래...미영이란 애는 어떻게 됐니?" "아까 혜숙이네 집에 들려서 병원에 전화해보니까...죽지는 않았대요...." "음..." "아빠...무슨...일 안생기겠죠? 네?" "무슨 일 없을 거다...카메라 좀 가져와 보겠니? 아니다..무서울 테니 내가 가져오마." "네...기억하기 싫은 걸 말했더니 아직도 떨려요. 우유라도..마셔야겠어요...아빠 녹차 드실래요?" "그래...고맙다..." 카메라를 가져와서 충전을 시켰다. 아직까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몸을 떨고 있는 문영이 고개를 흔들더니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한다. 충전시키는 동안 아버지와 딸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현상에 대해 무슨 말을 꺼내도 딸을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침묵 속에 녹차를 홀짝이던 아버지가 카메라를 꺼내서 저장된 사진을 살펴보았다. 몇 사진을 돌려보던 근수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문영을 바라보았다. "문영아...요즘 가위라도 눌리니..?" "네? 무슨 말이에요?" "사진에 무슨 얼굴이 있다는 거니?" "왼쪽 하단을 잘 살펴보시라니깐요..." "이리 와볼래?" 문영은 카메라 근처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손에 거의 이끌리다시피 사진을 보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디카에 저장된 사진들은 분명히 문영이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렇지만 사진들에는 즐거운 수학여행 첫날밤의 이미지만 남아 있을 뿐 어떤 여자의 얼굴도 찍혀 있지 않았다. "이...이게..." "문영아..." "아...아니에요...분명히 이 사진 아래쪽에 무서운 여자얼굴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미영이는....미영이는...." "문영아...아빠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겠다...." "..?" "그 얼굴의 사진을 한번 보고 나서 다시 카메라를 켜지 않았지?" "네..." "미영이는 원래 이상한 애라서 친구가 많지 않았다고 했지?" "..네..." "아마 그 아이는 정신분열증이나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을 거야...어떤 원인에서든 아마 자살욕구를 느끼고 있었겠지..자살을 시도하기 전날에....자신의 증상의 대상이 네 카메라가 됐던 거고...다음날에 무의식 속에 남아 있던 미영이의 비명의 잔상이 너한테 카메라 사진 속에 그 모습을 보이게 했겠지...그런 거에 기절까지 하다니...가뜩이나 심약한 우리 딸이 요즘 더 약해진 거 같구나...아빠가 보약이라도 한재 해다줘야겠어..." "....." 근수는 문영의 얼굴이 안된 듯 잠시 바라보다 벽의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12시에 가까워져 오고 있다. "시간이 벌써 많이 늦었구나...피곤할 테니 가서 쉬는게 어떠니?" "..네...괜한...일로 걱정시켜드려서 죄송해요..." 문영은 여전히 기운 없는 몸짓으로 일어난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그녀를 꽉 쥐고 있던 긴장감은 사라진 것 같다. 천천히 자신의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가 방문을 열고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할때까지 아버지는 자상한 눈길로 문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5. 그림자 낄낄낄낄..... 불꺼진 어두운 문영의 방...벽장과 그 옆 창을 마주본 침대에서 곰인형을 껴안고 깊이 잠들어 있는 문영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수학여행동안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는 바람에 거의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져든 것 같다. 그런데 수학여행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래도 아버지의 해석이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버지의 설명만으로는 천천히 방구석 어딘가에서부터 방을 채우고 있는 기묘한 웃음소리를 설명하기 힘들 테니..... ......낄낄낄낄낄...... 방구석구석 퍼져가는 웃음소리...온 방에 그 웃음소리가 가득 차면서 점점 커져간다. 웃음소리가 커져갈 수록 문영의 이마에 땀이 맺히고...감은 두 눈이 조금씩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낄낄낄낄........... "아악!" 문영은 땀으로 온몸이 가득찬 채 비명을 지르며 번쩍 눈을 떴다. 그토록 깊은 잠에서 깨어났으면 잠이 덜 깰만도 하련만 문영의 눈이 엄청난 공포로 일그러진다. 문영이 깨어났는데도 웃음소리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낄낄...... "아아아아아악! 아빠! 아빠! 도와줘요!" 문영의 비명소리를 삼키듯 온 방 안에 빼곡히 채워진 웃음소리...그와 동시에 문영의 침대 건너편 창문에 흐릿한 형체가 맺히기 시작한다. 긴 머리...갸름한 얼굴...그리고 부릅뜬 눈을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는 공포스런 여자의 얼굴...바로 사진에 찍혀 있던 그 얼굴이었다! 천천히 또렷해져가는 부릅뜬 그녀의 눈과 마주한 문영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한다. 창문에 맺히는 얼굴이 거의 완전히 형체를 갖추어갈 무렵...방안에는 귀가 터질 것만 같은 웃음소리 말고도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낄낄낄...이리와..이리와...같이가자..같이가자.... 귓속에 파고드는 끔찍한 소리...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문영의 눈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침대로 쓰러진다. 문영이 쓰러지고도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 웃음소리와 끔찍한 표정의 창문의 여자의 얼굴....