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 금수저란 말이 뭔지도 모르던 사람인데요.
다른 글 읽다보니 가난하면 자식도 낳지 말라는 글이 버젓이 올라오고 추천도 잘 붙는 게 저는 참 놀라웠습니다.
난 가난하니까 자식도 안 낳을 거라고 하는 건 누가 뭐라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왜 그걸 타인에게 강요하나요?
물론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도 잘 알고 우리보다 우리 자식 세대들이 훨씬 더 고생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돈이 다가 아닙니다.
물론 돈이 없으면 좀 힘들게 살겠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건 아니에요.
이건 좀 엉뚱한 얘기이긴 한데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뭐 걷는다고 돈 300원, 500원 가져오라고 하면 제딴엔 집에 그 얘기하기가 힘들어서 쭈뼛쭈뼛하다 아침 먹으면서 엄마한테 그 얘기하고 그럼 엄만 그 얘길 왜 지금 하냐면서 동네 다른 집에 그 돈 구하러 다니셨어요.
그렇게 걷은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친구들이랑 TV 광고에 나오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보면서 나 저거 먹어봤다고 자랑삼아 말하기도 했고...
네, 그 당시 살던 우리 동네 가게엔 광고에 나오는 과자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동네엔 가게가 없었고 학교가 있던 동네.
학교 끝나고 오면 친구들이랑 홍시 따먹으러 다니고 일명 삐삐라는 단맛 나는 풀 뜯어먹고 칡뿌리 캐러 다니고...
그러면서도 가난해서 슬프다거나 하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다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유치원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유치원이란 단어를 들어봤습니다.
거짓말이라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우리 옆집은 전기가 안들어왔어요.
전기세를 안내서 끊긴 게 아니라 아예 전기가 연결이 안 돼 있었습니다.
한 번 그 집에 놀러 가니 저녁땐 사극에서 보이는 호롱불 하나 켜있더군요.
사극은 다 고증 엉망입니다. ㅎㅎㅎ 호롱불 하나로 그렇게 방이 밝아지지 않아요. 한 1/10 밝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녁때 등뒤에 글씨쓰면 무슨 글씨인지 알아맞히기, 벽지로 붙인 신문 글자 읽기(어두워서 잘 안보임) 같은 걸 하고 놀던데 그냥 이렇게 놀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물론 그때랑 지금은 많이 다르다는 거 압니다.
도시에 산다면 월세 내야지, 통신요금 내야지, 이것저것 세금 내야지 돈 나갈 데 많죠.
제 말은 굳이 금수저랑 비교해서 자괴감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때문에 자식 낳지 말라고 강요하지도 말라는 거고요.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꺼내자면,
내가 낳은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을까봐 못 낳겠다는 말을 오유에서 많이 봅니다.
네, 물론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사랑스럽습니다.
설사 그런 마음이 안들어도 최소한 책임감은 생깁니다.
근데 아기 낳을 때 드는 걱정이 그것밖에 없나요?
기껏 사랑으로 힘들게 키워놨더니 공공의 적처럼 재산때문에 부모 죽일 거란 생각은 안 드세요?
해외여행 시켜준다고 다른 나라 데려가서 떼어놓고 올 것 같진 않으세요?
허무맹랑한 얘기요?
그럼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사업자금 내놓으라고 하는 건요?
"아니, 아부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부푼 꿈을 안고 사업 좀 하게 돈 좀 달라는데 지금 자식 앞길 막겠다는 거요?" -_-
소소하게는 사고치고 중절수술하게 돈 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경찰서라고 새벽에 오라고 할 수도 있고...
뭐 기타 등등 애 키우려면 걱정거리가 한 두개가 아닙니다.
내가 낳은 아이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다 사랑스럽습니다.
만일 사이코패스라면 자식 유무에 상관없이 이미 사회에 큰 위험입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미리 안하셔도 됩니다.
그것말고도 애 낳으면 할 걱정이 태산입니다.
근데 왜 애를 낳느냐고요?
우리집은 제가 결혼해서 사업한답시고 6년 동안 집에 땡전 한푼 안 가져오고 집에 있는 돈, 처가집 돈 가져다 쓰면서 계속 싸우기만 했습니다.
나중엔 이혼은 기정사실이고 날짜만 안 잡은 상태였어요.
그러다 와이프가 애를 낳겠다고 해서 어찌어찌 애가 태어났는데 그 이후로 집안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애기가 웃고 옹알거리고 뒤집고 기고 걷고 말하는 것들이 하나하나가 다 사랑스럽고 가정의 평화로 이어졌습니다.
그럼 이런 말 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본인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희생하는 거냐고...
세상을 살면서 모 아니면 도로 딱 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이것저것 유기적으로 얽혀있고 그때그때 융통성있게 결정할 뿐입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도 자식을 낳지만 그 자식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종족 번식에 대한 본능 때문에, 부모님께 손주 안겨드리고 싶어서, 또 내가 늙으막에 손주를 보고 싶어서 등등 자식을 낳는 이유는 많습니다.
(단, 전 자식을 늙었을 때의 보험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근데 사실 전 자식을 별로 낳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요즘 세상에 돈도 많이 들고 키우기도 힘들고 많이들 생각하시는 그런 이유 때문에요.
그리고 이 힘든 세상에 아이를 살게 하는 것 자체가 아이한테 죄를 짓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낳으니 그래도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가 안 태어났으면 저렇게 사소한 일에도 기뻐하고 엄마, 아빠를 좋아하는 일도 없었을 테죠.
그래도 둘째를 감당할 자신은 없어서 하나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길게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인생을 살면서 미리 계획한대로 되는 것도 많지 않고 이게 옳다 저게 그러다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도 많이 있고 또 가정과 사회생활을 위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들도 있고...
무엇보다 인생은 어느 정도 도박입니다.
그냥 가끔은 긴 생각없이 모험을 걸어야 하는 일도 많습니다.
(동생이 없어 다스베이더랑 친구...)