순간 방문이 쾅하고 열리며 근수가 뛰어들어온다. "문영아! 문영아!" 소리치며 문영을 흔드는 근수...문영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계속 반응이 없는 문영을 흔들던 근수는 어느순간부터 동작을 멈추더니 문영의 코 아래로 손을 가져간다. 이미 문영은 숨을 쉬지 않는다. 근수의 다급한 얼굴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왜인지 근수의 가슴이 흥분으로 뛰어 온다. 죽은 문영을 침대에 눕히고...창문의 섬뜩한 형상의 얼굴을 바라보는 근수... 그가 천천히 침대 아래쪽에 손을 집어넣자 창문의 흐릿한 얼굴이 크게 출렁이는 듯하더니 팍 하고 사라진다. 그런 다음 그는 벽장 구석으로 천천히 걸어가 조그마한 테잎 재생기를 꺼낸다. 그것의 버튼을 하나 누르자 온 방을 잡아먹을 듯 시끄럽게 진동하던 낄낄대는 웃음소리도 어느순간 잠잠해진다. "...결국....심장마비인가.....후후......" 6. 근수의 독백 20대 중반의 나이로 취업한 삼진전자...그곳 사장의 재산의 1/5의 상속분을 가진 딸과 결혼할 때 내 인생은 앞으로 탄탄대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결혼생활은 잘 이어지지 못했다. 망할 놈의 아내의 의부증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참고 살아보려 했어도 민감한 아내는 업무중은 물론이고 퇴근하고 나면 5분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결국 우리는 5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이혼했다. 위자료는 필요없으니 아내는 딸의 양육권만 달라고 했다. 이혼 후 10년 뒤에 아내는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아내의 변호사에게서 자기 소유의 모든 재산을 딸인 문영이에게 상속시킨다는 그녀의 유언을 들었다. 그래도 한때 남편인데 어느 정도 배신감도 들었지만 어차피 더이상 내 아내가 아니니 처음엔 별 생각 없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딸은 성년이 될 때까지 내가 키우게 되었다. 딸이 중학교 3학년에 막 들어갔을 때의 일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딸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아마 다른 동기는 없는 것 같다. 단지 내가 가진 전기, 전자계통에서의 뛰어난 재능을 남의 회사 아래에서 썩히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다. 아내가 가지고 있었던 재산이라면 내가 원하는 전자 사업체를 설립하는데 충분한 돈이었으니까.. 딸이 죽는다면 아내가 가졌던, 그리고 딸이 가진 상속분은 자연스럽게 현재의 친권자인 나에게 넘어오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딸은 제 어미를 닮아 어려서부터 조그만 충격에도 기절할 만큼 심장이 약했다. 어떻게든 딸을 심장마비로 죽여보기 위해 그동안 딸을 키웠던 3년간 별짓을 다했다. 꾸준히 약을 먹였고 충격적인 장면을 되도록 많이 보여 주려고 많은 곳을 데려다녔다. 다른 방법으로 죽일 수도 있었지만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증상에 의해 사망시키는 게 가장 의심없이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마 3년동안 놀이공원을 15번 데려간 아버지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딸은 심장마비로 죽기는 커녕 두달에 한번씩 놀이공원을 언제 가냐고 졸라댔다. 답답한 일이었다. 그럴수록 딸에 대한 음흉한 의도를 감추기 위해 딸에게 최대한 잘해 줄 수밖에 없었고 딸은 물론이고 주위사람들마저도 나를 너무나도 자상한 아버지로 보고 있었다.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알리바이는 철저해지는 것 같았지만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머리를 식힐 겸 자주 들어가는 공포 괴담 사이트에서 귀신 붙은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요즘 딸이 관심을 갖는 분야가 디지털 카메라라는 걸 떠올린 건 한달 전의 일이었다. 눈앞에 직접 공포의 대상이 나타나는 것은 심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우선 딸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한 후 요즘 잘나가는 디지털 카메라의 기종을 새걸로 사서 렌즈와 메모리 사이에 인터넷에서 본 가장 충격적일 듯한 이미지 중 하나를 끼워넣었다. 그리고 꽤나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 이미지가 사진의 왼쪽 아래편에 등장했다가 카메라를 껐다 켜면 사라지게 하는 회로장치를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딸이 수학여행을 가기 전날 도착할 수 있도록 며칠 전 그것을 택배로 부치고, 딸이 학교간 틈을 타서 그 이미지를 끼워넣은 프로젝터와 섬뜩한 웃음소리가 담긴 테잎 재생기를 딸의 방 구석진 곳에 설치했다. 그리고 딸이 수학여행을 떠난 후 며칠동안 휴가를 내어 알람 식의 웃음소리 재생, 그리고 그에 연결된 영상 재생의 싱크를 정확히 조절했다. 내가 전기전자 사업체에 근무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딸이 수학여행을 갔다 돌아오기 전까지 모든 것은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디지털 카메라에 의해 어떤 정신나간 여자애가 자살까지 시도한 것은 신이 내게 준 기회와도 같았다. 딸이 여행을 다녀와서 정신없이 카메라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나는 잠시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준비해 놓은 말이(긴장이 풀린 뒤에 나타나는 공포는 더욱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예상치 못한 사실에 잠시 혼란스러워짐을 느꼈다. 그렇지만 곧 그것이 더 괜찮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신기하게도 뛰어내린 아이에게서 나왔다는 웃음소리는 내가 녹음한 소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히 딸에게 둘러대었고...딸은 나를 믿은 채 방에 들어가서 잠이 들었다. 이제 딸이 죽었고...곧 모든 재산은 나에게 돌아온다. 젊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사업구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곧 오겠다...하하....잠시 딸을 바라본다. 불쌍한 녀석...아버지를 잘못 만나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는구나...흥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너무 기뻐서일까? 꼭 내가 딸한테 먹이던 흥분제라도 먹은 것 같군... 덜컹... 프로젝터를 침대 밑에서 꺼낸다. 회사에서 빌려온 것이다. 비싼 놈이다. 하지만 내가 얻을 돈에 비해서는 1/100도 안되는 돈...후후...전기코드를 빼야겠다. 침대 밑의 콘센트에서 빼기 위해 살짝 잡아당겼다. 아무것도 빠지는 느낌이 없다. 뭐지? 코드가 죽 당겨져 온다. 어떻게 된 것인가! 전기선에 플러그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아까 재생된 영상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카메라에 집어넣은 여자의 영상이 흐릿하게 맺혀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의 그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도...귓가에 울려오기 시작한다...이럴리가 없는데...이게...어찌된거지? 이게...심장박동이 빨라져온다. 이런 상황일수록...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으윽.... 7. 별이 빛나는 밤 쿵!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근수...눈을 부릅뜬 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침대에 쓰러져 있던 문영의 눈이 번쩍 떠진다. 문영은 주위를 잠시 둘러보았다. 여전히 낄낄거리는 웃음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고 창문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의 얼굴이 머리를 흩날리고 있다. 냉소를 날리며 문영은 천천히 일어나 쓰러져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선다. 근수의 코에 손을 대보는 문영...숨을 쉬지 않는다. 다시 문영은 근수의 맥을 짚어 보았다. 맥도 뛰지 않는다...심장마비다. 그녀가 1년 반동안 먹었을 분량의 흥분제를 녹차에 타마셨으니 어떤 강심장이라도 지금같은 상황에서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을 테지... 차가운 표정의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한마디... "그나이 먹도록 뭐했니...녹차맛도 구별못하고..." 문영은 천천히 벽장으로 다가선다. 벽장에 있는 책들을 꺼내자 조그만 프로젝터가 하나 나온다. 수학여행에 다녀오면서 영화 제작이 꿈인 친구 혜숙의 집에서 빌려온 프로젝터다. 그것을 끄자 창문과 벽장의 작은 틈새로 새어나가던 여자의 얼굴이 팟 하고 사라진다. 프로젝터를 꺼내 책상 위에 놓은 후 책상의 오디오를 바라보는 문영...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라디오를 켠다. 순식간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라디오에서 편안한 심야방송 DJ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하늘에 별이 가득한 평화로운 밤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마음과 연결되는 별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결국엔 수많은 별들처럼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제각기 흩어져 있지만 밤하늘의 별들처럼 결국엔 한 세상에 사는 게 사람 아닐까요? 오늘의 첫곡...Steve Barakatt의 Rainbow bridge입니다..." 문영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음악을 감상하다 겉으로는 항상 살갑게 대했지만 속으로는 한번도 아버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근수의 시체를 다시한번 바라본다. 2년 전부터 자신의 심약함을 이용해서 심장병에 먹는 약에 흥분제 한알씩을 집어넣어 가며 어떻게든 자신을 죽여 보려고 애쓰던 사람...그래도 머리는 좋은 편이다. 근수의 계획은 완벽했다. 다만 문영이 학교에 다녀올 때마다 자신의 방을 이잡듯 뒤져 본다는 것을 몰랐을 뿐... 디지털 카메라를 받은 날 밤...짐을 싸다 자신의 방 침대 밑에서 이상하게 생긴 프로젝터를 발견한 문영은 한밤중에 그것을 켜보았다가 기절할 만큼 놀랐다. 테잎 재생기까지 발견한 후 그것들이 다시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한 계획이란 걸 알게 된 문영은 그것을 역이용하기로 결심한다. 프로젝터에서 영상을 꺼내서 CD에 저장하고 아버지의 재생기에서 웃음소리를 꺼내 역시 CD에 저장한 후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프로젝터를 빌리고...아버지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무렵 우유를 마시는 척 하며 녹차에 엄청난 양의 심장 흥분제를 타 넣었던 것이다. 흥분제를 잔뜩 마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던 근수는 딸이 숨을 쉬지 않는 것만 보고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숨을 참느라 좀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문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구에게 전화를 건다. ...띠리리리리.... "아...미영이니? 응...그래....잘됐어..후후..그래..그런 인간은 죽어도 싸지...그나저나 다친데는 괜찮니...? 입원생활은 할 만해? 후우...그나저나 너네아버지는 언제 처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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